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여름쯤인 걸로 기억한다. 그 당시 만나던 여자 친구와 연극을 보러 갔을 때의 일이다. 연극은 사랑을 주제로 한 로맨스 코미디였다. 제일 앞줄에 앉아 재밌게 연극을 관람하고 있었다. 연극을 하던 중 여자 주인공이 갑자기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내 옆에 앉아있던 여자 친구에게 질문했다.
"남자 친구, 어떤 점이 좋아서 사귀게 됐어요?"
그녀는 1.5초 정도 생각하더니 배시시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잘생겨서요."
예상치 못한 대답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흔들리는 동공을 겨우 부여잡으며 질문자의 표정을 살폈다. 질문했던 여주인공은 여자 친구의 대답을 듣자마자 확인사살이라도 하려는 듯 나에게 눈길을 돌렸다. 내 눈과 마주치는 그 찰나의 순간, 어떤 반응이 나올지 예상을 했던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여주인공과 눈을 맞췄다. 예상대로였다. 나의 몽타주를 확인한 여주인공은 “아 네에...”라고 말하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반응에 무안해진 나는 벌떡 일어나 “아이고, 죄송합니다.” 하고 장난치듯 사과했다. 뒷좌석에 앉아있는 분들에게도 민망한 마음에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 숙여 사과했고 다들 즐겁게 웃어준 덕분에 재밌는 분위기를 연출하여 그 상황을 넘길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 사과하며 한바탕 웃고 난 이후에도 나는 민망한 마음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런 내 모습이 웃겼는지 여자 친구도 같이 깔깔 웃었다. 한참을 웃고 나더니 그녀는 마치 '누가 뭐래도 우리 자기가 최고야.'라고 말해주는 듯한 느낌으로 잡고 있던 내 손을 더욱 세게 꽉 잡아주었다.
얼마 전부터인가 그때의 그 일이 종종 생각이 난다. 정확히 말하면 “잘생겨서요."라고 말했던 그녀의 말이 자주 떠오른다. 요즘따라 앞으로 나에게 또 그렇게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연애한 지도 어느새 4년이 지났다. 긴 시간 솔로로 지냈다. 4년의 공백동안 소개팅을 몇 번 해보긴 했다. 딱히 마음에 드는 사람은 없었다. 마음에 든다 싶을 때면 상대방이 나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모임을 가더라도 항상 열린 마음으로 사람을 만났지만 깊이 있게 만나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연애가 급한 건 아니었다. 누군가를 만나려는 아무력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 먼 훗날 지금 이 시간을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소개팅을 해본 것일 뿐 사실 나는 혼자가 편하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구속받는 것 없이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일 하고, 그런 점이 정말 편하다. 그렇게 혼자만의 자유를 마음껏 만끽해왔다. 여전히 혼자가 편하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편해진다. 평생 이렇게 살아도 괜찮겠다 싶은 생각까지도 든다.
하지만 가끔은 내 옆에 누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나는 외로울 때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 받을 수 있을까.', ‘전에 만나던 그녀처럼 평범한 나에게 잘 생겼다고 추켜세워주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이다. 이런 생각은 길거리에서 웃으며 얘기를 나누는 연인들을 볼 때 많이 들지만 때로는 거울 속 내 자신이 썩 괜찮지 않아 보일 때 더 많이 들곤 한다. 또 있다. 어떤 모임이나 자리에서 '이 사람 괜찮은데?' 하는 내 생각과 달리 그녀는 나에게 전혀 호감이 없다는 듯한 반응을 보일 때도 그렇다.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결여되기 시작하면서 든 생각인 것 같다. 자신감을 넘어 부족한 자존감을 타인의 언행으로 채우고 싶은 게 분명했다.
사람들은 흔히 내가 나를 사랑해야 남도 나를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티브이에서 라디오에서 책에서 강연장에서 어딜가나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나를 사랑해도 남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 반대로 자신을 아무리 싫어해도 타인은 그런 자신을 좋아할 수도 있다. 물론 내가 가진 장점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예뻐해주는 건 좋은 자세이다. 자존감 회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마음가짐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타인의 관심과 사랑도 필요하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과 남이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조화를 이룰 때 스스로에 대한 애정과 자신감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점점 머리숱은 적어지고 피부는 탄력을 잃어가고 있다. 그래서 하는 푸념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한해 한해가 갈수록 외모에 대한 자신감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심할 때는 내가 사랑 받을 수 있는 존재인가에 대한 회의마저 들기도 한다. 바보같은 생각인 걸 알면서도.
오랫동안 사랑을 하지 않았다. 또 사랑을 받지 못했다. 올해로 34살이 되었다. 갈수록 연애를 하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나이가 40살이 돼서도 연애하고 결혼하고 다 한다고는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누군가를 만나기가 더 어려워지는 건 사실이다. 결혼으로 인해 품절남녀가 많아지기도 하거니와 점점 높아지는 나의 눈 때문에 더 그렇다.
결혼 생각이 없어 연애가 간절하진 않아 만나도 그만, 안 만나도 그만이긴 하지만 사랑 받고 싶은 그런 마음이 드는 날이 있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우리 자기가 최고라고, 세상에서 제일 잘 생겼고 제일 멋있다고 말해주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참 좋겠다고. 그러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고.
얼마 전 친한 형이 내게 말했다. 올해는 연애도 좀 하고 결혼도 얼른 하라고. "아직은 혼자가 더 편해요. 혼자만의 자유를 더 누릴래요."라고 대답은 했지만 마음 한 편에는 나에게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잘생겼어."라며 콩깍지 씌인 거짓말을 해주는 누군가를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렇게 사랑 받고 싶다. 사랑 받은 만큼 사랑을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