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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한수 Jan 13. 2018

생일에 대한 이야기

가장 많은 난민들이 생일로 적어내는 날은 1월 1일이다. 출생연도만 제각각이지 1월 1일이 생일인 이유는 사실, 다들 생일이 언제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생일을 기록하는 문화가 아닌 곳에서 온 사람들이 많기에 생일을 모르는 것이 문제가 되지도 않았을 터이다. 하지만 난민등록을 하려면 생년월일을 등록해야 하고 그 와중에 쉽게 ‘만들어낼 수 있는’ 생일이 1월 1일이다. 그러니까 다들 등록하는 과정에서 모른다고 하면 1월 1일로 등록이 되는 경우가 많고, 가족 전원의 생일이 1월 1일인 경우도 드물지 않다.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가족 중에 막둥이나 어린아이들의 생일은 정확하게 기록된다는 것이다. 10명의 대식구들 중에 9명의 생일이 1월 1일이라도 여섯 살 먹은 막둥이의 생일만 다른 경우도 봤다. 왜일까. 이 아이들이 최소한 서류적인 절차를 갖추는 난민캠프의 진료소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생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적인 관점에서 쳐다보면 너무 서운하고 깜짝 놀랄 수 있는 일처럼 보이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식민지 시대를 겪은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에서 생일의 기록은 식민지 시민이 되는 과정의 일부분이었다. 식민지 시대의 케냐에서는 영국인들의 농장과 가정에서 케냐 남성들을 고용할 때 키판데(Kipande)라고 하는 신분증을 발행하면서 생일 기록을 의무화했다. 16세 이상의 남성이 집 밖을 돌아다닐 때는 키판데 서류가 들어있는 양철통을 개목걸이처럼 걸고 다녀야 했는데, 그 불편함과 치욕감이 얼마나 컸는지 이런저런 일화들이 여전히 전해지고 있다. 그중의 하나로 키쿠유 공동체 출신으로 나중에 작가로 유명해진 무고 가데루의 자서전에도 이야기 하나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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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오후, 내 할례 의식에서 중요한 동료였던 무차바와 함께 걸어가고 있었을 때 겪었던 일이야. 나이로비의 팡가니 (Pangani) 지역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멀리서 “거기 멈춰!”하는 소리가 들렸어 [……] 돌아보니, 경찰 두 명이 우리를 향해 재빨리 다가오는 것이 아니겠니. 가슴이 벌렁거리면서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어. 멈춰 서서 그들이 다가오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무차바에게 속삭이듯이 물었지.

“너 키판데 가지고 있어?”

그러자 무차바는 “아니 안가지고 있는데,”라고 대답하는 것이 아니겠니.

“나도 없는데”라고 하니까, 무차바가 그러더라. “야, 우리 이제 지옥을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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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맥락에서 독립 후에 국민국가를 정비하면서 구성원들의 생일을 의무적으로 기록하기 시작한 경우도 있다. 그래서 생일을 모르면 그냥 ‘간편하게’ 나라의 독립기념일을 생일로 삼는 경우도 있는데 인도네시아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노년층의 생일이 독립기념일인 8월 17일이 가장 많다고 들었다 (확인은 안해봤다).


생일을 기록하는 방법이 꼭 출생증명서에 생년월일을 기록하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예로들면,  어떤 문화에서는 “어머니가 나를 몇 번째 보름달이 떴을 때 낳으셨대”와 같은 방식으로 생일을 기억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또 이름만 보면 생일 즈음의 상황이 담겨 있는 경우도 있다. 케냐의 루야 공동체에는 완잘라(Wanjala)와 와풀라(Wafula)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을 많다. 완잘라는 기근이라는 뜻이고, 와풀라는 우기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비록 서류상의 날짜가 정확하지 않아도 완잘라라는 사람들은 만나면, 아 이 사람은 대충 식량이 떨어지던 때에 태어났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참 얼마나 완잘라들이 많던지. “아니 세상에 그렇게 먹고 살기 힘든 때에 이렇게들 많이 태어났던건가?”싶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또 얼마나 많은 완잘라들이 태어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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