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둠을 배경 삼아서 다 같이 웃었다
이틀 내내 전화를 여러 번 하는데도 계속 전원이 꺼져있어서 뭔가 감이 왔다.
"아, 전기가 나갔구나. 그래서 전화기 충전을 못하고 있구나."
그래서 연락은 되지 않아도 분명 만날 수는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길을 나섰다.
동네로 들어가는 초입은 진흙과 진흙이 엉겨붙어 발을 디디기에 안전한 곳이 보이지 않았다. 멀쩡한 신발을 신은 나도 걷는 것이 고역이었으니 성치않은 신발을 신은 사람들이 신발을 신고가는지 진흙은 신고 가는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마을 초입에서 늘 소리 경쟁을 하는 가스펠 노래들과 복잡한 리듬의 힙합 음악들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한번 전기가 정말 나갔다는 확신(?)을 하면서 느릿느릿 진흙이 엉겨 붙은 걸음을 옮겼다.
나이로비의 보랏빛 자카란다 꽃잎들이 떨어지는 때는 소우기라고 불리는 1-2개월 정도의 짧은 우기이다.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에는 빈민가 뿐 아니라 부자들이 사는 동네에서도 전기가 종종 나간다. 하물며 전기를 몰래 끌어다가 쓰는, 지도에도 없는 동네의 사정은 말할 것도 없다. 전기가 나간 동네는 너무나 고요해서 여기저기 아기들의 울음소리만 들린다. 이곳의 집을 만드는 주재료는 얇은 양철판인데, 그 얄팍한 칸막이 사이사이로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두런두런 들려오기도 한다.
진흙 때문에 평소에는 신나게 뛰어놀던 아이들이 가겟집이나 집에 틀어박혀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오랜만에 보는 내 얼굴이 반갑다고 언니가 내지르는 소리를 듣고 아가도 문간으로 뛰어나왔다. 내가 다가가니 작은 발꿈치를 들고 양팔을 벌려 내게 내민다. 평소에는 울퉁불퉁하고 쓰레기로 범벅이 된 빈민가의 골목 구석구석을 혼자 잘도 누비며 걸어 다니는 아가이지만, 우기의 진흙길을 걸어내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내가 할머니집으로 향한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안아서 데려가 달라는 몸짓이다.
나는 아가를 들어 품에 안았다. 아가의 몸은 작은데 아가를 안고 진흙과 싸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릎 밑으로 옷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은 이미 포기했고, 그저 아가를 떨어뜨리지 않고 고작 몇 미터 떨어진 좁은 골목길 사이에 있는 할머니집에 도착하기만을 바라며 엉기적 엉기적 걸었다. 어느 순간 내 옆에는 아가의 언니와 그 사촌인, 할머니의 또 다른 손주가 싱긋이 웃으며 걷고 있다. 이런 작은 동네에서는 가족들이 한집 건너 이웃에 살면서 함께 아이들을 키우고 돌보면서 살아가기 마련이라 아이들은 가깝고 먼 혈육들과 어울려 자란다. 그리고 자연스럽게도 나같이 어떤 특정한 구성원을 찾는 손님은 그이의 가족과 이웃 모두의 손님이 된다.
나보다는 가벼운 걸음으로 먼저 도착한 아가의 언니는 전기가 나가서 캄캄한 집안으로 외쳤다.
"냐냐, 타이 아메쿠자(할머니, 타이가 왔어요)!"
작은 양철집의 어둠을 뚫고 할머니의 목소리가 가느다란 빛처럼 들려왔다.
"와피(어디에)?"
그 순간 문 앞에 닿은 내가 아이 대신 곧바로 "하파(여기요)!"라고 대답하니, 우리는 그 타이밍이 반가워서 다 같이 까르르 웃는다.
할머니의 손을 잡고 나는 "스티마이메엔다(전기가 나갔죠)?"라고 말하는데, 할머니는 깉은 말을 억양만 다르게 "스티마이메엔다(전기가 나갔어)"라고 동시에 말하니, 그게 왠지 또 반가워서 우리는 어둠을 배경 삼아서 또 한 번 다 같이 웃었다.
케냐의 우기에는 낮에는 햇빛이 따갑게 내리쬐지만 밤에는 비가 폭풍같이 내린다. 우기가 끝날 때까지 사람들은 셀 수 없는 밤낮을 정전 속에서 보내겠지만 그 공동체를 지탱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정전이 없기를 바라면서 그 어둠 속의 웃음을 추억한다.
*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 코리아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