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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렌과 루시엔』, 톨킨의 사랑이 된 이야기

신화 너머, 한 작가의 인생과 사랑

by 심야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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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이름은 톨킨의 무덤에도 새겨져 있다


존 로널드 루엘 톨킨은 『베렌과 루시엔』을 단순한 판타지 속 주인공으로 창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이야기에 자신과 아내, 에디스 메리 톨킨의 인생과 사랑을 투영했습니다.


실제로 톨킨의 묘비에는 "베렌", 그의 아내의 묘비에는 "루시엔"이라는 이름이 함께 새겨져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이야기는 톨킨의 다른 작품보다 훨씬 더 감성적으로 다가옵니다.

그 안에는 전설보다 러브 스토리의 결이 더 강하게 느껴집니다.

한 작가의 인생과 신화를 엮은, 아름답고도 깊은 사랑 이야기입니다.


『반지의 제왕』보다 오래된 이야기


『베렌과 루시엔』은 『실마릴리온』의 한 챕터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 기원은 훨씬 앞섭니다.

1917년, 1차 세계대전에서 생환한 톨킨은 에디스가 숲속에서 춤추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때부터 이 이야기는 그의 평생에 걸친 신화 창조의 핵심 축이 되었고,

『반지의 제왕』 속에서도 신화처럼 인용되며 아라곤과 아르웬의 로맨스의 기원이 됩니다.

베렌과 루시엔은 단순한 등장인물이 아니라, 중간계의 ‘사랑’이라는 서사의 원형입니다.


인간과 엘프, 사랑이라는 불가능성


이야기의 출발은 단순합니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 ‘베렌’과 불멸의 엘프 ‘루시엔’이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이 서사를 톨킨은 신화, 운명, 도전, 희생이라는 테마로 감싸 안습니다.

루시엔의 아버지이자 엘프의 왕, 싱골은 베렌에게 말합니다.

“실마릴을 가져오너라. 그러면 너에게 딸을 주겠다.”


실마릴.

신들이 만든 세상에서 가장 신성한 보석.

그 보석은 세상의 악 모르고스의 철왕관에 박혀 있었습니다.

즉, 절대 얻을 수 없는 것을 가져오라는 명령이었던 거죠.

베렌은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건 여정을 떠나고,

루시엔은 사랑을 위해 자신의 운명조차 바꿔버립니다.


이 이야기가 아름다운 이유


『베렌과 루시엔』은 단순한 로맨스 판타지가 아닙니다.

죽을 수 있는 존재와 죽지 않는 존재, 떠날 수밖에 없는 자와 남을 수밖에 없는 자, 그 사이의 균열과 연대를 그려낸 신화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사랑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해피엔딩으로 완결되지 않습니다.

그 끝은 슬프고도 따뜻한, 운명을 초월한 서약입니다.


토막난 이야기들, 그러나 더 짙어진 감정


이 책은 완성된 하나의 ‘소설’이 아닙니다.

톨킨이 생전에 남긴 원고와 시, 단편들을 아들 크리스토퍼 톨킨이 엮은 구성입니다.


그래서 이야기의 형식은 일정하지 않고, 장면은 반복되며, 일부 설정은 서로 다릅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불완전한 조각들 속에서 오히려 감정은 더욱 진하게 다가옵니다.

문장을 다듬고, 이름을 바꾸고, 운율을 조정하며,

한 평생을 바쳐 이야기의 결을 완성해 나간 작가의 사랑이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완결되지 않았기에 더 소중하고,

해피엔딩이었기에 더 아련한 이야기입니다.


마무리하며


『베렌과 루시엔』은 누구에게나 권할 수 있는 책은 아닙니다.

이야기는 단편적이고, 구성은 파편적이며, 톨킨 세계관에 대한 이해 없이는 다소 낯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신화와 운명, 그리고 사랑이라는 테마를 가장 깊이 있게 풀어낸 이야기를 찾고 있다면,

이 책은 반드시 한 번쯤 만나야 할 작품입니다.


어쩌면, 톨킨이 자신의 삶에서 유일하게 이뤘던 사랑이었기에

이야기의 결말은 반드시 행복해야 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전설보다 오래된 사랑 이야기. 베렌과 루시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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