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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권작가 Mar 13. 2024

다른 작가의 책이 잘 팔리길 기도한 이유

책 출간 후 생긴 습관이 있다. 새책을 구매하지 않는 것이다. 다른 작가가 인세를 버는 데 보태주고 싶지 않았다. 질투심 때문이었다.


2019년에 생애 첫 책을 출간했다. 얼마 안 팔렸다. 정확한 판매부수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1쇄도 다 못 팔았다. 처음 책을 쓸 때만 해도 책을 내는 데 의의를 두고 썼다. 하지만 책 판매량이 너무 저조했고 그때부터 잘 팔리는 다른 책들을 보면 질투가 났다. 특히 베스트셀러 코너에 있는 책을 볼 때면 더 배가 아팠다. 배가 아프다못해 짜증이 나기도 했다. 두 번째 책을 쓰겠다는 다짐만 몇 년째 하고 있는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브런치도 예외는 아니었다. 브런치에서 쓴 글을 모아 책으로 냈다는 이야기나 출판사로부터 출간제의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어도 시기심이 일었다. 심지어 구독자 수가 많은 작가만 봐도 인상이 구겨졌다. 앱을 종료하며 외면했다.


질투가 많은 편이다. 학창시절부터 그랬다. 특히 외모 질투를 많이 했다. 고등학생 때 잘생긴 친구가 있었는데 다른 친구들이 잘생긴 친구에게 외모 칭찬을 하면 매섭게 노려보며 눈으로 욕했다. 친구들로부터 질투의 화신이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였다. 20대 때도 잘생긴 사람들이 주목 받는 걸 보면서 질투가 났다. 외모뿐만 아니라 노래 잘하는 사람도 시기했다.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노래 잘하는 일반인을 보면 바로 채널을 돌려버렸다. 군무원 시험 공부를 할 때 학원 모의고사에서 나보다 성적이 좋은 수험생을 볼 때도 얼마나 시샘했는지 모른다. 이러한 질투심이 열정으로 변해 지금은 나 자신을 성장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 능숙한 사람을 보면 여전히 샘난다.


책 출간 전까지만 해도 책을 사서 읽었다. 좋은 글귀에 밑줄도 치고 귀 모퉁이도 접으며 편하게 읽는 게 좋았다. 책을 사는 것만으로도 그 책의 내용을 다 터득한 기분이 들어 책 사는 행위 자체가 좋았다. 보통 한두 권씩 샀고 많을 땐 한 번에 네다섯 권도 샀다. 서재에 책을 한 권 한 권 모으는 재미도 있었다. 지금까지 모은 책이 200권 정도 된다.


랬던 내가 책 출간 이후 4년 동안 새책을 사지 않았다. 알라딘, 예스24와 같은 중고서점에서 중고책 구매해 읽었다. 읽고 싶은 신간이 있어도 '너희들 인세에 내 돈 한 푼도 보태주지 않겠어!'라는 못된 심보가 발동해 끝까지 안 사고 버텼다.

 

다시 새책을 사기 시작한 건 몇 달 전부터였다. 중고서점에서는 새로 출간된 책을 바로 구할 수가 없어 아쉬웠다. 새책을 통해 요즘 트렌드를 파악하고 싶기도 했다.


읽고 싶은 책이 있 지난 주말에 교보문고에 갔다. 서점 1층에 들어서는 순간 깜짝 놀랐다. 사람이 바글바글 했기 때문이다. 서점에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건 처음 봤다. '다들 무슨 책을 이렇게나 많이 산대? 쳇.' 하고 마음 속에서 또 날카로운 감정이 올라왔다. 지난 4년 동안 새책 보이콧을 했음에도 다른 책, 다른 작가에 대한 질투심은 여전했다. 그런데 이번엔 뭔가 이상했다. 내 안에서 갑자기 이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작가들이 쓴 책이 잘 팔릴 수 있도록 기도하자. 잘 팔리게 해주세요! 잘 팔리게 해주세요!'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다른 책들도 다 망해버려라고 저주하던 내가, 인세 보태주는 게 싫어 오랫동안 새책을 사지 않던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나도 의문이다. 신기했던 건 이렇게 기도하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는 점이다. 남 잘 되게 해달라는 기도가 내 안에 있던 시기와 질투를 다 녹게 만들었다. 남을 위한 일이 나를 위한 일이 된 것 같았다. 마음이 풀어지며 웃음이 났다. 오랜만에 기분 좋게  구경을 했다. 그리고 책을 샀다.



얼마 전 모임이 있어 북카페에 갔다. 북카페답게 책이 많았다. 보통의 북카페보다 더 많았다. 기존 출판사의 책부터 독립서적까지 다양한 책이 있었다. 책 구경을 하면서 마음 속으로 빌었다.


'여기 있는 책들 다 잘 팔리게 해주세요. 잘 팔리게 해주세요!'


일면식도 없는 작가들을 위해 기도하던 중 주문한 자몽차가 나왔다. 그 어떤 때보다 따뜻하고 달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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