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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스타 Jul 19. 2020

내가 나를 만족시키는 삶

'인정받고 싶다'가 아마도 대부분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 잡힌 한 가지 마음이다. 그게 동력으로 동기를 드라이브해줄 때는 참 좋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 문제가 된다. 이른바 관종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인정 뒤에 붙는 수식어는 '욕구'다. 사람들에게 내재된 인정 욕구가 있다. 그러나, 이는 자칫하면 사람을 인정에 목메게 만들 염려가 있다. 


특히 자존감이 낮을수록 다른 사람의 관심, 인정, 평가를 중요하게 여긴다. 자기가치감이 부족하고 자신을 스스로 돌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기가치감의 결핍을 다른 사람의 호감과 평가로 채우려고 애를 쓴다.

<관계를 읽는 시간> 


칭찬은 빨리 잊자



최근에 멘토인 신박사님께 들었던 피드백 중 하나는 '내가 나를 만족시키는 삶'이다. 누군가가 알아주기를 목메지 말고, 내가 나의 노력에 만족하고 나의 상황에 만족하는 것. 사람들은 칭찬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는데, 한 번 받았으면 그걸 빨리 잊고 새로 또 한 단계 나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인정 욕구에 목말랐던 것 같다. 누군가가 칭찬해주면 좋아하고 자꾸 드러내고 싶어 하고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그러나, 이런 행동들이 스스로에게 소금물을 마시는 격이 되지 않았나 싶다. 사실 본질은 나의 인격과 실력을 높이는 것이다. 이걸 드러내고 자랑하는 건 주가 되면 안 된다. 관종의 결말은 언제나 비극이다. 자신을 과장해서 보이고 결국 편집된 모습만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사람들은 잠깐 속을 지라도 결국 진실은 본인이 제일 잘 안다. 내가 보이고 싶은 모습과 실제 나의 모습의 괴리가 상당해진다. 그렇게 스스로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연옥의 길로 빠져든다. 요새 이 점을 가장 스스로 경계하려고 하고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spill over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나를 아껴주고 기특해보이는 순간들이 많을 수록 자존감이 올라간다. 그렇게 올라간 자존감은 타인을 배려하는 여유를 가져다 준다. 


내가 나를 만족시키는 삶은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지금 나의 행동의 목적 1순위는 결국 나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행동의 주체이자 만족하는 인격체 또한 내가 되어야 한다. 누군가가 알아주기를 기대하는 삶의 주체는 결국 타인에 방점이 찍혀있다. 내가 내 인생의 객체로 살아가는 걸 그 누구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 내가 할 일을 다 끝냈으면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그것에 만족하자. 나는 자기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매일 투두 리스트를 쓴다. 주말인 오늘도 예외가 아니다. 그렇게 내가 나를 만족시키는 담백한 삶을 살아가려는 연습을 한다. 언제나 기억하자. 빈수레가 요란한 법이다. 내실이 가득 찬 사람이 되어서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애쓰는 squeeze out이 아닌, 스스로가 가득 차서 넘쳐흘러 나는 spill over를 실천하는 인격체가 되자. 


덧, 최근에 들었던 피드백이 너무 좋아서 항상 카톡 대화명으로 저장하고 있다. 이번 심리테라피 모임 도서인 <관계를 읽는 시간>에서도 이 내용이 나와서 다시 한번 다짐하고자 글을 남긴다. 언제나 좋은 깨달음을 주는 멘토 신박사님과 함께 심리 테라피 모임에 참여하는 그룹원 분들께 감사하다. 2주에 1번씩 나를 잠깐이나마 돌아보면서 내실이 차오름을 느낀다. 항상 감사함과 겸손함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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