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한 페이지,

그때 나를 다리밑에서 주워 왔다는 형들의 말에

by 태하

그 시절엔 동네마다 한 두 개씩은

있는 우물이지만 우리 동내는 지대가

높아서 그래서인지 무쟈게 깊은 우물이

있었다. 그때엔 우물을 시암 이라고도

불렀지요~!!


우리 집엔 시암이 없어서 이른 아침

새벽이 먼 매일 엄니 등쌀에 정지간의

엄청 큰 항아리에 뒷집의 정육점을 하는

순자네 집에 있는 시암에서 두른 박으로


퍼 올린 물을 지게도 없이 양손에 물동이

하나씩 들고 정지토방에 있는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워 놔야만 될 일이 내가

해야만이 될 일이지요~^^


깊은 시암은 하도 깊어서 물 바닥도

안 보여서 캄캄하고 어두운 데다가

그냥 손 감각만으로 작은 키에 바닥도

미끄러운데 물 두른박을 퍼 올릴 땐

때로는 무서웁기도 했었지요!!


그 시절에 가끔씩 시암에 빠져 죽은

사람들 애기가 있었는데 윗동네의 어느

처자가 어디 우물에서 빠져 죽었다는

소문에 한동안 그 우물은 더 이상은

사람이 얼씬 거리 지를 않았지요''


친구 중에도 물을 긷다가 실수로

우물에 빠져 죽어서 건져지는 그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 속에 남아 있는데

그의 형이 그를 업고서 밭을 가로질러

울면서 읍내의 병원으로 뛰어가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남아있지요''!


그때 무서웠든 시암의 기억이

지금도 남아있는 것을 생각하니 아픈

추억인가 봅니다''!


육 형제이지만 그땐 다른 형제들은

어떤 이유로 유학들 가고 하필 나만

막내하고 집에만 있었고 이것도

저것도 잘하는 것이 없었던 나는

집안일을 해야 된다고들 하는

그때이었겠지요 ~''


기억 속엔 엄니가 아버지를 들들

볶아대서 드디어 우리 집에 손으로

퍼올리는 작두 시암을 만들었는데

나의 무서움은 공포에서 해방이

되었는데 좋아서 신기한 마음에

온종일 작두로 물을 푸기도 했던

기억이 있구먼요~^^


지나간 날의 어린 시절의 얘기지만

꼭두새벽부터 물을 길어와라 아궁이의

재를 퍼내라 하는 그 시절 아직도 잠에

취해 있는 나를 부르는 엄니의 소리가

들리는 듯한데 그 소리가 그렇게도


듣기가 싫어서 이불속에 일어나지

않고 뒤척이다가 마지못해 일어나든

나는 어서 빨리 어른이 되어서 집을

떠나고 싶은 마음에 춘삼월만 되면은

가출을 하면서 꿈을 꾸었던 철없던

어린 시절의 나이었습니다,

''그때는 진짜 나를 다리 밑에서 주워

온지 알았지요 ''!!!


그렇게 나를 불러도 일어나지 않으면

부지깽이를 들고 이불을 걷어 재끼며

호기롭게 나를 두들겨 패든 우리 엄니는

이제는 읍내의 요양병원에서 내일을


기약할 수가 없는 세월 속에 산자들의

기억 속에서도 사라져 버린 것처럼

혼자만의 아픔 속에 인생길을

가고 있습니다~~~


*내변산의 아름다운 산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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