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인과 나 #11
바리새인과 나 #0
눅 16:13-15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 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것 중 하나가 돈이다. 현대문명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 중에 돈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에게는 모두 돈이 필요하다. 물질만능주의가 판치는 세상에는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클라우디아 해먼드(Claudia Hammond)가 쓴 ‘돈의 힘(Mind over money)’이라는 책에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을 위해 산다고 말하는 것을 천박하게 여긴다고 한다.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일수록 대체로 돈에 덜 집착하고, 젊은 사람일수록 돈에 대해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기 때문에, 소비를 하는 데 있어 크게 주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부간의 이혼 사유 중 가장 큰 원인이 바로 돈에 관한 다툼이라는 연구 결과와 가난이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연구결과가 함께 실려 있다. 가난이 주는 고통을 해소하면 삶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심지어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을 혐오한다는 실험 결과까지 실려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 중에 돈과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사람들은 돈에 관한 거짓말에는 관대하다는 내용이다. 1950년대에 심리학자인 ‘레온 페스팅거’가 한 실험에 의하면,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게 하고 각각 1달러와 20달러를 주었더니 1달러를 받은 사람보다 20달러를 받은 사람이 훨씬 더 거리낌 없이 거짓말을 하였다고 한다.
이 페스팅거의 실험을 중국의 심리학자가 중국식으로 바꾸어 실험을 했다. 실험 참여자들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한 사람이 땅에 떨어진 돈을 먼저 주우려고 다른 사람을 밀쳐서 쓰러뜨리는 사진이었다. 몇 장의 사진이 있었는데, 어떤 사진은 땅에 떨어진 돈의 금액이 적었고, 어떤 사진에는 거금이 떨어져 있었다. 이 실험에서 참여자들은 적은 돈 때문에 다른 사람을 밀친 경우보다 큰돈 때문에 밀친 경우에 더 관대하게 보았다는 것이다. 참여자들이 돈 때문에 다른 사람을 밀쳐 넘어뜨려도 된다고 생각한 변환점은 300위안, 우리 돈으로 약 5만 원 언저리였다. 사람들은 대개 떨어진 5만 원을 먼저 줍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밀쳐도 된다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이런 실험들을 통해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돈을 받고 한 나쁜 행동을 용서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비슷한 맥락으로 사람들은 몇 푼 안 되는 돈을 들고 도망친 강도에게는 비난만 퍼붓지만, 몇 십억을 훔친 은행강도를 보면서는 은밀한 존경심을 느낀다고 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눅 16:1~8)가 생각났다. 어떤 주인에게 옳지 못한 청지기가 있었는데, 주인의 재산을 낭비하고 있었다. 주인이 그 사실을 알고는 그 청지기를 해고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직장을 잃고 살 길이 망막해진 청지기는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의 장부를 거짓으로 수정해 준다. 실제 거래와 거짓 장부의 차액 중에서 일부를 착복하거나, 주인에게 빚신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려는 술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일을 모두 알게 된 주인은 그 불의한 청지기를 오히려 칭찬한다.
2천 년 전의 예수님께서는 마치 현대에 벌어진 페스팅거의 실험 결과를 알고 계셨던 것과 같이 이 비유를 베푸셨다. 그리고 이것은 세상 사람들의 지혜라고 하셨다.
눅 16:8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비록 옳지 않았지만, 돈과 관련된 일을 지혜롭게 처리함으로써 오히려 칭찬받는 것.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예수님도 이 사실을 알고 계셨다. 그리고 이 불의한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 또한 알고 계셨다.
눅 16: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돈으로 살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친구다. 예수님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돈으로 살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가치 있는 것도 친구다. 그래서 예수님은 돈으로 친구를 사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나중에 가장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친구 외에도 돈으로 살 수 있는 가치 있는 것들은 참 많다. 우리는 물질을 적절하게 사용함으로써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도 있고, 우리에게 행복감을 주는 여러 가지 경험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돈으로도 결코 살 수 없는 것이 있다.
예수님은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에 이어서 부자와 거지 나사로가 나오는 비유를 들려주신다. 나는 이 비유의 제목을 ‘음부에 떨어진 부자의 비유’라고 지어보았다. 왜냐하면 이 비유의 내용이 집중하고 있는 것은 거지 나사로가 아니라 부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제목이 제일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음부에 떨어진 부자의 비유’에서 부자는 명품 옷을 입고 날마다 파티를 하며 즐겁고 화려하게 살았다. 거지 나사로는 명품 옷은커녕 자기 몸조차 성하지 못해 버려진 사람이었다. 부자의 파티 테이블에서 나오는 음식 찌꺼기로라도 연명하려고 부자의 집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그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 동네 개들이 나사로의 상처를 핥을 정도였다. 부자와 나사로의 삶에 이렇게 큰 격차가 있었지만, 결국 두 사람은 모두 죽었다. 삶은 공평하지 않았지만 죽음은 지극히 공평했다. 부자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죽음의 결과로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고, 부자는 음부의 고통에 떨어지게 되었다. 부자가 가진 돈으로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심판은 되돌릴 수 없었다. 부자는 자기의 가족들만이라도 자기와 같은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기를 소원했지만 그 또한 그가 아무리 부자였어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부자는 왜 이렇게 실패하게 되었을까? 부자의 실패는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을까? 물론 비유 안에는 그에 대한 해답이 나와 있지 않다. 예수님은 부자가 심판받게 된 과정을 설명하시지 않는다. 하지만, 예수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부자가 심판을 받게 된 이유를 말씀해 주셨다.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와 ‘음부에 떨어진 부자의 비유’ 사이에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눅 16: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부자가 왜 심판을 받았을까? 그 이유는 그가 돈을 섬기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한 사람이 좋은 옷을 입고 날마다 파티를 벌이며 즐겁고 화려하게 살았다.”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부자”라고 명확하게 말씀하신 이유는 그가 돈을 섬기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말씀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께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신 말씀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부자는 돈을 섬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돈을 섬기지 않는 부자도 있을까? 물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부자이면서 돈을 섬기지 않을 수 있을까? 바로 그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기보다 어려운 일이다. 돈을 섬기는 사람이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으니, 부자는 하나님을 섬기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돈을 섬기는 사람들은 돈과 함께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기 십상이다. 몇 가지 실험에서처럼 사람들은 돈과 관련해서는 관대해지는 경향이 있고, 많은 돈을 가진 사람에 대해서는 옳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하는 주인과 같이 옳지 않은 것을 잘했다고 간주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그렇게 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하는 주인 같은 분이 아니다. 예수님은 이 점을 분명히 말씀하신다.
눅 16:1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심지어 하나님은 돈에 현혹되어서 옳지 않은 것을 옳다 하는 것, 또는 그런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자신이 옳다고 스스로 판단하는 것, 돈 때문에 사람들 중에 높임을 받는 것을 미워하신다.
물론 사람들은 돈을 위해 산다고 말하는 것을 천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돈을 경멸하는 척한다. 그러면 뭔가 더 지식 있는 사람인 것 같고, 어딘가 더 무게 있는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우리 속 안에는 돈을 좋아하는 마음이 들어 있다. 우리가 아무리 그 마음을 숨겨도 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그런 가식적인 모습을 꿰뚫어 보셨다.
눅 16:14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 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바리새인들은 돈을 섬기지 말고 하나님을 섬기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비웃었다. 그들의 비웃음에 대해 설명하라고 했다면 바리새인들은 분명히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는지 아는가? 우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와 같은 사소한 일상조차 하나님께 드린다.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율법을 지키는데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돈이 얼마고 드리는 시간이 얼마인데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다고 하는가? 저 갈릴리에서 온 촌뜨기가 뭘 몰라도 한 참 모르는구나!”
그러나 그렇게 말한다면 정말 몰라도 한 참 모르는 것이었다. 이 기도를 한 번 살펴보자.
“오 주님, 주님께서는 제가 요즘 에섹스에 싼값에 부동산을 구입한 줄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미들 에섹스와 에섹스 두 지방에 화재와 지진이 없도록 도와주소서. 헤르트 포드 샤이어에도 집을 구입했으니 그 지역도 자비의 눈으로 지켜 주시옵기를 구하옵나이다. 그 외의 지역은 주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하시옵소서. 오 주님, 은행이 빚을 잘 갚게 하시며, 내게 빚진 모든 자들이 좋은 사람들이 되게 하시고, 머메이드호가 순조롭게 항해할 수 있게 도와주소서. 그 배는 아직 보험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옵니다. 주께서 ‘악한 자의 날이 길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으므로, 주께서 주의 약속을 잊지 않으실 줄 믿고 기도하오니, 예절도 모르는 젊은이 J.L. 경이 죽는 날 나의 재산이 될 그의 부동산도 지켜주소서. 나의 친구들이 타락하지 않게 하시고 나를 도적과 강도에게서 보호하시며, 나의 종들로 정직하고 충성스럽게 하셔서 언제나 내게 유익을 끼치고, 밤이건 낮이건 내 소유를 홈치지 못하게 하소서.”
이 기도는 영국 의회의 회원이었던 존 워드(John Ward)의 기도다. 하나님을 섬기는 척하면서 돈을 섬기는 전형적인 바리새인의 기도다. 자 이제 가슴에 손을 얹고 이 질문에 정직하게 대답해 보자. 나의 기도와 존 워드(John Ward)의 기도가 얼마나 다른가? 나는 정말 돈이 아닌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가?
돈으로 많은 것을 살 수 있다. 얼마간의 사랑이나 행복도 살 수 있고, 친구도 살 수 있다. 물론 돈이 있어 그런 것을 산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이다. 하지만 돈으로 의로움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의로운 것처럼 꾸밀 수도 있고, 사람들도 그렇게 인정해 주는 경향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된 의로움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다. 천국에 들어갈 의로움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실 때, 그때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사람은 돈으로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여 돈을 섬기는 행위다. 하나님께서는 돈으로 자신을 의롭게 꾸미는 행위를 미워하신다. 하나님은 돈을 섬기는 사람을 심판하신다.
자! 이제, 비웃어야 할까? 아니면 회개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