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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권작가 Mar 17. 2020

다들 왜 이렇게 밥을 빨리 먹는 걸까?

풍요로워졌지만 오히려 더 바빠진 사람들

나는 밥 먹는 속도가 느린 편이다. 식사 시간이 20 ~ 30분 정도는 걸린다. 건강을 생각해서 천천히 꼭꼭 씹어먹기 때문이고 한 편으로는 맛을 음미하며 즐기기위해서다. 빨리 먹으라고 하면 조금 더 빨리 먹을 수는 있지만 대충 씹어 삼킬 때면 샴푸거품을 완전히 씻어내지 않고 샤워를 마친 것같이 기분이 개운치 못하다. 또 음식의 맛을 느낄 새도 없이 순식간에 삼켜야한다면 그건 왠지 손해를 보는 것만 같다. 웃을 일도 별로 없는 요즘인데 그나마 기쁨을 주는 밥 먹는 시간만큼이라도 즐기려 한다. 그래서 집에서 저녁을 먹을 때는 영화나 예능을 보면서 30 ~ 40분 동안 밥을 먹기도 한다. 먹고살자고 열심히 일하고 돈 벌며 사는데 먹는 것도 맛있게, 여유롭게, 배불리 먹을 수 없다면 그건 너무 슬픈 일이다. 


이런 나와 달리 주위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10분이면 식사를 마친다. 직장 내 식당에서 먹는 정식을 기준으로 했을 때인데 10분보다 더 빨리 식사를 마치는 사람도 있다.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시간이다. 가끔 보면 일부가 아닌 세상 사람들 전부가 밥을 10분 만에 먹는다며 일반화의 오류를 범해도 이상하지가 않다. 그 정도로 밥을 천천히 먹는 사람은 찾기 힘들어졌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같이 밥 먹으면 항상 내가 제일 늦다. 일찍 식사를 마친 동료들에게는 먼저 일어나라고 얘기하고 보낸 후에 한참을 더 먹고나서야 식사를 마친다. 이렇게 먼저 보내고 혼자 여유롭게 식사를 하면 되니 크게 불편한 건 없다. 뭐든 혼자서 잘하는 나는 밥도 혼자서 잘 먹으니까. 


문제는 점심을 밖에서 먹을 때이다. 직장에서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밖에 나가서 식사를 하곤 한다. 왔다갔다 이동시간에 밥이 나오는 시간까지 하면 점심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은 얼마 없다.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시간에 식사를 마치기 위해 밥이 나오자마자 나는 100m 달리기를 하듯이 서둘러 밥을 먹어야 한다. 빨리 먹어도 꼴찌다. 옆에서는 천천히 먹으라고 하지만 다들 기다리는 상황에서 어떻게 천천히 먹을수가 있겠는가. 씹는 횟수는 줄여야 하고 먹고 싶은 음식을 남기고 일어나야 할 때도 있다. 가끔은 남은 음식을 입 안에 가득 밀어넣은 채로 식당을 나오기도 한다. 


밥 먹는 속도가 느려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바로 훈련소에서였다. 20대 초반에 훈련소에서 5주 기초군사훈련을 받을 때였다. 식사를 할 때는 생활관별로 다 같이 움직여야 했다. 20명이 다 모여야 식사장으로 이동을 했고 식사를 마친 후 다시 20명이 다 모여야 생활관으로 복귀를 했다. 누군가 한 명이라도 늦게 나오면 모두가 서서 기다려야 했는데 식후의 그 '누군가'는 항상 나였다. 나빼고 거의 모든 동기생들이 10분이 채 안돼서 식사를 해치웠기 때문이다. 씹고 삼키기나 하는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식사 시간만 되면 나는 전투적으로 먹어야 했다. 훈련 받을 때보다 더 치열한 전투시간이 내겐 식사시간이었다. 빨리 먹는다고 먹어도 항상 꼴찌였다. 가끔 첫번째로 밥을 퍼게 되면 밥 먹는 시간이 단 몇 초라도 생겨서 좋았지만 그래도 가장 늦게 일어나는 건 언제나 나였다. 속도가 느린 것도 있었지만 많이 먹었기 때문에 더 느린 것도 있었다. 훈련소에서는 먹을 게 밥밖에 없으니 밥이라니 마음껏 먹고 싶은데 다들 대충 먹고 일어나버리니 식사를 마치고 일어날 때마다 항상 아쉬웠다. 가끔은 위장을 가득 채우기 위해 씹지도 않고 대충 삼킨 적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복통을 느끼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대장에게 '위장에 암덩어리가 있어서 밥을 빨리 먹으면 죽는다, 그러니 혼자서 천천히 먹게 해달라는 부탁을 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에게는 가장 힘들었던 식사시간이었다. 



사람들이 밥을 빨리 먹는 이유 2가지

밥 먹는 속도가 느리다보니 나를 잘 아는 친한 사람 아니고서는 함께 식사하는 것을 꺼리게 된다. 순식간에 식사를 해치우는 사람들을 보면 어떨 때는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보인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한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밥을 빨리 먹는 걸까?'


2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조금이라도 더 쉬기 위해서이다. 점심시간에 밥을 빨리 먹은 후 남는 시간을 휴식하려는 직장인들이 많다. 아침에는 평소 잠이 부족해 조금이라도 더 자야겠다는 생각으로 누워있다보니 어쩔 수 없이 아침 식사량을 줄이거나 식사를 거르게 된다. 야근을 하는 날이면 저녁시간마저 여유롭지 못하다. 평소 이렇게 빨리 먹는 게 습관이 되어있으면 주말에도 자기도 모르게 빨리 먹게 된다. 때문에 휴식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함이 식사시간을 단축한 첫번째 원인이다. 


밥을 빨리 먹는 두번째 이유는 좀더 근본적인 데 있다. 바로 먹을 것이 풍요로워졌다는 점 때문이다. 음식의 풍요와 밥 먹는 속도가 무슨 상관이 있냐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 나의 경험에 빗대어 얘기해보려 한다.


2주 동안 걸어서 제주도를 한 바퀴 도는 국토대장정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매일 30km 가까이 걷다보니 소화가 잘돼서 배는 금방 꺼졌고 단 것도 자주 당기곤 했다. 그런데 가져온 간식이 하나도 없었다. 150명의 대원이 함께 움직여야 했기에 마음대로 수퍼를 들를 수도 없었다. 다들 달달한 게 간절하다보니 가장 귀한 음식은 바로 초콜릿이었다. 그러다 하루는 내가 다른 조에 초콜릿을 많이 가져온 사람이 있길래 그 사람에게 손바닥 크기의 네모난 초콜릿을 얻었고 그 초콜릿을 우리 조원 15명이서 나눠먹어야 했던 적이 있었다. 떨어진 당을 보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정도로 적은 양이었지만 오랜만에 맛보는 달콤함에 다들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런데 한 가지 재밌었던 건 초콜릿이 물이 되도록까지 삼키지 않고 계속 맛을 즐겼다는 점이다. 평소에 초콜릿을 잘 먹지 않는다던 친구도 그때만큼은 액체가 된 초콜릿을 몇 번씩이나 되새김질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먹을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초콜릿이 많이 있었으면 하나라도 더 맛보기 위해 빨리 목구멍으로 삼키기 바빴을 텐데 그때만큼은 초콜릿 할당량이 엄지손톱 크기밖에 안됐기 때문에 아까워서 차마 함부로 삼킬 수 없었던 것이다. 


국토대장정 중 자유시간이 주어진 날이 있었는데 그날 우리가 향한 곳은 다름아닌 수퍼마켓이었다. 들어가자마자 들고 있는 장바구니에 너 나 할 것 없이 온갖 종류의 초콜릿을 담기 바빴다. 수퍼마켓을 나오자마자 비닐봉지에 가득 담긴 초콜릿을 잽싸게 뜯어먹기 시작했다. 입 안에서 초콜릿이 녹을 때마다 탄성을 질렀고 정신을 차렸을 때쯤엔 이미 초콜릿을 먹어치우고 난 뒤였다. 이상했다. 똑같이 초콜릿이 간절한 상황인데도 양이 조금밖에 없을 때는 천천히 아껴먹고 양이 많을 때는 재빨리 먹어치웠다. 양이 많으면 더 여유를 가지고 먹을 것 같은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먹을 것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더 빨리 먹게 된다는 것은 식당에서 지인과 식사를 할 때도 종종 느낀다. 푸짐하게 차려진 음식을 하나씩 먹다보면 입에 음식이 있는데도 젓가락으로 다음 음식을 들고 있는 나를 볼 때가 있다. 들고 있는 음식을 먹어야 하니 입에 있는 음식은 대충 씹고 삼키게 된다. 그렇게 허겁지겁 먹으며 식사를 마치고 나면 내가 먹은 음식이 어떤 맛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거움을 느끼고 싶은 건지 아니면 얼른 위장으로 음식물을 채우기 위해 먹는건지 헷갈리곤 한다. 


풍요로워지면 그만큼 여유로워져야 하는데 사람들은 더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다들 먹고살려고 열심히 사는 거라고 말은 하지만 정작 '먹고살기'에서 그 '먹고'는 제대로 즐기지 못한 채 무언가에 쫓기듯 급하게 식사를 마치고 있다. 



풍요로워졌지만 반대로 더 바빠진 사람들

식(食)의 문제만은 아니다. 돈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사람들은 만족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악착같이 일한다. 시간은 또 어떤가. 교통의 발달로 인해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고 인터넷의 보급으로 인해 복잡한 일을 쉽고 빠르게 해결할 수 있게 되면서 시간을 아낄 수 있었지만 오히려 사람들은 남는 시간을 또 다른 무언가로 채우기 바쁘다. 시간은 많아졌는데 더 바빠져버린 것이다. 역설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대로라면 과학이 발전하여 더 많은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아낀 그 시간을 누리고 즐길 수 있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은 없다. 다들 잘먹고 잘살기 위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행복하게 살자는 마음으로 이 순간을 버티고 있다. 하지만 먼 훗날의 행복만을 바라볼 뿐 지금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은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바빠죽겠는데 그럴 여유가 어딨냐고 할 수도 있다. 물리적인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어진 것은 사실이나 미래가 아닌 현재에 사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지금 먹고 있는 음식을 음미할 수 있는 여유,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고요하게 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여유, 많은 돈은 아니더라도 열심히 일해서 받은 월급을 보며 고생했다고 스스로를 다독여줄 수 있는 여유, 가족과 한번이라도 눈을 더 맞출 수 있는 여유 등 이러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을 찾아보는 연습을 할 때 지금의 삶이 조금은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산 너머에 있는 보이지 않는 막연한 행복이 아닌 지금 이 순간부터 소소한 재미를 느끼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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