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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희 Mar 25. 2017

거장의 인간미

부퍼탈 탄츠테아터 '스위트 맘보'

(c) Murdo Macleod



지난 2014년 내한한 '보름달'의 인상을 간직하고 있는 관객이라면 올해 탄츠테아터 부퍼탈의 내한 소식을 듣고 더없이 기뻤을 터다. 한국에는 한 번도 선보인 적 없었던 '스위트 맘보'가 4월, 국내 관객을 만났다. 이 작품의 초연이 2008년 5월 30일이고, 피나 바우슈가 2009년 6월 세상을 떴으니 그녀의 말년을 장식한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남녀, 이를 넘어서 모든 관계에서 발생하는 감정을 다뤘다. 제목을 보며 상상해보건대 맘보 춤처럼 즐거운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여타 작품보다 유독 대사가 많고, 흥이 넘치는 것이 눈에 띈다.


새하얀 샤 막이 내려와있고, 바람이 불어 한껏 아름답게 날리는 가운데 무용수들이 춤추기 시작한다. 피나 바우슈의 최근작은 대사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경향이 강한데, 이는 특히 '스위트 맘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무용수들은 쉼없이 자신의 이름을 이야기하고, 서툰 한국어로 문장을 전달한다. 보통 세계 공용어로 통하는 영어로 대사를 던지게 되는데, 투어에선 관객들에게 재미를 선사하기 위해 그 나라의 언어를 구사하곤 하기도 한다. 이 작품은 대사의 영어와 한국어의 비중이 거의 반반을 차지한다. 때문일까, '보름달'의 1막 마지막에서 홀로 선 무용수가 대사를 읊으며 강렬한 울림을 남겼던 것과 다르게 '스위트 맘보' 속 한국어 멘트(!)는 그저 재미와 웃음을 위한 요소로 전락하고 만다.


기존 작품의 클리셰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사실 안무가의 스타일과 클리셰는 한 끗 차이라 볼 수도 있다. 다만 한국 관객에겐 바로 이전에 만난 공연이 '보름달'인지라 몇몇 비슷한 부분이 특히 진부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면 무언가를 갈구하는 여성 무용수를 계속해서 저지하는 남성 무용수의 모습과 그 동작을 최소 열 번쯤 반복하는 형태, 양동이에 담긴 물의 사용 등이 그랬다.


피나 바우슈의 장편 작품에선 일정한 구조를 발견할 수 있다. 개별 무용수들이 춤을 추다가 앙상블을 이루고, 이것이 점차 확대되며 거대한 군무로 화려하게 끝내는 것. 이는 개인의 에피소드로 춤을 시작해 하나의 사회로 그 의미를 확장시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렇지 않은가, 자신이 안무를 처음부터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무용수 개개인의 감정과 상황, 몸짓에서 출발해 하나의 큰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 피나 바우슈의 스타일이니 말이다. 그러나 '스위트 맘보'는 이와 조금 다른 형태다. 우선, 개인의 에피소드는 춤과 대사의 교차편집으로 제시된다. 그런데 이것이 사회로 넘어가지 않고 개인에 오랜 시간 머무른다. 비로소 군무는 2막 중간쯤 등장한다. 그것도 아주 짧게.


부퍼탈 탄츠테아터 무용수들이 보여주는 각자의 개성과 자유로운 감정의 춤, 그리고 이들이 함께 만드는 조화로운 군무의 상충되는 배치를 참 좋아하는 나로써는 마지막 순간이 너무 짧아 아쉬웠다. 인터미션을 제외하고 110분의 러닝타임 동안 단 한 번의 군무라니, 그도 집중하려던 찰나에 끝이 났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남성 무용수의 존재였다. 2:1정도로 출연자의 성비가 불균형 한 것도 이유이겠으나, 전체 작품에서 남성 무용수는 여성 무용수를 리프팅하거나, 즐겁게 해주거나, 막아서거나, 드레스의 치마자락을 들어주기 위해서만 등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관계에서 나타나는 감정을 다뤘다면, 관계를 이루는 남녀가 동등하게 등장해야하는 것 아닌가. '스위트 맘보' 속 남성 무용수는 경호원 혹은 결혼식장의 헬퍼, 낭만발레 시절의 발레리노, 그 정도일 뿐이다. 다만 마지막 20분을 앞두고 이들의 독무가 두어 번 나올 뿐.


그러한 몇몇 이유 때문에 이번 '스위트 맘보'는 적절한 균형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거장이라 한들 어떻게 모든 작품이 완벽할 수 있을까. 이런 작품도 있고, 저런 작품도 있을 터. 다만 그 이유를 묻기엔 너무 늦은 것이 안타깝다.


참고) 2004년 '보름달' 내한 공연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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