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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May 13. 2022

[베놈 2] 이 영화의 장르는 로맨스?

정확히는 로맨틱 (B급 막장) 코미디






자본 냄새가 물씬 풍기는 화려한 액션을 자랑하는 마블 히어로 영화에 특유의 유머가 없었다면 아마 지금만큼 인기를 끌지는 못했을 것이다.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하다. 하나만 파되 정말 제대로 해낼 것이 아니라면 메인 장르에서는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다른 장르의 특성도 소스나 토핑 삼아 적절히 가미해 주어야 작품이 지루해지지 않는다. 반대로 DC 영화가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상대적으로 큰 인기를 끌지 못한 데는 세계관 특유의 무겁고 진중한 분위기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어정쩡해진 탓도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생각을 하다 접한 영화가 다름 아닌 ‘베놈’이다. 처음에는 그저 또 다른 마블 영화인 줄로 착각하고 봤던 이 영화는 제법 신선했다. 그런데 그 신선함이 무조건 긍정적인 것인지, 그렇다고 막연히 부정적인 쪽인지는 판별하기 여전히 어렵다.


‘베놈’을 감상하는 중 온갖 생각이 몰려들었다. 도대체 감독과 작가를 비롯한 제작진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영화를 만든 것일까, 먼 옛날 샘 레이미 감독 버전의 스파이더맨에서 잠시 등장하고 사라져야 했을 캐릭터를 괜히 부활시킨 건 아닐까, 등등. 그런데 우습게도 러닝타임이 흐르면 흐를수록 서서히 베놈에게 ‘감기는’ 나를 발견했다. 흉악한 비주얼에 속이 좁아터진 츤데레 외계 생명체라니. 어이가 없는데 싫지 않았다. 그 어떤 영화에서도 본 적 없고, 앞으로도 볼 일 없을 에디와 베놈의 관계성 역시 곱씹을수록 흥미로웠다. 그래서인지 이게 도대체 무슨 캐릭터이고 뭐 하자는 영화인지 도무지 모르겠으면서도 다음 편이 기다려졌다. 그리고 마침내 ‘베놈 2’가 공개되었고, 우디 해럴슨이 등장하는 강렬한 티저 덕에 전편보다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와 한층 더 높은 긴장감을 느낄 수 있으리란 기대를 품었다. 그런데 웬걸. 막상 까 보니 우디 해럴슨은 그저 에디와 베놈이 서로에 대한 사랑을 다시금 확인하는 매개체이자 들러리일 뿐이었다.


압도적인 포스의 우디 해럴슨(오른쪽)의 카니지. 그런데 영화에서는 왜...



더욱 돈독해진, 혹지독해진 우리


여전히 하나인 듯 둘이, 둘인 듯 하나의 몸으로 살아가는 에디와 베놈. 그러나 외계에서 온 심비오트인 베놈은 인간의 뇌를 먹어야 성에 차지만, 지구에서 사는 인간으로서 에디는 베놈이 사람을 먹어치우도록 내버려 둘 수가 없다. 이처럼 본능을 억제하며 살아가느라 욕구불만이 쌓여 있는 베놈과, 인간답게 살아가고 싶어 고군분투하는 에디는 항상 티격태격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에디는 악명 높은 연쇄살인범 클리터스와 만나게 되고, 그는 자신이 원하는 메시지를 기사에 실어주면 본인이 저지른 살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렇게 클리터스에게 알 수 없는 시만 듣고 돌아서려던 에디. 베놈의 도움으로 클리터스의 독방에 있는 낙서들을 발견하고, 그가 살해한 희생자들의 시신이 묻힌 장소를 알아낸다. 덕분에 에디는 다시 스타 기자의 자리에 오르게 되지만, 결정적 증거가 나오게 되면서 클리터스는 사형을 선고받는다.


에디와 클리스터


얼마 뒤 에디는 다시 클리터스를 만나고, 두 사람이 몸싸움을 벌이던 중 분노한 클리터스가 에디를 깨물어 버린다. 그 과정에서 에디의 피, 정확히는 몸속 심비오트를 맛보게 된 클리터스. 그는 사형 집행 당일 몸에 이상을 보이다 베놈보다도 더 강력한 존재, 카니지로 변신하게 된다. 한편 식성 문제로 실랑이를 이어오던 에디와 베놈은 결국 다툼 끝에 갈라서고, 둘은 각자 달콤한 자유를 만끽하지만 이것도 잠시. 오래지 않아 둘은 한 몸 같았던(?) 서로에 대한 그리움과 허전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러다 곧 카니지가 감옥을 탈출하고, 뮤턴트 수용소에 갇혀 있던 연인 프랜시스를 구출하는 과정에서 대학살(카니지)을 일으켰다는 소식이 퍼진다. 전 여자 친구 앤의 중재로 마침내 다시 만나게 된 에디와 베놈은 어색한 화해를 거쳐 카니지를 찾아 나선다. 카니지가 자신보다 강하고 무자비하다는 것을 눈치챈 베놈은 처음엔 겁을 먹고 도망치려 하지만, 앤이 인질로 붙잡히는 바람에 결국 사생결단의 대결에 나선다.


베놈 (무섭다)
카니지 (정말 무섭다)



뻔뻔함이


어디선가 ‘베놈’과 관련된 흥미로운 글귀를 본 적이 있다. 영화 ‘베놈’은 어떻게든 로맨스를 피해온 톰 하디에게 내려진 형벌과 같은 것이라고. 배우 톰 하디의 출연 작품 중 ‘디스 민즈 워’는 나름 로맨틱 코미디이긴 하지만 톰 하디가 맡은 캐릭터는 결국 여자 주인공과 이루어지지 않고, 로맨스보다는 코미디 느낌이 더 강한 편이다. 그의 필모그래피 내 다른 작품들도 전통 로맨스인 영화는 없는 듯하다. 만약 정말 톰 하디의 미모가 한창 빛을 발할 시절 로맨스 영화를 찍지 않아 내려진 형벌이 ‘베놈’이라면, ‘베놈 2’에서는 그의 형기가 더 늘어난 모양새라고 할 수 있다. 서로가 미워 죽겠으면서도 상대방에게 다시 돌아가고, 티격태격 투정 부리다가도 애정을 속삭이는 모습을 단순히 숙주인 지구인과 그의 안에 기생하는 외계인의 관계로만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게다가 제삼자에게 부부 상담을 받아 봐야 한다는 소리까지 들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정말이지 '베놈은, 특히나 '베놈 2'는 비틀어진 로맨스가 아닐 수 없다.


우당탕탕 빙글빙글 돌아가는 우리 둘 사이


오래전 샘 레이미 버전 스파이더맨의 베놈만 하더라도 숙주 에디와 평화로운 공생 관계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비록 영화 내 분량이 많지 않아 둘의 관계성을 파악하는 데 한계는 있었지만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에디가 맞이한 파국을 떠올렸을 때 긍정적인 관계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래서 어떻게 스파이더맨 시리즈와는 결이 전혀 다른, ‘베놈’에서와 같은 관계성을 생각해 냈는지 신기하다. 내 안에 베놈과 같은 심비오트가 들어온 상황을 상상해 본다면, 심지어 그런 파괴적인 비주얼에 폭력성을 갖춘 외계인이 나의 몸속에서 산다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좋게 봐주기는 힘들 것 같다. 비록 베놈이 나름 좋은 일도 하지만 내 몸속에서의 공존을 허락함으로써 내 주체성을 어느 정도 포기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차라리 디즈니 플러스 드라마 ‘문 나이트’에서처럼 필요에 따라 다른 자아를 불러내는 게 나아 보일 정도다. 그렇다면 내 몸이 내 것인 것만은 여전하니까. 그러나 이러한 나의 상상과 달리 에디와 베놈은 마치 서로에게 중독되기라도 한 듯 점점 더 상개가 없으면 안 되는 양상을 보인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흉측하게 생긴 외계인과 40대 남성이 서로의 애정을 필요로 하고 상대방의 빈자리에 허전해하는 그림은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게다가 그 외계인이 본인의 폭력성과는 어울리지 않게 가끔은 어린애처럼 투정을 부린다니. 이런 설정을 시도한 베놈 시리즈가 그야말로 뻔뻔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대놓고 뻔뻔하게 나간 덕분인지 어느새 이 황당한 관계성에 어느 순간 말려든다. 만약 둘을 어쩔 수 없이 협업하는 가장 상식적인(?) 관계쯤으로 그렸다면 별로 임팩트가 없었을 것이고, 우정 비슷한 쪽으로 묘사했다면 진부하게 느껴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분명 지독한 애정으로 얽혀 있지만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는 에디와 베놈의 오묘한 사이는 비록 호불호는 갈릴지언정 영화의 정체성과 존재감을 확립하는 데 있어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제작 가능성이 크다고 알려진 ‘베놈 3’에서도 이 뻔뻔함의 힘이 먹힐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사진 출처]

IMBD : https://m.imdb.com/title/tt7097896/?ref_=ext_shr_lnk

다음 영화 :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29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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