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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한수 Apr 27. 2018

예상할 수 없는 그리움

1
 
커다란 짐을 머리에 이고 우아하게 균형 잡힌 곡선을 그리면서 걸어가는 그녀를 보았다. 손은 사용하지도 않고 그저 온몸에서 여유가 묻어났다. 그 곡선의 인상이 낯익었기 때문인지 나는 그녀가 어딘가 내가 들어본 곳에서 온 사람일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옆에서 비슷한 짐을 힘겹게 들고 가는 그녀의 동료가 그 기술에 감탄하면서 "콩고에서 온 여인네"라고 부르는 것을 들었다.
 
그 콩고에서 온 여인은 내가 자주 가던 학교 도서관 건물을 청소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전부터 그녀가 하고 다니는 머릿수건이나 말투 같은 것에 미묘한 친근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길게 대화를 해 볼 생각은 못하고 "굿모닝. 오늘 머릿수건이 예쁘네요-"라는 인사를 건네었던 것이 전부였다.
 
그 날은 그 곡선의 느낌 때문이었는지, 어떤 확신이 들어서, "Unaongea Kiswahili? (Do you speak Kisawahili?)"라고 말을 걸었다. 그녀는 여전히 짐을 머리에 인 채로 나를 향해 활짝 웃었다.
 
우리는 한동안 어느 동아프리카의 시골길에서 만난 사람들인 듯 이야기를 하면서 걸었다. 그녀는 미국에 오기 전에 케냐에 있었는데, 내가 언젠가 차를 타고 몇 번 지나쳤던 어떤 동네의 이름을 이야기하면서 거기서 살았다고 했다.
 
그녀는 나에게 내일도 학교에 올 거냐고, 그 건물에서 다시 보자고 인사를 했다. "Siku njema (Have a good day)."
 
나는 여전히 애리조나에 있었지만, 아주 잠깐 그 땅에 다녀온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땅을 바짝 마르게 하는 열기를 식히는 우기의 비가 내리면 맡을 수 있는 그리운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다.

 
2
 
애리조나에는 피닉스와 투싼을 중심으로 동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오는 난민들이 재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단체들이 있다. 피닉스의 어느 한 지역에 가면 소말리아에서 온 가족들이 많이 모여 살아서 작은 소말리아가 형성되는 중인 그런 동네도 있다. 지역 장터 같은 것이 서는 곳에 가면 어디서 기르는지 농산물을 가져다 파는 사람들 중에 낯익은 눈매와 입매를 가진 사람들을 볼 때도 있어서 반갑기도 하다.
 
그런 시장에서 한 번은 꼭 케냐에서 본 것 같은 모양과 색깔로 사모사(인도식 튀김 만두)를 만들어 파는 아줌마를 만났다. 케냐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아서 어디에서 오셨냐고 물어보니 아줌마는 소말리아에서 오셨단다. 그리고는 케냐 북쪽에 있다가 왔다고 하셔서 내가, "다다브?"라고 하니 "어떻게 알았니?"하고 어눌한 영어로 되물으신다.
 
케냐 북부에는 이제는 일종의 거대한 거주지역이라고 부를 수 있는 다다브와 카쿠마라는 거대한 두 난민 캠프가 있다. 다다브(Dadaab)는 소말리아 국경 쪽에 가깝고, 카쿠마(Kakuma)는 남수단 국경에 가깝다. 그래서 소말리아 사람이라면 다다브에 있는 캠프를 거칠 때가 많다는 생각에 나는 그냥 때려 맞춘 것이었다.
 
차가운 애리조나의 밤공기에 다 식어버린 그 사모사를 하나 사서 입으로 데워 먹었다. 케냐에서 작은 요기가 필요할 때면 따끈한 차이와 함께 사모사를 자주 사먹었더랬다. 갓 만든 것이 아니고서는 바삭하지도 않고 눅눅하게 식은 기름맛으로 먹게 되는데, 그때는 내가 그 기름 맛을 그리워할 날이 올 줄은 몰랐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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