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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권작가 Jul 06. 2020

누구에게나 소소한 일탈이 필요합니다

매일 글을 쓴다. 책을 읽기도 하지만 글을 쓰는 비중이 훨씬 크다. 여러 편의 글을 쓰는 건 아니다. 하루에 고작 1편의 글을 겨우 쓰지만 어쨌거나 매일 조금씩 쓴다. 퇴근 후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면 항상 카페로 향한다. 카페에서 노트북을 꺼내 글을 쓰기 시작한다. 글을 써서 브런치에 발행하는 것이 나의 하루 일과이다. 주말에도 똑같다. 토, 일요일 다 반나절은 항상 카페에서 글을 쓰며 시간을 보낸다. 글을 쓰는 것이 완전한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가끔은 쓰기 싫을 때가 있다. 원인이 글쓰기에 대한 권태감 때문만은 아니다. 매일 쓰면 습관이 되어서 오히려 글이 더 잘 써진다. 글을 쓰기 싫은 순간은 글쓰기 외에 다른 뭔가에 에너지를 많이 쏟아부어 잠시 휴식하고 싶을 때이다. 예를 들면, 며칠 동안 대학교 과제물을 하느라 피로가 쌓였다던지, 자격증 필기시험 공부를 하느라 한숨 돌리고 싶을 때가 그렇다. 한시적으로 뭔가를 집중적으로 하고 나면 좀 쉬고 싶다는 생각에 그때는 글을 쓰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글을 쓰지 않는다기보다는 매일 하던 일을 멈추고 평소에 하지 않던 것을 해보는, 그런 일탈을 즐기려 한다. 책과 노트북을 과감히 덮어버리는 것으로 나의 일탈은 시작된다.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어본다. 매일 가던 카페 대신 사람 많은 공원에 가서 산책을 한다. 아무 생각없이 사람들이 붐비는 시내 한복판을 걸어다니며 구경하기도 한다.


이게 무슨 일탈이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일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평범해보이겠지만 나에게는 '내가 이래도 되나.'싶은 생각이 들 정도의 일탈이다. 평소에 매일 건설적인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이 강하기 때문이다. 집에 가만히 못 있는 성격이다. 매일 뭐라도 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런 강박을 벗어던지고 거리로 나가 마음껏 걷는 행동이 나에게는 휴식이다. 멍 때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보는 것이 내게는 쉼이 된다.


얼마 전이었다. 문득 오늘 하루만큼은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치가 좋은 카페에서 음악을 들으며 멍하니 있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카페를 검색했다. 집에서 15분 거리에 분위기 좋은 카페가 있어 그곳으로 향했다. 한 쪽 벽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바깥 경치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자리를 잡았다. 주문한 바나나주스를 마시며 바깥 풍경을 바라봤다. 바로 앞에는 주택이 있었고 저 멀리에는 아파트가 있었다. 아파트 뒤로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주황빛 노을이 참 예뻤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면서 아파트 불빛은 더욱 밝아졌다. 자연의 빛이 사라지고 문명의 빛이 하나둘 반짝였다. 탁 트인 경치를 보니 마음이 뻥 뚫린 것 같았다. 있다보니 금세 심심해졌다. 지인에게 전화를 돌렸다. 이리저리 한 시간 정도 전화를 했다. 수다를 떨다보니 어느새 날이 어두컴컴해졌다.


대구 수성구 지산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매일 뭔가를 하느라 항상 바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휴식이 되었다.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조금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앉는 자리가 의자가 아닌 평상으로 되어 있어 불편했고 또 내가 앉은 자리에 앉으려고 들어왔다가 나를 보고 다시 나간 커플이 한 세 커플 정도 있었는데 이 넓은 자리를 혼자 차지하고 있어 괜히 눈치가 보이기도 했다. 카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비트의 음악이 흘러나와 경치에 온전히 집중할 수도 없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일탈을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전혀 색다른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 다음 날에는 경치 좋은 곳에서 산책을 하고 싶었다. 검색을 하다가 동촌유원지에 있는 금호강변을 걷기로 했다. 길을 따라 걸으며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았다. 계단에 앉아 멍하니 강을 바라보기로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폰으로 노래를 듣기도 하고 쓸데없이 인터넷 공간을 이리저리 휘젓기도 했다.

대구 동촌유원지 금호강

정해진 트랙에서 벗어나 이렇게 하루 이틀 정도 새로운 길을 걷다보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여유가 생긴다. 하던 일을 계속해서 이어나갈 활력이 솟는다. 그렇게 나는 가끔씩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소소한 일탈을 하곤 한다.


사람들은 짜인 일정대로 하루를 살아간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 지루하다고 하지만 "인생은 끊임없는 반복. 반복에 지치지 않는 자가 성취한다."라는 웹툰 미생의 명대사처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사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하지만 똑같은 일상에 순응하며 살아야 하는 건 아니다. 때로는 일상을 벗어나는 시도가 필요하다. 일상탈출을 거대한 것으로만 생각하면 시도하기 어렵다. 쉽고 사소한 것을 떠올려야 실행하기 쉽다. 가보지 않던 길을 걸어서 가보기, 점심시간에 직장 근처에 있는 공원에 앉아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 잔 마시기 등등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해보면 소소한 재미를 주는 일탈이 될 수 있다.


주말이 즐거운 이유는 매일 하던 일을 하지 않고 평소에 하지 못한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일 터이다. 매일 하던 출근을 하지 않고 평소에 누리지 못했던 늦잠을 마음껏 잘 수 있기 때문에 주말이 더욱 반갑다. 그렇게 일상을 조금만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웃을 수 있다. 지친 마음에 시원한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나에게 있어 소소한 일탈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할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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