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 직장인, 복싱을 배우기 시작했다

by 기타치는 권작가

작년 12월, 한 체육관을 찾아갔다. 복싱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어느 날 갑자기 복싱이 하고 싶어 찾아간 것은 아니었다. 복싱은 내가 오래 전부터 배우고 싶었던 운동이었다. 지금까지 복싱을 시작하지 않았던 데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시간적,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더 큰 이유는 줄넘기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때였다. 키가 작았던 나는 키를 크게 하기 위해 매일 밤마다 줄넘기를 500개씩 했다. 몇 달쯤 했을까. 기대와 달리 키는 하나도 자라지 않고 살만 쫙 빠졌다. 누군가에게는 반가운 소식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원래부터 마른 몸이었던 터라 체중감량이 반가울 리 없었다. 줄넘기 때문에 그나마 있던 살까지 다 빠져버리고 말았다.


문제는 몸보다 얼굴이었다. 얼굴살이 빠지면서 아픈 사람마냥 볼이 홀쭉하게 들어가고 말았다. 이게 다 영양보충을 제대로 해주지 않아서 일어난 결과였다. 살을 찌우거나 근육을 늘리려면 운동 후 영양보충을 잘 해줘야 하는데 운동과 영양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나는 운동을 하고 아무것도 먹지 않고 바로 잠자리에 들곤 했던 것이다.


그날 이후 왜 이렇게 말랐냐며 사람들로부터 수많은 무시와 멸시를 받아야 했고 20대 내내 외모콤플렉스에 시달리곤 했다. 줄넘기를 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살이 빠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줄넘기뿐만 아니라 유산소운동 자체를 기피하게 되었다. 그런 일로 인해 줄넘기는 내 인생에 트라우마로 남게 되었다. 복싱에서 줄넘기는 기본인데 이렇게 줄넘기를 두려워 하다보니 지금껏 선뜻 복싱을 배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복싱을 배워보고 싶다는 나의 희망을 간간이 자극시킨 것이 있었으니 바로 격투기 대회인 로드FC와 UFC였다. 티브이나 유트브로 격투기 영상을 종종 보곤 했는데 볼 때마다 재미와 통쾌함을 느끼곤 했다. 선수들의 피 튀기는 싸움을 볼 때마다 내 안에 피가 끓는 것을 느끼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도 꼭 한번 복싱을 배워보고 싶다는 간절함이 더욱 강해졌다.


그렇게 생각만 할 뿐 계속해서 미루기만 했던 내가 작년 12월에 체육관을 찾아가 복싱을 등록하게 되었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직장선배의 말 한마디 덕분이었다.



작년 2020년에 세웠던 목표 중 하나가 바로 '복싱배우기'였다. 여전히 줄넘기 트라우마는 남아있었지만 올해는 어떻게든 시작해보자고 생각하며 시기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핑계를 댈 만한 상황은 계속해서 생겼다.


코로나가 터졌다. '코로나가 안정되면 해야지.' 해야 할 대학교 과제가 많았다. '이번 학기만 끝내고 해야지.' 취득해야 할 자격증이 있었다. '이 자격증만 따고 해야지.'


그렇게 몇 달이 흘렀다. 이런저런 핑계로 계속 미루던 찰나에 갑자기 직장 내 인사이동 계획 공지가 떴다. 대상자에는 나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직업 특성상 타지나 오지로 갈 확률이 높았다. 시내권인 지금의 지역을 떠나게 되면 앞으로 언제 복싱을 배울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제 진짜 좀 시작해보려고 했더니 왜 갑자기 인사이동이 뜬 거래? 아 진짜."


인사이동이 아니었더라도 내가 복싱을 시작하지 않았을 거라는 걸 스스로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상황이 야속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직장선배에게 하소연했다.


"지금 인사이동 심의 들어가면 두 달 뒤에 타지로 가야하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일찍 복싱을 시작할걸 그랬어요."


아쉬움에 몸부림 치는 내게 선배가 말했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시작하면
두 달은 할 수 있잖아?


듣고 보니 그랬다. 이동을 하게 될지 아닐지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어쨌든 내겐 두 달의 시간이 있었다. 선배의 말처럼 지금 시작하면 두 달이라도 할 수 있었다. 선배의 그 말을 계기로 오랜 고민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물론 줄넘기 트라우마 때문에 살이 빠질 수도 있을 거란 걱정을 안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 해볼걸' 하는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하고 싶은 건 하는 게 맞다고, 어차피 할 거면 나중이 아니라 지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미 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밀어붙여 보기로 했다.


'지금 안 하면 또 언제 할 수 있겠어?

할 수 있을 때 하자.'


'이제 뭐 더 빠질 살도 없는데 뭐.

그냥 한번 해보자.'


이렇게 해서 나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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