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걸리던 존재가 있었다. 한 겨울에도 혼자 다니고, 빈 공터를 배회하던 그 아이. 너무 추웠던 날씨였기에, 걱정이 됐다. 춥지는 않을까. 밥은 잘 먹고 다닐까. 그 작고 귀여운 존재는 집 앞 체육 시설 공사장 옆에 지내던 누런 강아지였다. 우리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와 비슷한 아이. 그 아이는 가끔씩 체육 시설 앞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로 가끔 넘어왔다. 그때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데, 얼마나 아찔하던지. 빨리 건너오라고 불러봐도 잘 듣진 않고, 아슬아슬하게 차를 보면서 건너왔다.
그 아이는 너무 대견스럽게 긴 겨울을 넘겼고, 지금도 여전히 체육관 옆 작은 집에서 살고 있다. 그 집은 누가 만들어 줬을까? 저 아이는 어떻게 추위를 견뎌냈나 궁금해질 때 즈음이었다. 새벽에 운동을 하러 이른 출근길에 나섰을 때, 어떤 한 아주머니를 마주쳤다. 누구나 바쁜 출근길. 아줌마는 체육관 옆 공터에 있던 강아지 곁으로 다가가, 가방에서 봉지 하나와 물을 꺼냈다.
아줌마는 익숙한 듯 사료와 물을 꺼내서 강아지 그릇에 부어줬다. 강아지는 익숙한 듯 다가와서 밥을 먹었다. 그러고선 아줌마는 출근길로 향했다. 오늘 아침, 그 아줌마를 다시 만났다. 그녀는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출근을 하면서 아이의 밥을 매일 챙겨 왔다. 그 아이는 이렇게 긴 겨울을 버텼나 보다 생각이 들었다.
지난겨울 우리 집 가족의 얘기 거리 중에 강아지는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같은 강아지를 키우는 입장에서 너무나 안타까웠고 계속 눈에 걸렸다. 패딩을 입고 돌아다니기에도 너무 추웠던 혹독했던 겨울. 아빠는 강아지에게 간식을 가져다줬다. 그 아이는 어디서 왔을까. 우리 집에도 비슷한 아이가 있는데, 너는 어디서 왔니. 누가 너를 두고 간 거니 아니면 길을 잃어버린 거니.
누군가는 아빠처럼 간식을 가끔 사다 줬다. 그 아이가 안쓰럽다기보다는 혼자 지낼걸 생각하니 마음이 자꾸 스였나 보다. 그래도 다행인 건 모두의 조그마한 관심들로 지금까지 공터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사실. 아침에 밥을 가져다주고, 가끔 간식을 챙겨주는 모두의 마음이 너무나 소중하다. 누군가의 무책임으로 아이는 혼자 살게 되었지만, 그 상처를 많은 이들이 보듬어주고 있다.
오늘 아침에 밥을 가져다주시는 아줌마를 다시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우리 동네도 살만한 동네구나. 따뜻한 사람들이 많이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