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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권작가 Feb 16. 2020

다리가 멀쩡해서 다행이야

살덩이가 떨어져 나가는 꿈을 꾸고 보니

어젯밤에 꿈을 꿨다. 내 오른쪽 다리가 이상했다. 종아리부터 뒤쪽 허벅지까지 살 전체가 도려내져 있었다. 다행히 피는 나지 않았다. 대형참치 정도 되는 크기로 떨어져 나간 살덩이를 다시 붙이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안간힘을 써봐도 떨어진 살덩이는 다시 붙지 않았다. 테이프로 살덩이를 다리에 돌돌 감아놔도 도무지 다리에 들러붙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떡하지? 이렇게 다리에 살점이 떨어져 나간 채로 살아야 하는 건가?'


무서웠다. 평생 이렇게 살아가야 할 것만 같은 생각에 두려웠다. 불안해 하고 있던 그때 잠에서 깨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비몽사몽한 상태로 서서히 꿈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오는 느낌이 들었고 잠에서 깨자마자 곧바로 내 오른쪽 다리부터 확인했다. 허벅지부터 발끝까지 손으로 만지며 떨어져 나간 살이 없는지 체크했다. 다행히 아무 문제가 없었다. 내 다리는 잠 자기 전에 그 모습 그대로였다.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비록 남자치고는 삐쩍 마른 볼품없는 다리이지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내 다리였다. 다리가 있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하고 보니 문득 책 <지선아 사랑해>의 저자 이지선 님이 생각났다. 그도 그럴 것이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또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지를 이지선 님의 이야기를 통해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지선 님이 말하는 '행복'


2007년 7월 30일 꿈 많던 대학생인 이지선 님은 음주 운전자가 낸 7중 추돌사고로 인해 전신 55%에 3도의 중화상을 입게 되었다. 살 가망이 없다는 의료진의 예상을 뒤엎고 극적으로 간신히 살아날 수 있었고 30번이 넘는 수술과 재활치료를 이겨낸 결과 새살이 돋아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다. 몸과 마음의 상처와 싸우면서 견뎌야 했던 지난 10년간의 고난을 통해 그녀는 삶은 선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을 덧붙였다.


“고난은 축복입니다.”


그녀는 사고를 당한 이후 평소에 지나쳤던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다고 한다. 사고를 겪지 않았더라면 삶이 얼마나 많은 행복으로 가득 차 있는지 깨닫지 못했을 거라고 한다. 사고로 인해 행복의 참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기에 고난을 축복이라고 말한 것이다. 손가락 하나하나도 너무나 소중하다고 말하는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에는 친구들의 예쁜 옷이 부러웠고 언니들이 신은 멋진 구두가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폼 나는 가방도 갖고 싶어 했습니다. 이제는 친구의 깜빡거릴 수 있는 두 눈이 부럽습니다. 입을 꼭 다물고 침을 흘리지 않는 그 입술이 부럽습니다. 젓가락질을 할 수 있는 그 손이 부럽습니다.”


“땅만 보고 걸을 수밖에 없던 제가 등을 꼿꼿이 펴고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고 얘기할 수 있게 되었고 고개를 들면 하늘을 볼 수 있는 은혜를 저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른 이들에겐 별것 아닌 일들이지만 그 별것 아닌 일들을 기적처럼 여기며 감탄하며 사는 것이 이제 저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깜빡거릴 수 있는 두 눈을 가지고 있다. 침이 흐르지 않게 다물 수 있는 입술이 있다. 자유자재로 젓가락질을 할 수 있는 손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에겐 당연한 일상이 사고를 당한 그녀에게는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되었다. 사고 전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고 직후에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힘든 일이 되어버렸다. 누워있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그녀는 그때부터 사소한 모든 것들이 기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행복의 첫 번째 조건은?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


현대 사회는 예전보다 훨씬 풍요로워졌고 삶의 질 역시 더욱 높아졌다. 하지만 행복함을 느끼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풍족해졌지만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며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가진 것을 보기 못하고 가지지 못한 것에만 온 힘을 쏟고 있다. 


더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에 한 푼이라도 더 벌고 하나라도 더 가지려는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지금 가진 것을 보지 못한 채 새로운 것만 쫓는다면 행복은 더 멀어지고 말 것이다. 


사람마다 기준도 다르고 추구하는 가치관도 다르기 때문에 행복을 뭐라도 딱 한 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에 이를 수 있는 방법 또한 사람마다 또는 경우에 따라 다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해지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이 무엇이라고 묻는다면 나는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보다 더 나쁜 경우를 상상해보면 지금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조금은 쉬울 것이다. 한 때 나는 작은 키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키 큰 사람들을 보며 '왜 나는 이렇게 키가 작을까'라고 생각할 때마다 괴로웠지만 더 작은 나를 상상해보니 그래도 이보다 더 작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1월 1일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새해 첫 날부터 교통사고를 당해 재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괜히 기분이 찝찝했지만 '그래도 사람이 다치지 않은 게 다행이네.'라고 생각해보니 이만 한 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은 목과 등에 담이 걸려 제대로 고생을 한 적이 있었다. 몸을 가누지 못해 눕거나 일어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고 자다가도 통증 때문에 계속 깨곤 했다. 그날도 뒷목이 아파 새벽에 깼고 잠들지 못하고 있던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눕고 싶을 때 누울 수 있고 마음껏 잘 수 있는 일상이 감사한 일이었구나."




오늘 멀쩡하게 살덩이가 붙어 있는 두 다리로 카페를 왔다. 화장실이 가고 싶을 때는 다리를 이용해 화장실로 갈 수 있었고 식사를 하러 나갈 때도 내가 원하는 곳으로 두 다리를 이용해 갈 수 있었다. 짧은 나의 이 두 다리가, 어제도 있었고 그제도 있어서 소중한 줄 몰랐던 이 다리가 꿈 덕분에 오늘따라 더 감사하게 느껴진다. 


다리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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