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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k Jul 15. 2018

아쉬움: 다시 와야 하는 이유

가물철 하늘을 바라보는 농부들의 마음이 이러할까. 아이슬란드에 도착한 뒤 내내 하늘을 바라봤다. 출발 전부터 오로라 관측이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하는 마음에 자꾸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제멋대로 흘러 다니는 구름이 원망스러웠다. 잠시라도 구름들이 사라지고 초록빛이 넘실대기를, 허공을 바라보며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      


어딜 가든 늘 좋은 날씨를 기대했지만, 이곳에선 좀 더 간절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오직 오로라였다. 추운 겨울, 일부러 겨울의 겨울로 걸어 들어온 이유였다. 오로라가 아니더라도 화산이 만든 엄청난 광경들이 눈앞에 펼쳐졌지만 감탄도 잠시, 곧 시무룩해졌다. 평소엔 날씨가 안 좋아도 ‘언제 여기 와서 비(또는 눈)를 맞아보겠어!’라고 넘길 수 있었지만 여기선 도무지 그럴 수가 없었다. 온갖 부정적 감정들이 온 신경을 지배했다. 이런 시기를 고른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분노, 하늘에 대한 원망이.      


아이슬란드에 머무는 동안 오로라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딱 한 번 있었다. 오로라 지수가 보통 수준에 체류하는 중 그나마 제일 맑은 날이었다. 문제는 날짜. 투어천국인 아이슬란드라지만 '크리스마스이브'만큼은 투어 회사들이 저녁에 투어를 진행하지 않았다. 혹시 작은 투어 회사들은 오로라 투어를 할 수도 있단 얘기에 호스텔에 문의했지만 예약할 수 있는 투어가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크리스마스에 오로라를 보는 로맨틱한 장면은 산산이 부서졌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숙소에서 한참을 걸어 레이캬비크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항구로 향했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무너진 새카만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칼날처럼 매서운 바람이 온몸을 때렸다. 감각이 무뎌져 콧물이 흘러내리는 것도 알아챌 수 없었다. 한참이 지나고 하늘 한 귀퉁이가 꿈틀거렸다. 옆에서 삼각대를 펴고 대기 중이던 사람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혹여 놓칠 새라 카메라를 꺼내지도 못하고, 미간을 찡그려가며 하늘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제발 구름이 걷히고 초록빛이 쏟아지길.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호스텔에서 사람들이 자랑하며 보여주던 사진 속 오로라는 없었다. 작은 희망의 불빛마저 사라지자 술렁임이 사라지고 고요함이 찾아왔다. 하늘에 일던 움직임은 과연 오로라였을까. 간절함이 만들어낸 환영인지 구름 속에 가려 미쳐 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오로라였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그냥 보았다고 믿을 수밖에.      


레이캬비크 공항에 내리던 날 승무원이 건넨 인사가 생각났다. "당신들은 운이 좋다. 며칠 전 눈이 내려 설경을 즐길 수 있을 거다. 좋은 여행되길 바란다." 눈이 왔다는 데서 ‘날이 흐리다’라는 게 떠올라 그 인사말이 달갑지 않았다.      


아이슬란드에선 오로라만 못 본 게 아니다. 여행 기간 내내 추위와 바람 그리고 눈과 비를 견디느라 제대로 구경할 수가 없었다. 칼바람에 실린 추위는 그대로 온 몸에 와 콕콕 박혔다. 따뜻한 실내에 들어가서도 한동안은 추위 알갱이가 녹아내리며 퍼지는 추위 때문에 덜덜 떨어야 했다. 한 걸음 나아가기도 힘들게 불어대는 바람은 정신이 번쩍 들게 했다. 50인승 투어버스도 바람에 휘청거렸다. 가이드가 처음엔 “원하는 사람은 나가서 보라”고 말했지만 버스가 뒤뚱거리자 위험하다며 문을 닫아버렸다. 영화 <인터스텔라> 겨울 장면을 찍었다는 장소는 비로 얼룩진 창문으로만 간신히 내다볼 수 있었다.     


그래도 눈은 비보다 나은 편. 아무리 털어내도 금새 쌓이는 눈을 사흘 내내 맞으며 '제발 눈 좀 그쳤으면' 바랐지만 마지막 날 비가 내리자 차라리 눈이 그리워졌다. 한껏 기대했던 요쿨살론에 도착했지만 비 때문에 10분도 머물지 못하고 물러나고야 말았다. 파란 물감을 타서 얼린 듯 한 파란 빙하, 그대로 먹어도 될 것 같은 투명한 빙하 그리고 화산재가 들어간 검은 빙하는 보며 난생 처음 '빙하를 보았다'는 감상에 젖기도 전에 비가 쏟아져 옷과 신발을 흠뻑 적셨다. 주위 사람들이 하나 둘 버스로 돌아갔다. 아쉬운 마음에 돌아서질 못하고 지체하는 사이 외투가 젖어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적시기 않으려 노력했던 신발은 이미 젖어 제 색깔을 잃어버린 지 오래. 버스로 돌아가는 길은 진흙과 빙판과 웅덩이가 뒤섞여있었다. 그 짧은 길을 가는 데도 지뢰밭에 서있는 듯, 한 발 한 발 신중하게 내딛었다.      


 

여행 중 잠시 맑았던 순간



호스텔에 돌아가자마자 스카이스캐너를 뒤지기 시작했다. 아이슬란드에 다시 와야 하나 아니면 노르웨이 트롬쇠를 가야 하나.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오로라가 또 다시 나를 지나쳐간다면? 그건 그냥 오로라를 못 볼 운명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가.           


여행을 마치고 몇몇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갈 데도 없겠다”라고 했지만 오히려 리스트가 더 늘어났다. 가보지 못한 나라들이 더 많은 뿐더러 아이슬란드처럼 아쉬움을 남기고 온 곳을 더더욱 다시 가야만 하는 곳이 됐다. 오로라도 그렇지만, 내가 보지 못한 아이슬란드의 푸름 가득한 여름도 궁금해졌다. 며칠 차이로 즐기지 못한 더블린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 축제, 한국 영화를 보지 못해 아쉬웠던 베를린 국제 영화제, 혼자 여행 다니며 누군가와 함께 다시 오고 싶다고 다짐했던 곳들, 긴 여행에 귀찮음이 발동해 지척에 두고도 지나쳐갔던 곳들 그리고 다른 여행자들에게 들은 또 다른 숨겨진 여행지들.      


1년을 다녀왔어도 여전히 아쉽다. 언젠가 나는 또 다시 떠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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