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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한수 Jan 07. 2018

여행자를 위한 박자

라오(老)베이징이라고 불리는 북경의 구시가지 한가운데. 스마트폰의 지도를 더듬어 니우지에(牛街)를 찾았다. 소란스러운 전철역 주변의 상권을 지나서 그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을 뿐인데 많은 것이 다르게 보인다. 아랍문자와 한자가 병기된 식료품점들과 소수민족들의 길거리 음식을 파는 가게들. 여기저기 자신의 종교적 믿음을 조심스럽게 드러내는 복장들.


조금 다르게 보였던 그 베이징에 천년도 더 전에 터를 잡았다는 이슬람 사원 입구에 도착했다. 입장료를 내야 된다고 들었는데, 어디서 내고 들어가는지 몰라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누군가 두 관광객을 알아보고 매표소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겨울 공기에 김이 서린 창문 너머로 보이는 그의 책상 위에는 늦은 아침식사인지 이른 점심식사인지 알 수가 없는 음식들이 조그만 양철 도시락 통에 담겨 있었다. 기름에 볶은 듯한 채소 요리와 하얀 쌀밥. 리안 감독의 영화 <음식남녀>에서 주인공 요리사 아버지가 손녀를 위해서 싸던 맛깔스러운 도시락이 생각났다. 이 매표소 노인의 도시락은 누가 싸줬을까. 찰나의 사소한 궁금증과 표를 사야 한다는 관광객 본연의 의무의 사이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노인이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따지아하오. 안녕하세요. 


수십 번을 들었던 인사말이었지만 노인의 목소리에는 여행자를 위한 박자가 담겨있었다. 그저 느리다라고만은 표현하기 어려운 그런 박자. 그래서일까. 북경에서의 3박 4일을 마무리하던 그 날,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오래전에 배운 만다린 문장을 입 밖으로 꺼내보았다.  


뚜오샤오치엔? (입장료가) 얼마인가요?


노인은 익숙한 배려인 듯 입장권 하나를 내어 보인다. 한 장에 10위안. 지갑을 꺼내서 내게는 여전히 낯선 자잘한 동전들을 천천히 세어 20위안을 창문 안으로 건넸다. 기본적인 산수가 된다면 틀릴 것도 없을 그 동전들의 수가 맞았는지 틀렸는지 노인의 표정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노인은 두 장의 입장권을 내어주었다. 사원의 사진이 큼직하게 나온 입장권이다. 만다린을 모르는 나와 여행 동무는 엉성한 성조로 감사의 인사를 반복적으로 읊었다.


씨에씨에, 씨에씨에. 


노인이 인자한 몸짓으로 손을 흔들며 말한다.


부커치. 

-


북경에서 나흘을 보냈던 것은 열흘 전의 일이다. 여행 특유의 시각적인 경험이 많기도 했지만, 돌아온 후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람들의 말과 목소리의 박자다. 하루 일과에 빈 공간이 생기면, 북경에서 들은 그 말과 목소리에 대한 글귀를 머릿속에 끄적이게 되었다.


한동안 글을 손에서 내려놓았다. 글쓰기가 지루했다. 자신감도 없었다. 글로 뭔가를 해야 한다는 중압감도 있었다. 그래서 그냥 글쓰기를 멈췄다. 사실은 게을러졌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그 낡은 북경의 이슬람 사원에서 들은 노인의 목소리를 글로 남길 궁리를 시작했다. 다시 글을 써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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