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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비 May 10. 2019

18. 마음은 아직 여름에 머물러 있는데

불어오는 바람은 이미 가을이 왔다고 말한다. 





한바탕 장마와 태풍이 지나가고 오랜만에 날씨가 개서 빨래를 했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여전히 한낮의 온도는 여름 날씨 같지만 찌는 듯한 습도도 줄고 하늘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일본은 한국보다 해가 빨리 뜨고 빨리 진다. 그래서일까  처음에는 너무 빨리지는 해에 익숙해지질 않아서 밤만 되면 집에 콕 박혀있었는데,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을까 바람이 서서히 차가워진다는 걸 느꼈다. 

내 기억은 아직 여름에 머물러 있는데 바람은 가을이 왔다고 말한다.  


9월이 되자 나는  기억속에서 오래 남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주 지나가던 장소를 그리기 시작했다.



9월

월세는 매달 마지막 날에 부동산에서 다음 달을 비용을 미리 지불한다. 

11월이면 돌아가기 때문에 방은 10월 말까지 사용하기로 했다. 최소 두 달 전에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어서 지난 8월 말에 말씀을 드렸던 터였다 

9월 마지막 주, 10월 월세를 내면서 계약해지 관련 서류를 쓰고 나가기 전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봤다 

방은 처음 들어왔을 때처럼 아무것도 없어야 하고, 전기회사에도 연락해야 하고 청소비도 빼줘야 하고 할 일이  많았다. 


라멘집에서 일하다 잠시 손님이 뜸할 때 즈음 점장님이 물어보셨다 

"성원이는 언제까지 할 수 있어?"

10월 말까지 할 예정이라고 말씀드렸다. 

" 그럼 방의 물건들 처분해야겠네. 내가 도와줄게 "

진심으로 나를 생각해주는 말 한마디에 따뜻한 위로를 받는다.


#골목

집 앞 다닥다닥 붙어있는 건물들 사이로 난 골목길을 지날 때가 좋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는 듯 그릇끼리 부딪히는 소리와 아이들이 재잘재잘 떠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 골목 끝에서 쏟아지는 오후의 햇빛과 끝없이 푸른 하늘과 빈 공간을 꾸미듯 전선이 몇 가닥 보이기 시작하면 동화 속 주인공처럼 다른 세계로 걸어가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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