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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k Feb 20. 2017

베를린에서 꼭 가야만 했던 곳들

여행지에서 과거만 거닐다 올 때가 많다. 궁전 교회 성당을 둘러보며 수백 년 전 건축양식에 대해 생각하고, 박물관과 미술관에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시대별 화풍의 차이를 느껴보려 노력한다. '올드타운'이라 이름 붙은 곳을 걸을 땐 바닥에 깔린 돌만 봐도 기분이 좋아진다. 옆을 스쳐가는 사람들은 제쳐둔 채 옛사람들과만 실컷 소통을 한다. 


베를린에선 현재와 만나는, 그리고 좀 더 나다운 여행을 했다. 관광지 대신 유명한 카페와 브런치 가게를 찾아다녔다. 서촌에서 연남동으로 그리고 망원동으로 옮겨가며 마음에 드는 카페들을 찾아다녔던 것처럼 여기서도 현지인들 사이에 뜨고 있는 곳들에 들렀다. 가는 길엔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건물 대신 그래피티 혹은 낙서 가득한 벽면이 이어졌다. 구글맵이 후미진 골목으로 이끌어 '여기 있는 거 맞아?'라고 고개를 갸웃하며 의심할 때쯤 가게가 나타나곤 했다. 때론 가게가 건물 안에 숨어있어 코 앞에 두고도 찾지 못해 주변을 빙글빙글 돌아야 했다. 





Do you read me??


독특한 이름에 한번 피식 웃고 문을 열었다. 들어가자 오른쪽 벽면에 가득 진열된 잡지에 먼저 눈이 갔다. 각자 매력을 뽐내는 표지를 하나하나 훑으며 한 권씩 꺼내 휘리릭 넘겨보았다. 그 사이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다. 책을 사러 오는 사람들보단 구경하러 오는 이들이 더 많은 듯했다. 


상반신 노출 사진, 얼굴이 클로즈업된 사진 등 강렬한 이미지들 사이에 소박하게 발을 쭉 뻗고 발가락을 꼼지락대는 사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Science of the Secondary>란 이름 붙은 십여 페이지 남짓의 잡지였다. 컵, 양말 등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그래서 깊이 생각해 볼 일이 없는 사물이 이 잡지의 주제다. 매 회 사물 하나를 골라 집중적으로 다루는데 접근 방식이 꽤 흥미로웠다. '양말'을 다룬 회의 경우 양말을 신는 법을 설명하며 앉아서 신는 경우, 누워서 신는 경우, 한 발로 서서 신는 경우 등을 그림으로 그려 설명했다. 사진도 글도 재치 있어 마음에 들었다. 

 


@책은 못 샀고, 가방은 안 샀다.


Roamers


일요일 오전 10시 오픈 시간에 맞춰 Roamers를 찾았다. 밖에서 기다리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느긋하게 움직여 15분 전쯤 도착했는데 가게 앞엔 이미 두 팀이 기다리고 있었다. 안을 슬쩍 들여다보니 테이블이 많지 않아 속으로 안도했다. 


준비를 마친 가게는 딱 10시에 문을 열었다. 혼자 온 내게 바리스타 앞 바 자리가 주어졌다. 꽁꽁 싸매고 있던 목도리를 풀고 겉옷을 벗으며 한숨 돌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벌써 테이블이 가득 차 있었다. 간발의 차로 자리를 잡지 못한 이들이 줄지어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무엇을 주문할까 고민하던 차에 옆 자리 사람에게 조언을 구했다. 이곳 분위기가 맘에 들어 가끔 온다는 그녀는 연어가 들어간 오픈 샌드위치를 추천했다. 그녀는 예술적 분위기가 가득한 베를린을 한참 칭찬했고, 나는 영화제 얘길 했다. 수다를 떨다 조금 늦게 주문했더니 들어온 지 50분쯤 지나서야 샌드위치가 나왔다. 풀로 뒤덮인 접시가 앞에 도착했을 때 살짝 당황했지만 맛있게 먹었다. 


작아 보였는데 카운터를 보는 사장과 바리스타 그리고 주방엔 네댓 명의 직원이 일을 하고 있었다. 아늑한 가게 분위기만큼이나 일하는 사람들 분위기도 좋아 보였다. 한 주방 직원이 한창 커피를 만들고 있는 바리스타에게 다가가 친근하게 커피 한 잔을 부탁하는 모습, 끊임없이 손님들 커피와 차를 만들어주는 중간중간 커피를 마시던 바리스타, 가게에 흘러나오던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며 주문을 받고 계산을 하던 주인의 모습이 따뜻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영화를 보기 위해 급히 나가는 내게 "입맛에 맞았냐"는 인사를 건넨 옆자리 사람은 앞으로 뭘 할 계획이냐고 물었다. 그녀는 특별한 계획이 없다면 '클럽'에 꼭 가야 한다고 했다. "클럽은 별로 안 좋아해서..."란 대답에 내 어깨를 툭툭 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클럽은 여기 문화야! 한 번쯤 경험해볼 만 해"라며 이름(Kater blau)까지 적어줬다. 시간이 없어 못 갔지만 혹 나중에 다시 오게 된다면 꼭 가보고 싶다. 


@연어와 아보카도 수란이 곁들여진 샌드위치. 처음 풀만 무성하기에 조금 당황했다. 소나무를 연상시키는 길고 뾰족한 이파리는 먹어도 되는 것인지 고민하다 한 입 먹었는데 향이 좀 강했다. 더블린에 돌아와 마트에 갔다 허브 코너에서 이 생명체의 이름이 'Dill'이란 걸 알게 됐다. 



Bonanza Coffee


카페 근처 파우어 파크에선 유명한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여기까지 왔는데'라며 공원 쪽으로 발길을 옮기다 이내 돌아섰다. 코끝 찡한 추위에 따뜻한 커피 한 잔이 필요했다. 충전기를 꽂고 이것저것 끼적일 수 있는 자리에 앉을 수 있다면 더 좋고.


일요일이라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았다. 고요한 거리를 지나 '보난자 커피' 문을 열자 온기와 함께 활기가 느껴졌다.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일행과 시끌벅적 이야기를 나누고, 커피를 주문하려는 사람들은 카운터 앞으로 줄을 길게 늘어섰다. 몇몇은 자리를 잡지 못해 잔을 들고 가게 안을 어슬렁거렸다.   


메뉴를 훑어보다 '피콜로 라떼'란 낯선 이름에 눈이 멈췄다. 설명을 들었지만 라떼, 플랫화이트와 차이가 느껴지지 않아 필터 커피를 주문했다. (나중에 검색해보니 여긴 피콜로 라떼가 유명하다고 한다) 세 종류의 커피가 가게 한 가운데 놓인 테이블 위에서 내려지고 있었다. 커피 도구라기보단 차 주전자에 가까워 보이는 검정색 용기가 흥미로웠다. 앞엔 이름과 커피콩 원산지 그리고 맛에 대한 간략한 설명도 있었다.  


'필터 커피'를 달란 말 밖에 안 했는데 직원은 세 종류의 커피 중 하나를 따라다 자리로 가져다주었다. 투박해 보이는 머그잔엔 레몬향을 풍기며 차와 같은 느낌이 나는 'Adado'란 커피가 담겨있었다. 


휴대전화를 충전하느라 다른 사람들보다 좀 오래 머물렀다. 대부분은 얘길 나누거나 공부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커피를 마시기 위해 이곳을 찾는 듯 보였다. 구석 자리에서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산책을 나온 듯 개를 데리고 온 이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베를린에서 지하철을 탈 때 객차 내 금지행위 안내문에 음식물, 술은 금지지만 강아지는 탑승 금지가 아니라 입마개를 하라고 돼있는 점이 재미있었다. 카페 안에 강아지를 데리고 들어왔지만 누구도 불편하다고 느끼지 않는 걸 보면 여기선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게 한국에서보다 좀 더 자연스러운 모양이다. 



@필터 커피




Father Carpenter coffee brewers

브런치를 먹으며 커피 한 잔을 마셨지만 부족했다. 커피 체인점에서 주는 톨 사이즈 이상 거대한 커피에 익숙해져서인지 커피잔에 담겨 나오는 한 잔만으론 늘 양이 차질 않는다. FC에 들러 유명하다는 플랫 화이트 한 잔을 즐겼다. 



@플랫 화이트


Mogg


'Do you read me??' 주위 음식점을 검색하다 Mogg and Melzer를 발견했다. '샌드위치가 맛있으면 얼마나 맛있겠느냐' 싶으면서도 트립어드바이저 평도 좋고 1920년대 지어진 건물에 위치해 있단 사실에 끌려 찾아 나섰다. 


역시나 구글맵에 의존했다. 분명 지도 상엔 근처인데 간판이 보이질 않았다. GPS 오차가 있을 수 있단 생각에 길을 계속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러다 구글맵이 가리키는 곳 근처에서 문을 하나 발견했다. 열고 들어가자 포르투갈에서 볼 법한 타일 바닥이 나타났다. 남의 건물에 잘못 들어온 건가 싶어 나가려던 차에 mogg를 발견했다. 


이 빨간 벽돌 건물은 1927년 유대인 여학교로 지어졌다고 한다. 외부는 삭막해 보이지만 내부의 공동 공간은 형형색색의 타일로 장식돼있다. mogg는 이 건물 한편에 2012년 자리를 잡았다. 


샌드위치를 주문하며 사이즈가 두 개이기에 크기 차이가 얼마나 나는질 물었다. 직원은 "작은 건 좀 부족할 수도 있어. 하지만 디저트로 케이크까지 먹으면 딱 적당할 거야"라며 웃었다. 나는 샌드위치와 커피를 주문했는데 맥주를 주문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점심시간이었는데. 샌드위치를 먹고 나니 배가 불러 디저트가 당기지 않았다. (사실 다른 가게도 가야 해서 공간은 남겨둬야 했다) 계산서를 달라는 내게 그는 "케이크는?"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나중에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이것 뉴욕 치즈케이크가 이 동네에서 좀 유명한 듯했다. 적극적인 권유는 자부심의 표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파스트라미 샌드위치와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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