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아울렛에 있는 나이키 매장에 갔다. 인기스포츠 브랜드임을 증명하듯 매장 안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살 만한 제품이 있는지 둘러보던 중 옆에 있던 한 가족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아이가 신발 하나를 신어보더니 마음에 안 드는지 다시 제자리에 갖다놓으려 하자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이 말했다.
"그냥 아무데나 놔둬."
의아하다는 듯 아들이 되물었다.
"왜요? 원래 있던 자리에 다시 갖다 놔야죠."
두말하기 귀찮다는 듯 아버지가 말했다.
"그냥 바닥에 놔두면 돼. 그게 기본이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아들이 말했다.
"그게 왜 기본이에요? 신발을 꺼냈으면 제자리에 놔두는 게 당연한 거잖아요."
물건을 제자리에 두고 안 두고의 문제를 가지고 '기본'이라는 단어를 운운하는, 아이의 아버지가 오히려 나에게는 '기본'이 안 된 사람처럼 느껴졌다. 다른 곳으로 자리를 이동하느라 이후의 대화는 듣지 못했다. 신발상자가 아이의 생각대로 제자리에 놓였을지 아니면 아버지의 주장대로 아무 데나 대충 팽개쳐졌을지 궁금했다. 바닥에 두는 게 기본이라고 말하는 아버지란 사람을 보자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부모가 저래서야 애가 뭘 배울까..'
이 일에 대해 사람에 따라 이견이 있을 수는 있다. 꼭 제자리에 둘 필요가 있느냐, 아무데나 두어도 크게 문제 될 게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물론 소규모 매장이라면 아무데나 둬도 괜찮다. 직원들이 알아서 정리를 한다. 하지만 아울렛과 같은 대규모 매장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사람이 너무 많아 매장 안을 편안하게 다니기도 어려운데 바닥에 신발상자가 널브러져 있다면 통행에 방해가 된다. 여러 명의 직원이 정리한다고 해도 그 많은 사람들을 따라다니며 일일이 다 정리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이왕이면 내가 꺼낸 물건은 내가 제자리에 둬야 모두가 편하다.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과 상식의 문제 아닐까?
이상한 아이 뒤에 있는 이상한 부모들
몇 년 전에 인터넷에서 '휴거'라는 신조어에 대한 뉴스기사를 본 적 있었다. 어떤 뜻이 담긴 신조어인가 싶어 기사내용을 찬찬히 읽어봤는데 단어의 뜻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휴거란 '휴먼시아 거지'의 줄임말이었다.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끼리 임대아파트인 휴먼시아에 사는 친구를 '휴거'라고 부른다는 것이었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아이가 어느 집에 살던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렇게 말하는 아이들이 문제이긴 하나 진짜 문제는 그 아이의 부모가 아닐까 생각했다. 왜? 부모한테서 들은 얘기를 아이들이 말했을 테니까 말이다. 아이들이 뭘 알겠는가. 부모들이 저 아파트가 임대아파트니 뭐니, 저런 데 사는 애들이랑은 놀지 말라느니 하는 얘기를 하니까 아이들이 따라 배우는 것 아니겠는가.
생각나는 또 다른 뉴스기사 하나. A아파트와 B아파트 사이에 철조망을 쳐 논란이 되었는데, 왜 일까? 일반분양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임대아파트에 사는 사람들과 구분짓기 위해 철조망을 설치하는 조치를 했던 것이다. 더 웃긴 건 분양아파트에 사는 엄마들이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임대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랑 놀지 말라고. 또 근처 유치원에는 임대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을 받지 말라며 엄포 아닌 엄포를 놓기까지 한다는데,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이다. 부모가 그 모양 그 꼴이니 아이들이 임대아파트에 사는 아이랑은 놀기 싫다 말하며 '휴거'라며 놀리는 것 아니겠는가.
아이 수준에서 하는 말이 아닌, 부모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한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일이 내 주변에도 있었다. 친누나는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하루는 학원 앞에 주차를 하고 내렸는데 친누나의 차량을 본 한 초등학생 학원생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딱 봐도 아반떼네."
이게 무슨 말일까. 차가 멋있고 좋아보여서? 아니다. 친누나에 말에 의하면 그 아이의 말투로 봐서는 결코 긍정적인 언행이 아니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아반떼 차량에 대한 인식이 있다. 저렴하다는 거. 그러니까 결국 그 아이의 말은 값 싼 차 탄다는 소리다. 애가 아반떼가 뭔지 어떻게 알겠는가? 결국 부모가 그런 소리를 했으니 아이가 따라 말하는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그 아이의 부모는 도대체 얼마나 좋은 차를 타고 다니길래 그런 무례한 말을 하는 건지, 제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그런 식으로 타인을 차별해서는 안 될 터인데 참으로 황당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이런 희한한 아이들이 많아지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매일마다 돈!돈!하며 돈에 노예가 된 채로 살아가는 부모들이 많아지고 있으니 자연스레 아이들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돈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살아가는 데 있어 돈은 중요하다. '돈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거의 다다'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듯 돈이 없는 것보단 많은 게 낫다. 문제는 오로지 물질만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요즘 부모들은 아이가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오로지 돈만 잘 벌면 된다는 식의 물질만능주의를 주입시키며 좋은 대학, 좋은 직장만을 강요할 뿐이다. 공부만 잘하면 뭐든 용서가 되고 돈만 잘 벌면 만사해결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부모부터가 가지고 있으니 아이라고 다를 수 있으랴. 갈수록 요상한 부모들이 넘쳐나는 지금의 세상이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돈으로 사람이 판단되고 돈으로 등급이 정해지는 지금의 세상이 무섭다. 굳이 그들을 바꿀 생각은 없다. 어차피 바꾸지도 못한다. 나 자신도 바꾸기 어려운데 하물며 남을 어떻게 바꾸랴. 내 능력 밖의 일이다. 결혼도 안 한 내가 좋은 아이, 좋은 부모 운운하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다. 그저 이런 세상에 내 아이가 없다는 것이 다행일 따름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나만큼은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다짐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