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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k Mar 07. 2017

에든버러 '명암' 즐기기

로열마일과 클로스(Close)

출근길 한치의 오차도 없이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확신없는 발걸음을 옮겼다. 스마트폰을 붙들고 화면 속 이름과 주위 상점 이름을 하나씩 대조하며 더듬더듬 길을 걸어 갔다. 골목을 빠져나와 큰 길가 신호등 앞에 섰을 즈음 화면의 파란선이 거의 사라졌다. 그제야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길 건너 언덕 위로 중세시대 세트를 도시 한가운데 떨어뜨려놓은 듯한 풍경이 펼쳐졌다. 더이상 지도를 볼 필요가 없었다.   


멀리 보이던 건물을 이정표 삼아 걷다보니 어느새 아스팔트 길이 돌길로 바뀌었다. 쉬엄쉬엄 언덕길을 올라 로열마일에 닿았다. 에든버러 성과 홀리루드하우스 궁전을 연결하는 이 길은 더이상 왕족만 이용하는 곳도, 지금의 '마일(mile)'도 아니다. 하지만 퇴색된 구석 하나 없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당시의 역사를 자랑하듯 거리엔 데이비드 흄과 애덤 스미스 동상도 놓여 있었다.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존 녹스의 집과 그가 설교했던 세인트자일스 성당도 이곳에 있다. 로열마일 돌 길 위로 쏟아지는 햇살과 눈부신 역사의 흔적들이 섞여 절로 감탄을 자아냈다.




@로열마일
@로열마일


@빅토리아 스트리트




발은 로열마일 위에 있지만 눈은 자꾸만 건물 사이사이에 있는 Close와 Wynd로 향했다. 크기도 모양도 현재 쓰임새도 다양해 더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어떤 곳은 명패만 붙은 채 아예 입구가 막혀있었고, 어떤 곳은 호텔이나 음식점 입구로 쓰였다. 좁고 어두운 골목길은 인근 가게의 쓰레기통을 보관하는 장소가 되기도, 끝을 알 수 없게 뻗어나가 다른 길과 이어지기도 했다.


Close나 Wynd 안에 들어서는 순간 습기, 어둠, 고요함이 몰려왔다. 로열마일에서 느꼈던 따사로움이 사라지고, 관광객의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귀신이 나와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허름한 건물 뒷편의 미로같은 길, 작은 광장, 끝을 가늠할 수 없게 쭉 이어진 가파른 계단을 탐방하고 다녔다. 이곳들은 왕족만 사용할 수 있었던 로열마일을 피해 만들어진 하나 둘 생겨난 길들이라고 한다. 원래 뒷 이야기가 더 재미있는 법이다. 골목길에 붙은 이름들을 찬찬히 보며 어떤 길이었을 지 상상해봤다. 물론 Fishmarket Close처럼 어디로 이어지는지 명백한 길도 종종 눈에 띄었다. '지킬앤 하이드'의 모델이라고 알려진 '디콘 브로디'의 이름을 딴 브로디 클로스(Brodie close)는 카페로 운영되고 있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누가 뭐래도 '메리 킹즈 클로스(Mary King's close)'다. 이름은 낯설어도 흑사병과 어린 여자아이 '애나' 귀신이란 단어를 들어면 어렴풋하게 나마 이곳의 이미지가 떠오를 것이다.


평민들이 지하를 파고 내려가 만든 길은 하나의 도시가 됐다. 해는 들지 않지만 그곳엔 사람들이 넘쳤고 활기가 가득했다. 퀄리티가 좋은 물건도 많아 귀족들이 사가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빛이 부족했고, 하루에도 몇 번씩 쏟아지는 오물을 피해야 했다. 배수시설과 위생관념이 부족했던 당시 고지대에 살던 귀족, 부자들은 오물을 아래로 마구 흘려 보냈다. 그러다 흑사병이 유럽 전역을 휩쓸자 추가 피해를 막기위해 감염자들을 메리킹즈 클로스에 격리하기 시작했다. 여기엔 병들지 않았지만 먹고살기 힘들어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도 있었다. 애나도 그 중 하나였다. 이곳에서 어린 아이의 귀신이 발견된다는 이야기가 돌자 관광객들은 어린 혼을 달래기 위해 메리 킹즈 클로스 한 켠에 선물을 두고 가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 행렬은 이어지고 있다.









에든버러를 걷다 과거 '교수대(gallows)'가 있었던 자리를 알려주는 안내판을 자주 보았다. 당시 교수형은 하나의 오락거리이기도 했다. 구석에서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진행되는 게 아니라 모두들 불러 모아놓고 이뤄졌다. 이 때문에 가장 유명한 교수대는 에든버러의 주요 마켓 중 하나인 '그라스 마켓'에 놓여졌다. 1660년경부터 처형장소로 유명해지기 시작해 1784년 2월 4일까지 거의 매일 처형이 이어졌다고 한다. 과거 교수대가 놓였던 바닥엔 돌로 교수대 모양이 새겨져있다. 거기 서서 주위를 바라보면 'The Last Drop'과 'Maggie Dicksons Pub'을 볼 수 있다. Last Drop은 처형되기 전 범죄자가 마시는 한 잔이란 의미로 이곳에서 마지막 목을 축였다고 한다. 다른 곳의 사연은 Margaret Dickson이란 여자와 관련이 있다. 원치 않는 임신 후 아이가 미숙아로 태어나 곧 죽자 강에 버렸는데 이것이 발각돼 교수형에 처해졌다. 하지만 무덤에 묻혔던 그녀는 관 속에서 살아났다. 사람들은 이를 신의 뜻이라 여겼고, 그녀는 남은 생을 에든버러에서 보냈다고 한다.





그 밖에


@프린지 페스티벌 때 다시 오고 싶다.



@칼튼 힐 석양



@스코틀랜드 독립 영웅 얘길 듣고 빨간 공중전화 박스를 보니 기분이 이상하다. 스코틀랜드가 독립 국민투표를 재추진한다고 한다. 이번엔 어찌되려나. 브렉시트 여파가 크긴 크다.





프리워킹투어를 하면서 가이드 젠은 사람들은 '윌리엄 월레스'란 이름이 적힌 묘지 앞으로 이끌었다. 사람들이 사진을 찍자 이내 "윌리엄 월레스 묘지를 기대하고 온 사람들이 있겠지만 아쉽게도 없다"며 역사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가 데려온 곳은 동명이인의 수학자의 무덤이었다.


윌리엄 월레스는 스코틀랜드 독립 영웅으로 영화 <브레이브 하트>에 그의 삶이 잘 드러난다. 그는 상대와 싸우면서 계속 '자유'를 외쳤고 마지막에 적에게 붙잡혀 처형을 당하면서도 "자유(freedom)"을 외쳤다. 사실 실제는 영화보다 더 끔찍했다. 처형 후 그의 시신은 갈가리 찢겨 곳곳으로 보내졌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무덤은 그 어디에도 없다.



 

20여년 만에 속편인 <트레인스포팅 2>가 개봉했다. 영화관에 가기 직전 전편을 보고 간 덕에 전편을 '자기복제'한 장면들을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1편을 볼 땐 그들이 에든버러를 뛰는 그 유명한 장면을 보면서도 에든버러 어디인지 감이 오질 않았는데, 2편에선 이완 맥그리거가 친구와 등산을 할 때부터 그 곳이 어딘지, 발 아래로 펼쳐지는 풍경들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 곳인지 바로 기억이 났다. 주인공들이 로열마일을 뛸 때 익숙한 풍경에 혼자 반가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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