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아주머니는 끝내 내가 세례를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을 믿을 수 없어했다. 그녀는 세상에 영어식의 세례명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어했다. 주말이면 나는 교회에 다녀왔냐는 질문을 몇 번이나 받아야 했고, 또 하느님을 믿냐 안 믿냐에 대한 대답을 해야 하는 때가 많았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 내게 "나는 그래도 하느님께 감사한다"라고 말하는 것도 이해를 하면서도 이해하지 못했다. 어떤 면에서 나는 식민지 선교사들의 사업이 정말 '효과적'이었구나 싶기도 했다. 구원을 이야기하는, 도대체가 셀 수가 없이 많은 온갖 종파의 성직자들이 이 나라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단적인 예로, 온갖 설전이 오가는 공식 회의를 길 공사를 잘 하게 해달라느니 나라를 잘 인도해달라느니 등의 기도로 문을 여는 것을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게 종교를 비롯한 세상의 수많은 가치들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複數; the plural)의 대상이었고, 그 복수의 대상을 통해서 세상을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케냐까지 흘러왔는데, 대체 왜 이곳에서 나는 종교를 '장애'로 느껴져야 하는지 참 의문이었다.
그날 아침에는 비가 많이 내렸고, 나는 우산을 꺼내지 않고 길을 나섰다. 길에는 우산을 쓰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서 정말 심하게 많이 내리지 않는다면 입고 있는 비닐 잠바로 견뎌보고 싶었다. 역시나, 비가 오는 일요일이지만 흙더미를 파헤치는 사람들이 눈에 보였다. 돈을 받고 하는 일이겠으나 궁전 같은 집이 가득한 동네의 수로를 파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몸은 유난히 고되어 보였다. 빗속에서 누군가 나를 알아보길래 멈춰서 인사를 나누고 보니, 길에서 종종 만나던 아저씨다. 뭔가 민망해서 인사만 하고 가야겠다 하는데 그는 또 다른 질문으로 나를 붙잡았다.
"교회에 가니?"
(이곳에서 교회란 한국식으로 성당과 교회를 모두 포함하는 단어이다.)
난 거짓말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도 웃긴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대충, "아, 네, 주일학교에 가요"라고 대답했다 (난 정말 어떤 수도회의 주일학교 선생인 친구를 땜빵하러 가는 중이었다).
대충 대답을 했다는 생각에 자리를 뜨는데 아저씨는 정말 예상 밖의 부탁을 했다.
"교회에 가거든, 나를 위해 기도해줄래?"
내가 뒤짚어쓰고 있던 모자에서 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비가 내리는데, 그 물방울 사이로 비에 젖어 차가운 몸으로 삽질을 하고 있는 이가 자신을 위한 기도를 부탁한다. 고된 일을 하느라 가고 싶은 교회를 못가는 이가 하는 부탁이었다. 나는 차마 못한다는 말을 못 하고, 알겠다고 하고 돌아서서 걸었다.
여러 번 케냐를 오가면서, 수많은 종파의 교회와 기독교 단체들이 가난한 이들을 구호하겠다고 애쓰는 모습을 일상적으로 관찰해왔다. '좋은 일'에 대한 포장은 다들 그럴싸했지만, 서로 다른 종파 또는 교회끼리 경쟁하는 모습도 많이 보았고, 스와힐리어는 커녕 영어도 잘 되지 않아서 케냐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이 부족한 경우도 보았다. 이미 충분히 기독교적인 사람들에게 아직도 수준이 낮고 멀었다는 듯이 엉성한 영어로 호통치던 한 전도사를 보고, 너무나 신실했던 내 친구는, "저 전도사는 한국에서 다시 교육을 받고 와야 하지 않겠냐"라고 말한 적도 있다. 그래서 나는 종교의 이름으로 열심히 케냐를 공략하려던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 답답함이 앞섰다. 이미 충분히 기독교적인 이 나라에서 대체 뭘 더 바라는 것인지. 그래서 그랬는지 나에게 기도란...뭔가 편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대상이었다.
그런데. 여기 불신자와도 같은 나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이가 있다. 그것도 자신을 위한 기도를 간절하게 부탁한다. 나는 그가 원하는 기도를 모르는 사람인데 말이다.
내가 기도를 했을까?
지금도 구원을 말하며 '우리 교회'에 오라는 사람들을 보면, 가끔 그이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