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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한수 Apr 01. 2018

꽁고이 꽁고이

마라톤을 잘하는 칼렌진 사람들

언제나 다툼이 있었다. 물을 두고, 또 가축을 두고 싸웠다. 마지막으로 치열했던 때에는 하룻밤 사이 300여 명이 죽고 나중에 또 더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집이 불타고 집집마다 한 사람 이상을 잃어야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파른 돌산을 타고 올라가 높은 지대에 집을 짓고 살면서 평화를 기다렸다.

 

이제는 하나 둘 내려와 다시 버섯같이 동그란 흙집을 짓고 옥수수와 가축을 키우며 척박하지만 단단한 삶을 일구고 있다. 서로 싸웠던 이들의 아이들이 같은 학교에서 함께 노래를 하고 축구도 한다. 평화라는 것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단다.

 

아름답지만 또 어려운 역사를 간직한 케냐 케리오 벨리(Kerio Valley)의 산악지역에서 수많은 마라톤 선수들을 배출하는 칼렌진(Kalenjin) 공동체의 마라퀫(Marakwet) 사람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이 높은 돌산 구석구석을 나는 듯이 뛰어다닌다.


오늘 대구 마라톤 대회 순위권에 이름을 올린 이름들을 보면서 많이 웃었다. 대부분이 케냐 사람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이름만 보면 어느 공동체 출신인지 딱 알 수 있는 이들은 케냐 마라톤 선수층의 다수를 차지하는 칼렌진 공동체의 사람들이다. 팔다리가 길고 가늘며, 고산지대에서 폐활량을 키우며 자란 이들은 유목을 하는 공동체로서도 좀 특수한 전통이 있는데 그건 바로 다른 마을의 가축을 훔치는 것이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도둑질이 전통이라니 그 맥락을 모르면 아마도 어이가 없을 테다. 척박한 지역에서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생긴 이 전통(?) 때문에 칼렌진 사람들이 가장 빨리 달리는 사람들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칼렌진 공동체 내에서 또 세부적으로 나눠지는 공동체들이 있다 (사는 지역이나 언어 등이 약간 다르다). 나는 운이 좋게도 그 중의 한 공동체인 마라퀫 사람들이 사는 엘게요-마라퀫(Elgeyo-Marakwet) 지역의 체송고치(Chesongoch)라는 마을에서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거기서 흔한 남자 이름 중 하나가 키무타이(Kimutai)였는데 내 이름의 첫 부분인 김태가 그렇게 읽혀서 사람들은 나를 키무타이라고 불렀다 (여성형은 체무타이(Chemutai)다). 캄캄한 밤이면 아무런 불빛도 없고 가축들과 야생동물들의 소리만 들리던 그곳에서 밤잠을 못 이루고 이런저런 생각에 빠졌던 기억이 난다.   


평일 낮에 먼지투성이의 흙길을 다니면,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의 무리와 마주친다. 아이들은 보통 다 찢어지거나 낡아서 떨어진 교복을 입고 다니는데 책가방은 없어도 온갖 색깔의 깡통이나 부서진 플라스틱 컵 따위를 꼭 쥐고 있다. 학교에 가면 받아먹는 죽을 담아서 먹을 '식사도구'들이다. 망고 같은 과일이 많이 열리는 계절이면 몰라도 먹을 것이 별로 없는 시기에 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것은 최소한 그날의 끼니는 챙길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아이들에게는 책 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그 깡통이나 컵이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색색깔의 용기들을 흔들면서 걸어가는 그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곳은 그런 아이들 중에서 세계를 제패하는 마라톤 챔피언이 나오는 땅이었다. 아이들은 가파르고 가시나무가 가득한 고산지대를 훨훨 날아다니는 듯 뛰어다닌다. 현지 사람들에게 배운 감사의 인사는 "꽁고이(Kongoi)"인데, 그 말이 입에 붙어서 다른 공동체의 땅에 가서도 잠시 동안 꽁고이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왠지 계속 말하고 싶은 어감의 그런 말이었다.


꽁고이, 꽁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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