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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정빈 Apr 13. 2021

박훈정은 어디로 가는 걸까

<낙원의 밤>에 대한 몇 가지 단상


1.

박훈정의 <낙원의 밤>이 클리셰 범벅이라는 데 나 역시 동의한다. 다만 이 지적은 새삼스럽다. 박훈정은 애초에 독창적인 영화를 만들었던 적이 없다. 그의 작품 중에 가장 많이 회자되며, 숱한 명장면과 명대사를 만들어낸 <신세계> 역시 앞서 나온 누아르 영화들에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조폭 누아르 영화를 꾸준히 봐온 관객이라면, <신세계>가 차용한 작품을 3~4개는 쉽게 댈 수 있을 것이다. 박훈정은 믹스를 잘하는 작가이다. 원래 있는 것들을 잘 조합해서 더 재밌게 만든다. <낙원의 밤>은 믹스가 잘 되지 않은 것이다.


2.

아마 기점은 <브이아이피>인 것 같다. 당시 박훈정은 여성혐오 논란에 휩싸였고, <브이아이피>의 흥행 성적도 좋지 않았다. 이후에 나온 작품이 바로 여성 주인공이 등장하는 <마녀>이고, 최근 개봉한 <낙원의 밤>이다. 나는 박훈정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르지만, 이 행보를 보면 최소한 그가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다만 '브이아이피 논란'을 과하게 의식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다가 페이스를 잃은 느낌이랄까. <브이아이피>까지가 박훈정 영화 1기였다면, 그 1기와 언젠가 시작될 2기 어딘가에 <마녀>와 <낙원의 밤>이 있는 것 같다.


3.

박훈정이 <낙원의 밤>에서 보여준 시도에는 동의한다. 특히 전여빈이 주도하는 종반부 장면은 더 오래 보고 싶었다. 문제는 영화가 2시간 10분 내내 너무 비장하고 느끼하다는 것이다. 특히 대사가 좀 힘들었다. 담백하게 보이려고 하는데, 담백하지가 않다. 좋은 배우들이 나와서 열연하지만, 과장된 연기를 한다는 느낌도 받았다. 이 역시 앞으로 펼쳐질 '박훈정 2기'로 나아가기 위한 과도기가 아닐까, 긍정적으로 생각해본다.


4.

종반부 전여빈 장면에 대한 한 마디. 결국 <낙원의 밤>은 이 장면을 위해 달려왔을 것이다. 이 시퀀스를 보면 마치 박훈정이 지금껏 자신이 만든 그 깡패 영화들을 모두 없애버리려는 듯한 느낌이 든다(그런데 그 깡패의 낭만 같은 걸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 이 태도는 무언인가). 검정 양복과 검정 세단을 타고 칼을 휘두르며 의리와 배신을 오가는 깡패 남성들의 세계와의 작별이랄까. 그렇다면 <마녀2>는 어떤 영화일까. 기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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