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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권작가 Mar 09. 2024

집안일 하면서 다들 그렇게 사는 거지 뭐

오늘 아침 6시 50분에 잠에서 깼다. 출근을 하지 않는 날이지만 평일과 마찬가지로 비슷한 시간에 눈이 떠졌다. 일찍 깬 건 괜찮다. 문제는 생각보다 너무 말짱했다는 거다. 평일에 더 자고 싶지만 출근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어나야 하는 그 아쉬움을 토요일인 오늘 해소하려 했는데 말이다. 평일 아침에 알람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가 5분만 더 자려는 생각으로 다시 잠을 청할 때 느낄 수 있는 그 몇 초 간의 달콤함을 오늘 느끼고 싶었는데 실패다. 깰 때 깨더라도 몸이 되게 나른하게 깰 때가 있는데 오늘은 그마저도 안 됐다. 그저 정신이 맑았다. 그렇다고 100% 개운한 기분은 아니었다. 잠을 덜 잔 것 같은 찝찝한 느낌이 있었다. 꿈을 꾸느라 잠을 설쳐서 그런 것 같다. 이번주 내내 꿈을 꿨다. 악몽은 아니었지만 좋은 꿈도 아니었다. 약간 불편한 꿈이었다. 종종 이럴 때가 있다. 


이대로 주말 아침의 늦잠을 포기할 순 없었다. 다시 잠을 청했다. 왼쪽, 오른쪽을 번갈아 가며 새우잠을 잤다. 옆으로 누워 자는 게 어깨에 안 좋다고 하는데, 내 왼쪽 어깨가 아픈 것도 평생을 왼쪽으로 누워 잔 습관 때문인 것 같은데도 여전히 새우잠을 고집한다. 천장 보고 똑바로 누우면 잠이 안 오기 때문이다. 여태껏 왼쪽으로 잤으니 이제는 오른쪽으로 누워 자려고 한다. 하지만 왼쪽으로 누워야 위 속에 있는 음식물이 역류를 덜 한다는 의학적 사실을 떠올리며 다시 왼쪽으로 돌아 눕는다. 대충 자면 될 것을, 아는 것도 병이다. 


안 오는 잠을 억지로 자려니 계속 뒤척였다.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정신없이 자다가 9시쯤 일어났다. 조금 피곤했지만 더 잤다간 오전을 다 날려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서둘러 일어났다. 늦잠 충분히 자면서도 주말 하루를 시작하기 좋은 적당한 시간이 내겐 9시다. 일어나자마자 집안일을 시작했다. 주말 아침에 블루투스 스피커로 힙한 노래를 틀어 놓고 빨래, 설거지, 청소기 돌리기 같은 집안일을 하는 것이 혼자 사는 내가 느끼는 즐거움이다. 빨래를 위해 종류별로 옷을 분류했다. 양말, 내의, 맨투맨 티, 바지 등으로 분류한 후 세탁망에 넣었다. 나는 빨래할 때 옷 전부를 세탁망에 넣고 돌린다. 드럼세탁기를 쓰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나는 통돌이를 쓴다. 통돌이만을 써온 엄마의 영향으로 나도 자취를 시작할 때 통돌이를 샀다. 드럼보다 통돌이가 세탁이 더 잘 된다는 점도 내가 통돌이를 쓰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사실 드럼을 안 써봐서 드럼의 장점을 모른다. 뭐든 써봐야 알고 해봐야 아는 법이다. 


빨래를 돌려 놓은 다음 설거지를 했다. 예전엔 설거지가 좋고 빨래가 귀찮았는데 요즘은 빨래도 귀찮고 설거지도 귀찮다. 빨래는 옷을 새로 빨아입는 맛이 있어 약간의 개운함이 있는데 설거지는 그 개운함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평일에 도시락을 싸다니는데 설거지를 잘 하지 않아 아침에 급하게 맨손으로 도시락통과 수저를 씻을 때가 많다. 조금만 부지런하면 될 것을, 게으름 때문에 매번 작은 후회를 한다. 그것이 어디 집안일 뿐이랴. 독서도 운동도 식단도 새벽 기상도 다 선택과 책임 그리고 후회의 연속이다. 


설거지 완료 후 청소기를 돌렸다. 내가 키우는 고양이인 망할 복길이 때문에 방바닥이 고양이털로 엉망이다. 제때 청소하지 않으면 냥이의 흰털과 나의 검은 머리털이 뒤섞여 바닥 곳곳을 뒤덮는다. 청소기 돌리고 창문 열어 환기시켰다. 청소 끝! 아니다. 속옷 빨래가 남았다. 속옷은 세탁기에 넣지 않고 손빨래 한다. 양동이에 세제를 풀고 물을 가득 담은 후 속옷 여러 개를 넣고 손으로 오물조물 빨았다. 손수 세 번을 헹구고 세탁기 탈수를 살짝 돌린 후 베란다에 널었다. 드디어 주말 아침 집안일 끝!


요즘 주말에 집안일을 할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다들 이렇게 설거지 하고 빨래 하고 사는 거지 뭐. 사는 게 뭐 별거있나.' 


인생 별거 없다, 사는 게 별거 없다는 이런 말은 예전부터 많이 들었다. 예전엔 그냥 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뭐 하나 제대로 이룬 것도 없는 사람이 별거 없는 인생 대충 살자며 스스로를 합리화 하기 위한 말이라고 치부하기도 했다. 요즘엔 내 입에서 사는 게 별거 없다는 말이 나온다. 삶의 희망을 잃은 푸념이 아니다. 그건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앞만 보며 너무 열심히 달려온 나 자신에 대한 위로였다. 인생을 조금 가볍게 살아도 된다는 격려였다. 


누구나 집안일을 한다. 부자인 사람, 가난한 사람 할 것 없이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청소리를 돌린다. 돈 많은 사람이 더 좋은 세탁기, 더 비싼 청소기를 사용할 순 있지만 집 안을 쓸고 닦고 광내야 하는 건 다 똑같다. 누구나 먹고 자고 싸는 게 다 똑같다고 생각할 때 매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야 한다는 내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최근 10년 동안 주말에 낮잠을 손에 꼽을 정도였던 내가 오늘은 집안일 시간 정도 낮잠을 즐겼다. 


오랜만에 시내에 나왔다. 햇볕 쬐며 걸었다. 서점도 가고 도서관도 갔다. 카페에 앉아 이렇게 글도 쓰고 있다. 저녁 6시 30분인 지금, 어느덧 해가 저물고 있다. 이제 운동하러 헬스장에 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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