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반짝임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by 타비

미세먼지 낀 듯 희뿌옇지만 날이 따뜻한 날이다. 어젠 귀찮아서 씻지도 못했지만 잠은 나름 잘 잔 듯해도, 엄- 뭐랄까 계속 자고 싶었다.

씻기까지 좀 오래 걸렸는데. 뭔가 씻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시간을 좀 많이 보낸 것 같다. 그 와중에 어제 사놓은 한정판 빼빼로를 참을 수 없었다. 먹고 나서 기분이 좋아졌나 하면, 후회? 불쾌? 스트레스성으로 먹은 기분이라 영 찜찜하다. 그대로 씻으러 들어갔다. 이렇게 하면 기분이 좀 나아질까 싶어서

씻고 나면 확실히 기분이 나아지는 게 있다. 일주일 동안 관리하지 않은 수염도 자르고 조금 움직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거 보면, 카페로 나와서 이렇게 일기인지 에세인지 모를 글을 쓰는 중인 것을 보면 말이다.


오늘은 2025년 월즈, T1과 KT의 결승 경기가 있는 날이다. 주일인데도 교회 안 갈 생각하는 중, 오늘은 그런 기분이 아니랄까? 사람이 많은 곳은 피하고 싶어서 이기도 하고, 내일 스스로 정한 일정을 소화하는 것도 상당한 에너지가 들기 때문에. 오늘 예배 보러 가는 건 과감하게 패스하기로한다.


그러고 보면 교회 안 가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끼는 건, 그동안 좋게 봐온 사람들이 날 보고 이러쿵저러쿵 할 것에 대한 기본적인 불안이 있어서 그런 듯하다. 실제로 그러지 않을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는 불안이랄까. 그래서 요즘엔 눈치 보지 말고 힘들면 회복하는 게 맞다고 스스로에게 되뇌인다.

선택이라는 건 100% 자기 의지라고 할 순 없는 것 같다. 나라는 인간은, 어쩌면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라서 눈치도 봐야 하기 때문이라 생각하는데, 그 비율을 내 중심으로 두느냐 바깥쪽으로 두느냐에 차이가 있지 않은가 싶다.


우리나라만 그런 건지 아시아의 대부분 나라가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우리나라의 현재는 과거의 일본에서 가져온 것들이 기반이기 때문에 [경쟁으로 움직이는 사회]라는 건 지금의 일본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아니면 한국은 여전히 과도기인 걸까? 너무 빨리 성장했지만 그에 맞는 소프트웨어가 업데이트되지 않은 문제일까


이렇게만 글을 맺는다면 결국 사회 탓만 하다가 끝맺는 글이 될 것이므로 사소한 적용을 해보자면, 나만이라도 그 굴레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지자고 결심해 본다. 적어도 누굴 만나고 안 만나는 것에, 타인의 기분보다는 나의 상태가 어떤지, 만나고 난 이후의 내가 괜찮은지 정도는 생각하고 결정하자는 일종의 필터를 만드는 것이다.

이전에 나는 타인의 기분이 우선되었던 삶을 살았던 것 같다. 그로 인해 내 안의 반짝임을 잃어버렸고 지금은 그 반짝임을 찾아가는 중이다. 생각해 보면 사람의 반짝임은 자기의 취향이나 주장 같은 게 마음의 저변에 퇴적되어야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글을 맺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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