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제습기를 선물했다. 엄마가 쓰고 있던 제습기를 훔쳐오다시피 한 게 마음에 걸려서였다. 작년 여름이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집 안이 습기로 가득찼다. 이불이며 장판이며 할 것 없이 다 눅눅해졌다. 제습기가 필요했다. 인터넷 검색을 했다.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저렴한 걸 사자니 성능이 떨어질 거 같고 비싼 걸 사려니 쓸데없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이 됐다. 꼭 필요하면 비싸더라도 사겠지만 한여름철에만 잠깐 필요한 거라 구매가 망설여졌다. 일단 보류했다.
주말에 부모님이 계신 본가에 갔다. 제습기가 놓여 있었다.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제습기 이거 안 써?"
"어, 안 써. 필요하면 가져 가."
혹시나 해서 한 번 더 물었다. 진짜 안 쓴단다. 옳거니! 기쁜 마음으로 차에 실어 우리집으로 가져왔다. 작년 여름동안 잘 썼다. 집 안 습기 제거보다는 주로 빨랫감을 말리는 용도로 썼다. 비가 와서 베란다에 빨래를 널 수 없을 때 방 안 곳곳에 빨랫감을 걸어 놓고 제습기를 돌렸다. 반나절만 지나도 바짝 말랐다. 비 오는 날에 제습기는 내게 빼놓을 수 없는 아이템이 되었다. 역시 돈이 좋구나, 남들이 좋다고 하는 건 써봐야 하는 거구나 싶었다.
비가 많이 내리던 지난여름 어느 날이었다. 엄마와 전화통화를 했다. 날씨 이야기를 하다가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올해는 비가 얼마나 많이 오는지 습기 때문에 집이 얼마나 꿉꿉한지 모른다."
비가 오는 날이면 항상 틀던 엄마의 제습기를 내가 가져간 게 원망스러워 저렇게 말하나 싶었다. 나는 일부러 퉁명스럽게 말했다.
"비가 많이 오긴 뭐가 많이 와? 그렇게 많이 오지도 않았구만."
엄마가 있는 지역에 비가 얼마나 왔는지도 모르면서 내 멋대로 대답했다. 아니란다. 올해는 유난히 비가 많이 왔단다.
"내가 가져온 제습기 다시 갖다 줄까?"
괜찮단다. 계속 나보고 쓰라고 했다. 가지고 있자니 마음이 불편하고, 주자니 필요없다 하고, 찝찝했다. 그냥 돌려주면 될 일인데 솔직히 나도 한 번 쓰니 계속 쓰고 싶었다. 빼먹을 게 없어서 엄마 꺼를 빼먹나 싶었지만 어쨌든 그랬다.
사실 제습기를 쓸 때마다 기분이 마냥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말은 안 쓴다고 했지만 자식인 나를 위해 일부러 안 쓴다고 말한 건 아닌지 신경쓰였다. 제습기가 없어 꿉꿉한 여름을 보내고 있는 건 아닌지 염려됐다. 제습기 전원을 켤 때마다 엄마가 눈에 밟혔다. 방 구석에 제습기가 놓여있는 것만 봐도 미안함 마음이 들었다.
지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였다. 어쩌다 부모님 얘기가 나왔고 제습기를 가져온 이야기를 꺼냈다. 지인 중 한 명이 내게 말했다.
"그럴 땐 그냥 새걸로 하나 사드려."
지인 말대로 하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그래야 집에 있는 제습기를 사용해도 죄책감이 덜 할 것 같았다. 인터넷에서 제습기를 알아봤다. W사 제품이 가성비가 우수하단다. 가격은 23만 원. 적당했다. 바로 주문했다. 엄마를 깜짝 놀래켜주기 위해 엄마 집이 아닌 우리집으로 배송을 받았다. 본가에 방문할 때 짠 하고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주문한 제습기가 도착했다. 제습기를 차 뒷좌석에 싣고 본가로 갔다. 엄마 집 문 앞에 제습기를 두고 설레는 마음으로 문 비밀번호를 눌렀다. 띠리링~♪ 문을 열었다. 엄마와 인사 후 바로 집 거실에 제습기가 든 큰 박스를 놓았다. 엄마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게 뭔데?"
"어, 제습기"
제습기라는 내 말에 뭔가 잘못됐다고 느낀 듯한 목소리로 엄마가 말했다.
"혹시 이거 새거가?"
예상한 질문이었다. 그렇다고 했다. 그 순간 엄마는 갑자기 전재산을 날려 버리기라도 한 듯한 표정과 말투로 말했다.
"아이고, 새걸 뭐하러 사노? 어? 중고도 좋은 거 많은데, 아이고 진짜.."
평생을 검소하게 살아오셨다. 넉넉지 못한 형편 탓에 어쩔 수 없이 아끼고 또 아껴야 했다. 지금은 예전에 비하면 살림살이가 많이 나아졌는데도 과거의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 있어서 그런지 돈을 함부로 쓰지 못한다. 특히 새걸 못 산다. 뭐든 중고로 산다. 서랍장과 같은 가구가 필요하면 나보고 중고로 나온 제품 없냐며 알아보라 한다. 아파트 단지 내 누가 버려놓은 가구가 있으면 항상 유심히 살핀다. 쓸 만하면 가져다 쓴다. 옷도 구제점에서 구입한다. 신발도 마찬가지다. 엄마 집에 있는 옷과 신발 대부분이 중고다.
그렇다고 아무거나 막 사진 않는다. 브랜드 따진다. 가끔 나한테 전화를 걸어 묻는다.
"폰에 사진 보냈는데 봐봐. 이거 메이커가?"
여기서 메이커란 유명 브랜드인지를 묻는 거다. 누구나 알 만한 브랜드여야 산다. 그래서 엄마집에는 다양한 브랜드의 옷이 많다. 신발은 거의 다 나이키다. 어디서 저렇게 다 건져오나 싶다.
이런 엄마의 성격을 알기에 새 제습기를 드렸을 때 어떤 반응일지 예상은 했었다. 그래서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마냥 설레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뭘 이런 걸 다 샀냐며 형식적인 말만 하고 기분 좋게 받을 줄 알았다. 새걸 산 걸 너무 아까워 하니 나도 답답해졌다. 그래도 잘 설명해줘야겠다 싶었다.
"엄마, 중고도 봤는데 가격이 보통 20~30만 원은 하고 저렴하게 올라온 것도 15~20만 원은 하더라. 그 정도 돈 주고 중고를 살 바에는, 내가 산 이 제품이 23만 원데 새걸 사는 게 더 낫지 않겠나?"
반신반의 하는 표정을 짓는 엄마에게 휴대폰을 보여줬다. 당근 어플을 열어 같이 제습기 시세를 확인했다. 수긍하는 눈치다. 결국은 나에게 고맙다고 말했지만 여전히 꺼림칙한 표정이다. 선물 고맙다며 기분 좋게 받아줬으면 했건만, 어쩔 수 없다. 선물로 엄마에 대한 내 마음을 표현했으면 된 거다.
사드리고 나니 뿌듯했다. 집으로 가져온 엄마의 제습기를 봐도 죄스러운 마음이 덜 했다. 마음의 짐을 조금은 덜어낸 기분이었다.
지난주말에 본가에 갔다. 내가 사준 제습기가 그대로 놓여있었다,
"엄마, 제습기 이거 써봤나?어떻던데?"
아직 안 써봤단다. 그러면서 하는 말,
"그때 가져간 제습기 다시 엄마 주고, 이 새 제습기는 네가 가져다 써라."
왜 또 그 얘기 안 하나 했다. 처음에 제습기를 사줬을 때도 했던 말이다. 둘 중 뭐가 더 좋은지 써보고 마음에 드는 걸로 쓰시라 했는데도 엄마는 새 제습기의 전원 한번 켜보지 않고 바꾸자고 했다. 내가 사준 게 더 신식이니 이왕이면 자식인 내가 더 좋은 제품을 쓰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됐다고 말해도 나중 되면 엄마 성격상 또 같은 말을 할 게 뻔했고 나도 새제품 써서 나쁠 것 없으니 내가 가져간 구형 제습기와 다시 바꾸기로 했다.
이제 나도 직장 연차가 제법 쌓여 엄마에게 뭐든 사줄 수 있는 어른이 되었는데도 엄마는 돈 드는 일이면 한사코 사양한다. 이젠 좋은 것 좀 입고 쓰고 사시라고 말해도 엄마는
"이제 다 늙어가지고 꺾어진 인생인데, 좋은 거 필요없다. 우리 아들만 좋은 거 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