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모여 식사를 하던 중 친구 H가 나에게 휴대폰을 들이밀며 동영상 하나를 보여주었다. 마술동영상이었다. 영상 속 마술시연자가 자기 친구인데 마술을 되게 잘한다면서 신기하니 한 번 보라는 것이었다. 한 때 마술을 했던 나는 영상 속 인물의 실력이 심상치 않음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혹시 내가 알 만한 사람인가 싶어 친구에게 이 사람 이름이 뭐냐고 물어봤다. 친구의 입에서 나온 이름 세 글자를 듣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랬다. 영상 속 인물의 이름은 내가 알고 있는 바로 그 종현이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동영상을 몇 번이고 되돌려봤다. 의아했다. 내가 알던 종현이는 이렇게까지 마술을 잘할 수 있을 만한 재능이 거의 없는 친구였기 때문이다.
종현이를 처음 만난 건 한창 마술에 빠져있던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그 당시 활동하던 부산 남포동에 있는 한 마술동호회에서 만난 종현이는 웃는 모습이 해맑았던, 꾸밈없는 순박한 친구였다. 나이는 같았지만 마술실력은 내가 월등했다. 동호회에서는 매달 정기모임 때마다 회원들 중에서 실력이 뛰어난 사람 3명을 선정하여 사람들 앞에서 마술을 시연하곤 했는데 나는 정모를 할 때마다 세 사람 중 한 명으로 항상 뽑혀 준비한 마술을 선보이곤 했다. 동호회 회원 중 그런 나를 유독 부러워하는 친구가 있었으니 바로 종현이였다. 마술 실력이 부족해 정모에서 한 번도 앞에 나가 마술을 보여준 적 없었던 종현이는 내가 사람들 앞에서 마술을 보여줄 때마다 나를 선망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면 연예인을 보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감탄사를 연발하곤 했다. 그 친구도 나름 열심히 연습을 했지만 내가 보기엔 많이 부족했다. 마술동호회 회원들 대부분이 나를 칭찬할 뿐 어느 누구도 종현이를 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마술도 고등학생이 되어 대학입시를 준비하면서 자연스레 접게 되었다. 성인이 됐을 땐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돈을 벌었고 독서, 통기타, 영어 등등 다른 취미생활에 재미를 붙이며 지냈다. 그렇게 마술에 대한 열정이 거의 다 사그라 들었던 즈음에 친구 휴대폰 속에서 마술하는 종현이의 모습을 보게 됐던 것이다.
나는 친구의 휴대폰을 낚아채듯 가로채서는 곧바로 종현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혹시 나를 기억하겠냐며 중학생 시절에 우리가 추억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얘기했다. 답장이 조금 늦는다 싶더니 종현이는 금방 나를 기억해냈고 반갑게 인사해 주었다. 10여 년 만의 조우였다. 궁금했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마술 실력이 향상될 수 있었는지. 안부를 묻기도 전에 그 비결부터 물었다. 내가 마술을 그만 두고 학업에 열중하는 동안에도 공부 대신 마술을 배우고 익혔던 종현이는 마술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한 유명 마술사 밑에서 마술을 배우게 되었고 그 결과 지금의 실력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종현이의 이야기를 듣고난 후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벌린 입을 닫을 수가 없었다. 중학생 때의 종현이는 분명 마술을 못하던 아이였다. 계속 배운다고 해도 결코 잘할 수 있을 만한 재능조차 없어보였던 친구였다. 그랬던 종현이가 이제는 내가 감히 흉내낼 수도 없는 수준 높은 마술을 구사하고 있었다. 그런 종현이를 보고 있자니 문득 머릿속에 한 단어가 떠올랐다.
꾸준함
종현이가 이만큼이나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을 꾸준함 말고는 설명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모든 일에 꾸준함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그렇듯 나도 평소에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꾸준함의 위대함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뜨겁게 느낀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머리를 망치로 한 대 얻어 맞은 느낌이었다. 삶의 진리를 깨친 듯한 황홀한 기분이었다.
최근에 축구에 재미를 붙여 경기를 몇 번 뛰었다. 잘하고 싶은 마음에 평소에 매일 축구 연습을 했다. 연습을 하고 나니 확실히 공을 찰 때 도움이 많이 되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실력이 늘었지만 월등할 정도로 실력이 향상되진 않았다. '연습했는데 왜 잘 안 되지?' 짜증이 나기도 했고 기운이 빠지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종현이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러곤 생각했다.
'축구 연습 뭐 얼마나 했다고 실력이 확 달라지길 바라는 거야?'
'이제 겨우 몇 발자국 못 뗀 거라고. 욕심 부리지 말고 꾸준히 하자.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만 하자.'
새로운 무언가를 배울 때 내 마음대로 잘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불평이 들 때면 현란한 손기술로 나의 눈을 홀렸던 종현이의 마술을 떠올려본다. 몇 번 해보지도 않고 투덜거리는 나를 보며 종현이의 꾸준함을 되뇌어 본다. 때로는 노력이 재능을 능가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다시 일어나 원하는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