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후배가 나에게 한 말이었다. 우리 부서의 상사가 업무를 지시했을 때 그걸 지금 왜 해야 하냐는 후배에게 내가 지금 하자고 말을 하니 나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이다. 아마 이번 일만 가지고 나에게 예스맨이라는 말을 꺼낸 건 아닐 것이다. 상사가 업무지시를 할 때마다 웬만하면 나는 "YES!"를 외치곤 했으니까.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지금의 나이가 되고 직장생활도 어느 정도 하다 보니 아랫사람과 함께 일하는 상사의 마음이 어떤지를 헤아리게 됐기 때문이다.
여러 일터를 전전하다가 현재의 직장에 안착한 지도 어언 6년이 다 되어간다. 입사할 때만 해도 형이나 삼촌뻘 되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으나 나도 연차가 쌓이다 보니 그 몇 년 새 동생들이 많이 들어왔다. 평소 동생을 어려워하는 나였기에 동생과 같이 일하면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걱정한 일의 대부분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으나 나의 걱정은 빗나가지 않았다. 오히려 우려한 것 그 이상으로 스트레스가 많았다.
작년쯤, 상사 1명 그리고 동생 2명과 함께 일을 할 때였다. 처음엔 괜찮았으나 일을 계속 하다보니 부딪히는 부분이 발생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는 거니까. 내가 선배라고 해서 후배들이 내 말에 다 따라야 하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후배들이 내 의견을 잘 따르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내는 의견마다 매번 반박을 하는 것 같았다. 한 번쯤은 내 생각대로 따라줬으면 싶은데도 후배 두 명은 자신들의 생각을 가감없이 피력했다. 가끔은 시키는 대로 일을 할 때도 있지만 그마저도 뾰로퉁한 표정을 지을 때가 많았고 대답을 안 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런 반응을 볼 때마다 화가 났다. 너무 짜증이 날 때는 집에서 동생들에게 따지듯이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물론 같이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내 의견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는 있다. 친한 관계는 아니다 보니 내가 하는 말마다 아니꼽게 들릴 수도 있다. 그래도 좋든 싫든 일은 일인데, 가끔씩은 자신과 생각이 달라도 내 생각에 맞춰 따라주길 바랐지만 동생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를 잘 따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매번 동생들의 의견에 따랐다. 둘 중 어느 방법이 더 낫냐고 물었을 때 내 생각과 다른 대답을 해도 그냥 맞췄다. 맞춰주면서도 짜증은 났지만 괜히 내 생각을 강요해서 싫은 소리 듣는 것보단 차라리 나았다.
동생들과 업무적으로 마찰이 거듭되던 어느 날 문득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상사의 지시에 불만을 가득 품곤 했던 철없던 20대 시절의 나였다. 남들보다 일찍이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여러 직종의 일을 경험하였는데 어디에서든 대체적으로 나는 불만이 많았다. 원래부터가 불만, 불평이 많은 사람이었던 나는 상사의 업무 지시에 자주 투덜거리곤 했다. 나에게 일을 시킬 때면 왜 이런 일을 시키는 건지 이해가 안 돼 혼자 짜증을 낼 때가 종종 있었다. 그때마다 쓸데없는 일을 너무 많이 시킨다며 상사를 욕했고 불필요한 일을 너무 벌려서 하는 스타일이라며 뒷담화를 했다. 그런 나를 굉장히 피곤해하며 애써 피하는 상사도 있었고 나와 언쟁을 벌인 상사도 가끔 있었다. 무능력한 상사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거냐며 사람들을 무시하고는 나 혼자 우쭐대곤 했다.
현재 사회생활을 15년 가까이 하다 보니 나도 깨닫게 된 것이 많은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아는 만큼 보인다는 사실이다. 사회초년생 때는 몰랐다. 어떤 일이든 처음 하는 일이다 보니 서툴렀다. 일을 깔끔하기 처리하지도 못했고 어디까지 해놔야 할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 그저 눈 앞에 보이는 대로만 했다. 지금의 직장에서 처음 일을 배울 때도 그랬다. 당장 해야 할 일 위주로만 처리하는 등 단기적인 안목으로만 일을 바라봤다.
하지만 어느새 나도 연차가 쌓이며 이곳에서도 5년을 넘게 일하다 보니 업무를 보는 시야가 더 넓어지게 되었다. 전에는 불필요하다고 생각되었던 일도 이제는 미리 준비한다. 나중에 해도 상관없다고 느껴졌던 일도 지금은 미리 정리해 놓는다. 일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그럼으로써 업무 방식에도 변화를 주는 나 자신을 보면서 깨닫게 되었다.
'왜 자꾸 쓸데없는 일을 시키는 건지, 왜 저런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그때의 그 상사들이 사실은 무능력했던 게 아니라 내가 보지 못하는 더 넓은 부분을 보며 일을 지시했던 거구나.. 내가 상사의 업무 지시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그 상사만큼의 안목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구나..'
나는 난쟁이였다. 그래서 나와 달리 산 너머의 풍경까지도 볼 수 있는 거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저 높은 산 뒤에 어떤 풍경이 펼쳐져 있는지 아무리 설명해줘도 나는 뚱딴지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듣기 싫었다. 산을 넘어 새로운 곳으로 가보자고 해도 따르기 싫었다. 내가 20대 때 일해온 모습이 딱 이런 난쟁이의 모습이었다.
현재는 후배 1명과 상사 2명과 함께 근무중이다. 요즘은 상사가 업무 지시를 하면 웬만하면 "알겠습니다." 하고 따른다. 내가 보지 못하는 부분까지 보고 지시를 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설령 그 일이 내 생각과는 다르다 하더라도 일단 해본다. 해보고 나서 이야기한다. 처음엔 좀 아닌 것 같다 싶은 일도 해보면 이게 맞는 거구나 하고 생각될 때가 많다.
내가 동생들과 일을 하며 갈등을 몇 번 겪다보니 내 위의 상사들의 말을 더 잘 따르게 되는 점도 있다. 서두에서 얘기했듯 내가 제안하는 의견이 동생들과 달라도 그저 군말 없이 내 의견을 따라줬으면 하는 생각을 종종 하다보니 어쩌면 지금의 내 상사도 나에게 자신의 의견을 잘 따라주길 바라는지도 모른다는 걸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상사의 업무 지시에 자주 예스를 외치게 되었고 기꺼이 예스맨을 자청하게 된 것이다.
무조건 OK를 하면 사람을 호구로 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럴 수 있다. 나도 매번 예스를 하니 선후배가 당연하단 듯이 나에게 업무를 전담하는 경우가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항상 예스를 외치진 않는다. 내가 맡기 좀 모호하다 싶은 일은 장난치듯이 투덜거리기도 하고 어차피 내가 맡아 할 거면서 괜히 츤데레처럼 틱틱거리기도 한다. 업무량이 좀 과하다 싶을 때는 "No!"를 외칠 때도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건 화를 내지 않고 정중히 이야기 하는 것이다. "이거를 왜 제가 해야 돼요?", "왜 맨날 저만 시키시는데요?"와 같은 이런 말투로는 싸움밖에 안 되기에 하지 않는다. 나만의 유머와 위트로 기분 나쁘지 않게 완곡하게 내 생각을 표현한다. 그런 식으로 일을 할 때와 안 할 때의 균형을 잘 잡은 덕분에 나는 호구가 되지 않고 상사와 친근한 선후배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다.
나름 직장생활을 잘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앞으로 또 선후배와의 관계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다. 그때 그때마다 사람도 다르고 상황도 다르니 지금의 내 방식이 무조건 좋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계속 배우고 고민하고 성찰하며 나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