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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복 Oct 22. 2019

소통의 훼방꾼, 지식의 저주

프로는 어렵게 말하지 않는다

<레 미제라블> (*빅토르 위고의 대표작으로 장 발장이라는 주인공이 겪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그리고 있다)로 잘 알려진 작가 빅토르 위고는 틈틈이 여행을 즐겼다. 다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국경 헌병대를 찾은 위고에게 병사는 자세한 인적사항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이름은?”

“빅토르 위고입니다.”

“무슨 일로 먹고 사십니까?”

“펜이요.” 


그의 답변에 병사는 뭔가를 적었다. 그리고는 국경을 통과해도 된다고 했다. 그때 호기심 많은 위고는 병사가 적은 내용을 슬쩍 보았다. 


“이름: 빅토르 위고”

“직업: 펜 장수” 


프랑스를 대표하는 최고의 작가 빅토르 위고가 졸지에 ‘펜을 파는 장수’가 된 것이다. ‘펜’이란 말을 놓고 한 사람은 ‘작가’를 의미하는 것으로 다른 사람은 ‘펜 장수’로 각각 다르게 해석을 했다. 1 


이 간단한 대화만 봐도 소통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는 이런 오해가 생겨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중요한 약속을 하거나, 회사의 운명을 좌우할 제품을 개발할 때, 또는 생사가 오가는 수술을 하는 상황에서 나와 상대가 어떤 말을 달리 해석한다면 결과는 어떻게 되겠는가!  


사람들은 SNS, 협업 등을 통해 서로 거미줄처럼 연결되고 있다. 또한 다양한 경험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만나서 대화하는 경우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소통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졌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여기저기서 소통이 안된다는 볼멘소리가 들린다.  


남들과 교류할 때 자주 겪는 어려움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보면 많은 사람들은 큰 고민 없이 소통을 으뜸으로 꼽는다.  


“난 당신이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난 그런 줄 몰랐어요.”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가 없어요.” 

“실컷 설명을 했는데 도대체 왜 이렇게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거지?” 

“그때 이렇게 말하지 않았나요?” 

“왜 저 사람과는 소통이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고도 내 마음을 그렇게 몰라?”  


이렇게 소통이 잘 안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들이 사방에서 튀어나온다. 




무엇이 소통을 이토록 어렵게 만들고 있을까?

찬찬히 상황을 들여다보면 그 중심에는 ‘지식의 저주’가 똬리를 틀고 있다.  ‘지식의 저주’란 아는 것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어 소통을 방해하는 현상을 말한다. 내가 잘 알아서 익숙한 것을 남도 당연히 이해할 거라 생각하고 말을 한다. 하지만 상대방에게는 생소하다. 그래서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아주 엉뚱하게 해석하기도 한다.  


친구 간에 다음과 같이 말이 오간다.


“오늘 하루 종일 카페인만 하다 집에 갔어.”

“너 커피를 얼마나 마신 거야?” (커피의 주요 성분인 카페인을 떠올리며)

“오늘 카페인을 하다 놀았는데 요즘 재밌는 영상도 많고, 사진도 많아. 너도 얼른 해봐.”

“커피를 많이 마셨다는 말 아니었어?”


첫 번째 친구가 말한 ‘카페인’은 ‘카카오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의 앞 글자에서 온 말이다. 두 번째 친구는 이 용어를 처음 들어보기 때문에 자기 나름대로 해석을 했다. 이처럼 일상의 대화 속에서도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쉽게 지식의 저주에 빠져든다.


지식의 저주를 설명할 때 손꼽히는 연구가 있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뉴턴 박사가 한 연구로 한 사람이 노래를 드럼 스틱(드럼을 치는 채)으로 연주하면 상대가 이 노래 제목을 알아맞히는 것이다. 그녀는 사람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한 그룹에게는 생일 축하 노래과 같이 누구나 알 수 있는 노래를 스틱으로 두드려서 연주하게 하고, 다른 그룹에게는 이 연주를 들으면서 그 노래의 제목을 맞히게 했다. 듣는 사람들이 몇 곡이나 맞힐 수 있을까? 연주 전에 두드리는 사람들에게 묻자 50퍼센트 정도라고 답을 했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120곡 중 겨우 세 곡만 맞히었다. 2.5퍼센트에 불과한 것이다.2 


나도 소통에 대한 강의를 할 때마다 같은 실험을 했다. 그런데 많은 경우 누구나 부를 수 있는 애국가조차도 맞히지 못한다. 그때마다 연주자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이렇게 쉬운 노래를 어떻게 못 맞히지?”, 반면에 듣는 사람들은 “정말 알아맞히기가 힘들다.”라고 반응을 보였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

연주자는 머릿속으로 “동해물과 백두산이~~”라는 식으로 노래를 부르면서 드럼 스틱으로 두드린다. 그러나 듣는 사람들은 단지 두드리는 “똑~똑~”하는 소리만 듣게 된다. 연주자들은 듣는 사람들이 단지 똑똑 소리만 듣는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 연주자들이 지식의 저주에 빠진 것이다.


두드리는 사람과 듣는 사람 간의 이런 차이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지식의 저주에서 벗어난다면 소통은 훨씬 잘 될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당신에게 “아, 저 사람, 설명을 정말 알아듣기 쉽게 하네!”라고 찬사를 보낼 것이다. 서로 이해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지식의 저주는 단지 나는 알고, 상대방은 모르는 지식의 격차 때문에 발생하는 것만은 아니다. 지식의 저주를 한 꺼풀 더 벗겨보면 한가운데에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내 생각과 상대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아주 상식적인 대화의 원칙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지식의 저주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자기중심적인 사고까지 포함해서 다양한 현상과 문제점, 해결방안들을 심층적으로 다룬다.  


나는 그동안 ‘소통의 적, 지식의 저주를 풀라’라는 주제로 여러 회사에서 수천 명에게 강의를 했다. 그들은 지식의 저주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공감을 했다. 또한 대학에서 나의 리더십 수업에 참가한 대학생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를 물었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지식의 저주를 첫손가락으로 꼽았다. 몇 년이 지나 사회에 나가서도 그들은 여전히 대화를 하거나 글을 쓸 때 이 개념을 떠올린다고 말한다.  


나는 강의를 하면서 참가자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했다. 이 책은 그들의 지혜 덕분에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도 못한 멋진 아이디어를 준 그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어휴 답답해~~


<참고 문헌>

1. 무천 강 (2017), 하버드 논리 수업,  이지은 옮김, 미래지식 

2. Newton, L. (1990), “Overconfidence in the Communication of Intent: Heard and Unheard Melodies,” Ph.D. dissertation, Stanford University,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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