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면의 조개껍데기』를 읽고
내가 SF를 읽는 단 하나의 이유, 김초엽
SF 소설과 나: 한 작가가 허문 장르의 벽
김초엽 작가를 처음 접한 작품은 그의 첫 소설집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었습니다. 사실 그전까지 SF 소설은 제가 즐겨 찾는 장르는 아니었습니다. 굳이 읽은 작품을 꼽자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파피용』, 히가시노 게이고의 『무지개를 연주하는 소년』 정도였는데, 이마저도 SF라서 읽은 것이 아니라 해당 작가의 책이라서 읽은 것이었습니다.
SF라는 장르 자체에 흥미를 느껴 읽은 첫 책이 바로 김초엽 작가의 소설이었고, 이후 삼체 시리즈를 읽거나 테드 창 소설에 도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렵고 허황된 이야기." SF 소설을 멀리했던 이유였던 이 선입견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완전히 깨주었습니다.
김초엽 SF가 가진 특유의 '가독성'
SF 영화는 즐겨 보면서도 소설에 거리를 두었던 건, 소설은 '어렵고 허황된 이야기'라는 선입견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김초엽 작가의 작품은 달랐습니다. 소설을 읽는 데 불편하거나 어려움이 없습니다. 머리 싸매고 고민해야 하는 복잡하고 어려운 과학 지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물론 가볍다는 뜻은 아니지만, 일반인으로서 충분히 공감할 만한 수준의 과학적 배경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익숙하지 않을 뿐, 우리의 머리 꼭대기를 넘어서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또한, 소설이 자극적이거나 잔혹한 표현으로 독자를 질리게 만들지 않습니다. 그런 자극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재미있고 몰입감이 뛰어납니다. 이후에 읽은 작가의 다른 글들에서도 이 처음의 느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신작에 대한 기대와 작은 착각
이번 소설집 『양면의 조개껍데기』도 읽기 전에 큰 기대를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다만, 첫 번째 단편인 「수브다니의 여름휴가」를 읽었을 때 잠시 아쉬움이 밀려왔습니다. 이미 다른 작품집에서 읽었던 글이었기 때문에, 혹시 새로운 소설집이 아닌가 하고 착각했던 겁니다.
다행히 그 이후의 단편집은 새롭게 읽은 단편들로 채워져 있었고, 이내 저는 순식간에 책에 몰입하여 모든 이야기를 읽어버렸습니다.
과학을 '도구'로, '존재'를 '중심'으로
이번 소설집에서 김초엽 작가는 복잡한 물리적 이론이나 과학적 배경 지식을 뽐내지 않습니다. 그것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전개하기보다, '존재'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과학을 장식한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소설집의 이야기들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현재 '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들입니다. 작가는 그 상황 실험을 만들기 위해 과학이라는 힘을 빌리고 있을 뿐입니다.
나는 무엇인가?
나를 구성하는 것은 무엇인가?
현재 내가 느끼고 있는 것은 진실인가?
현재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인위적으로 대체하게 될 때, 진정 나를 구성하는 그것은 무엇인가?
어떤 SF 소설이 작가의 지식을 뽐내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김초엽 작가의 글은 미래의 가능성을 통해 현재 우리에게 근원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이것이 제가 느끼는 김초엽 SF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읽고 난 후, '미래에는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아니라, '현재 나에게 이 질문이 던져진다'는 느낌을 줍니다.
김초엽 작가를 읽는 이유
바로 이러한 매력 때문에 SF 소설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도 작가의 글을 재미있고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김초엽 작가로 인해 다른 SF 작가의 글을 계속 찾아 읽을지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이전에도 몇 차례 다른 작가의 소설에 도전했다가 난해해서 포기한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김초엽 작가의 신간이 나온다면 저는 꼭 읽을 겁니다.
SF 소설이기 때문에 읽는 것이 아니라, 김초엽 작가가 쓴 글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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