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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복 Oct 23. 2019

당신은 지식의 저주에 걸리지 않았다고?

지식의 저주 사례

사람들은 지식의 저주가 나와는 먼 거라고 생각한다. 30대의 직장인 주연 씨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정말로 그럴까? 

그의 일상을 따라가 보자. 


여느 때처럼 아침을 알리는 알람 소리에 그는 재빨리 잠자리에서 빠져나온다. 행여 ‘조금만 더 잘까?’하는 유혹이 들까 후다닥 출근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서서 회사에 도착, 잠시 후 부서장과 만난다.  


부서장은 주연 씨가 만든 자료를 보면서 “좀 더 산뜻하게 해 봐!”라고 말을 한다. 이 말에 ‘뭐지?’라는 궁금증이 생겼지만 주연 씨는 이내 ‘자료를 깔끔하고 보기 좋게 만들라는 의미겠지.’라고 해석을 한다. 그리곤 공을 들여 자료의 이미지와 글씨체를 다듬는다. 다 되었다며 부서장에게 수정한 자료를 갖고 가자 또다시 부서장은 눈썹을 치켜올린다.  


“내가 언제 이렇게 하라고 했어!”

부서장은 쓸데없는 데 시간을 낭비했다고 핀잔을 준다. 그는 내용이 복잡하니까 단순하게 정리하라는 뜻으로 지시한 것이었다.  


지시를 하면서 부서장은 속으로 ‘우리는 오랫동안 함께 근무했으니까 내 생각을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아들었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주연 씨가 가져온 결과를 보니 자신의 기대와는 딴판이다. 


상사들은 종종 이런 상황에서 부하에게 불평을 쏟아낸다. 

“도대체 말귀를 못 알아들어.” “왜 시키는 대로 일을 하지 않는 거야.” 

그러나 주연 씨도 할 말은 있다. 

‘부장님, 처음부터 설명을 제대로 하셨어야죠.’

물론 이 말은 돌아서서 되뇔 뿐이다.  


설명하지 않는데 남들이 어떻게 족집게처럼 나의 말을 잘 알아듣겠는가?




재차 자료를 수정한 후 주연 씨는 부랴부랴 내년도 사업방향을 소개하는 설명회 장소로 발걸음을 옮긴다. 여러 부서에서 온 직원들이 함께하는 자리다. 임원은 설명을 하다가 대뜸 주연 씨 옆에 앉아 있는 김 과장에게 “김 과장, 스맥(SMAC)이 뭔지 알아요?”라고 질문을 한다. 순간 모든 참석자들의 시선이 김 과장에게 쏠렸다. 이것을 느낀 듯 김 과장은 얼굴 근육이 굳어진다. 모두들 그의 입에 주목했다. 그러나 그는 바로 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임원은 “요즘 기업용 솔루션 시장의 가장 큰 화두인데 그것도 모르나?”라며 인상을 찌푸린다. 그러곤 자신이 ‘SMAC(소셜 social, 모바일 mobile, 분석 anlysis, 클라우드 cloud)’에 대해 일장 연설을 한다. 설명회가 끝나자 김 과장은 다른 사람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자리를 뜬다. 퇴근 때 동료들을 만난 자리에서 그는 “일할 의욕을 상실했다.”라고 그때의 감정을 털어놓는다. 


임원의 질문에 당황한 것은 김 과장만이 아니었다. 주연 씨 역시 그 자리에서는 ‘스맥(SMAC)’이 어떤 말의 줄임말인지 곧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줄임말 때문에 곤혹스러웠던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어제도 부서의 동료들과 이야기를 할 때 한 동료가 “공부를 잘하려면 ‘굿바이 카페트’를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함께 있던 동료들은 그 의미를 몰랐다. 알고 보니 이것은 카톡, 페이스북, 트위터를 멀리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주연 씨는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 이런 줄임말들을 종종 익히고 있다. 최근에 알게 된 ‘FAANG(페이스북 Facebook, 애플 Apple, 아마존 Amazon, 넷플릭스 Netflex, 구글 Google)’을 비롯하여 ‘갑분싸(갑자가 분위기 싸해진다), ‘TMI(too much information, 알고 싶지 않은 쓸데없이 너무 많은 정보)’, ‘일코노미(1인 가구와 이코노미의 합성어)’, ‘현질(현금과 질의 합성어로, 게임에서 유료 아이템을 현금을 주고 사는 행위) 등 수없이 많다.  


SNS가 일상화되면서 단축된 용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하고 있다. 이것은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전달하려는 욕구에서 생겨났다. 긴 단어들을 줄여서 말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과 빠른 소통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만 이 말들을 이해하지 못해 가끔 난처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줄임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상대도 이것을 잘 알리라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다음날 주연 씨는 점심 식사를 하고 바로 은행에 들른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꽤 많은 사람들이 자기 번호가 전광판에 뜨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자리에 앉아 바로 앞에 있는 창구를 보고 있다.  


창구에는 노 부부가 앉아 있다. 부부는 해외여행을 위해 환전을 하는 것 같았다. 창구 직원은 ‘현찰 매도율은 천백팔십 원이고, 현찰 매입률은 천백십이 원이어서, 7십만 원을 환전하면 5백9십3 달러예요.”라고 친절한 목소리로 설명해주었다. 그런데 가만히 설명을 듣고 있던 어르신이 갑자기 책상 위에 볼펜을 던지면서 말했다. 

“에이,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가 안 되네!”   


매도율, 매입률과 같은 용어가 환전을 여러 번 해본 사람이라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처음 환전을 하는 노 부부에게는 무척이나 낯설고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는 듯했다. 그 직원도 자신이 환전을 위해 은행을 찾은 고객에게 평소 해오던 대로 현찰 매입률과 매도율을 알려주었지만 노부부가 그 용어를 정확히 이해할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고객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예가 떠올랐다. 요즘 가장 잘 나가는 기업 중 하나인 미국의 아마존 이야기다. 이 회사는 온라인 서점으로 출발해서 현재는 최고의 IT기업으로 성장하였고 인공지능과 우주개발 같은 미래산업에도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제프 베조스가 1994년 7월 5일 처음 회사를 설립할 때는 회사 이름이 아마존이 아니었다. ‘카다브라’라는, 다소 생소한 이름이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수리수리 마수리와 같은 말로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주문이다. 베조스는 이 말의 뒷부분인 ‘카다브라’를 따서 회사 이름을 지었다.  


그러나 ‘카다브라’에 대해 고객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해부용 시체라는 뜻을 갖고 있는 ‘카데버(cadaver)’라는 단어와 발음이 비슷했고 기억하기도 쉽지 않았다. 


베조스는 온라인상에서는 무엇보다 이름이 쉬워야 사람들이 수월하게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철자가 다소 복잡해서 제대로 타이핑을 하지 못하면 그 사이트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 ‘아마존’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일단 친숙해서 기억하기가 아주 쉽고 타이핑하기도 편하다.1 

(아브라카다브라, Abracadabra는 아랍어 abra (אברא) "이루어지라"와 cadabra (כדברא) "내가 말한 대로"에서 나온 것으로'내가 말한 대로 될지어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위키피디아) 


주연 씨는 ‘고객을 대할 때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 점을 간과하는 것 같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직장인에게는 단비와 같은 주말, 주연 씨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가족 모임 장소로 향한다. 식당에 도착하니 부모님과 형님 가족들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눈만 뜨면 게임에 푹 빠져 있는 중학생 조카는 여기서도 모바일 게임을 하느라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바로 스마프폰으로 눈을 돌린다. 이 모습에 형님은 이렇게 말한다.  


“아들아, 게임 그만하고 이제 제발 공부 좀 해라.”

“알았어요.”라고 말을 하면서도 조카의 손은 게임을 하느라 바쁘다.  

이런 반응에 형님은 더 세차게 말한다.

“지금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10년 후에 네 색시의 얼굴이 어떨 것 같니?” 

조카는 엄마 얼굴을 힐끗 쳐다본 후 “그럼 아빠는 공부를 못하셨나 봐요?”라고 응수한다. 


형님은 조카에게 자극을 주려고 한 말인데 씨도 안 먹힌다. 그 뒤로도 형님은 자신의 경험을 빗대어 조카의 마음을 돌려보려 하지만 통하지 않는다. 조카는 형님의 좋은 의도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달리 해석을 했다. 아들은 그저 불편한 잔소리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형님이 조카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봤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주연 씨의 일상을 함께 따라가 보면서 일상생활에서 지식의 저주가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가를 엿볼 수 있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지식의 저주는 늘 곁에 있다. 아마 당신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주연 씨가 경험한 지식의 저주 예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그리고 더 다양한 지식의 저주를 경험한다. 그 결과 우리는 소소한 오해부터 고객을 잃는 것까지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곤 한다. 


지식의 저주! 언뜻 보면 참 쉬운 개념이다. 다른 사람은 내가 아는 만큼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될 것 아닌가. 그러나 겉으로 보기와는 달리 지식의 저주는 이렇게 간단히 막을 수가 없다. 실제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 이유는 자신이 지식의 저주에 얼마나 자주 걸리는지를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르니 고칠 수가 없다. 


이것이 우리가 지식의 저주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1. 니시무라 가쓰미(2016), 1분 베조스,  김은경 옮김, 북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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