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 시렸다. 치과에 갔다. 의사 왈, 잇몸이 많이 내려 앉아서 그렇단다. 앞니와 송곳니가 유독 심했다. 뿌리가 다 드러날 정도로 잇몸이 많이 내려 앉아 있었다. 제길. 이게 다 손톱 깨무는 습관 때문이다.
손톱 물어뜯는 습관이 있다. 7살쯤부터 뜯었으니까 올해로서 손톱 뜯기 30년차다. 강산이 3번이나 바뀌는 세월동안 손톱을 씹어댔다. 이 정도면 손톱 뜯기 장인이다.
손톱을 왜 물어뜯냐고 사람들이 묻는다. 모르겠다. 그냥 습관이다. 사실 씹는 맛이 좋다. 손톱을 앞니와 송곳니로 잘근잘근 씹을 때 그 느낌이 좋다.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면 너무 변태같으려나? 손톱성애자 정도로 해두자.
손톱이 자라는 꼴을 못 본다. 조금이라도 씹을 만한 게 보이면 손톱을 입에 갖다 댄다.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긴다. 습관의 원인으로 애정결핍을 꼽는 사람들이 있다. 사랑 받았다 못 받았다는 게 주관적인 느낌이라 내가 사랑을 못 받아서 그런 건진 알 수 없다. 심리적으로 불안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이 더 일리가 있는 것 같다. 실제로 긴장되거나 불안할 때 손톱을 더 자주 뜯기 때문이다. 생각이 많을 때도 뜯는다. 어떤 글을 쓸지 고민하면서 뜯고 주말에 무슨 옷을 입을지 고민하면서 뜯고 운전중에도 뜯고 티브이를 보면서도 뜯는다. 말하고 보니 이유 없이 뜯는 것 같다.
손톱이 짧으니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머리를 긁어도 하나도 시원하지가 않다. 바닥이나 테이블에 있는 동전을 줍기도 힘들다. 꽁꽁 묶인 신발끈이나 비닐봉지를 풀기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무엇보다도 속살이 다 드러날 정도로 손톱을 뜯어버리니 손톱 주변이 아프다. 위생에도 안 좋다. 더러운 손을 입에 자주 갖다 대니 좋을 게 없다.
최소한의 손톱은 길러야겠다고 결심했다. 고치려고 해봤다. 장갑을 껴보기도 하고 손톱 깨물 때마다 스스로에게 주는 체벌로 허벅지 안쪽을 세게 꼬집기도 했다. 쓴맛 나는 손톱영양제도 발라봤다. 다 실패했다. 뜯을 빌미 자체를 없애버리기 위해 손톱깎기로 손톱을 최대한 짧게 깎기도 했지만 조금이라도 손톱이 자라면 내 이가 그걸 어떻게 알고 나도 모르는 새 또 뜯어댔다. 쉽게 바꿀 수 있을 리 없었다. 5년, 10년도 아니고 30년을 지속해온 습관을 어떻게 며칠, 몇 달만에 바꿀 수 있으랴.
그런데 이게 의지의 문제만은 아니다. 담배를 끊거나 살을 빼는 것만큼이나 내겐 어려운 일이다. 습관을 바꾸는 건 어렵다. 노력만으론 안 된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한다.
슬픈 노래를 끊게 된 계기
학창시절부터 우울증이 좀 있었다. 우울할 때마다 슬픈 노래를 들으며 마음을 달랬다. 가끔은 슬픈 노래를 들으면 더 우울해질 때도 있었다. 우울함이 깊어지는 게 싫어 슬픈 노래를 듣지 않으려고도 해봤지만 끊을 수 없었다. 나는 너무 우울해서 슬픈 노래를 듣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꼈다. 나의 감정을 더 어둡게 만드는 걸 알면서도 슬픈 음악을 들으며 우울해했고 때로는 눈물까지 글썽였다.
평생 끊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슬픈 노래를 끊게 된 계기가 있었다. 29살에 만나던 여자친구와 헤어졌을 때다. 이별 후 많이 힘들었다. 괴로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평소처럼 슬픈 노래를 들었다. 음악이 내 마음을 어루만져 줄거란 기대와 달리 더 힘들게 만들었다. 그냥 힘든 게 아니라 가슴이 울렁거리며 미칠 것 같았다. 이상했다. 힘들 때마다 슬픈 음악을 듣는 게 좋았는데 그때만큼은 내 가슴에 못질하는 느낌이 들었다. 도저히 노래를 더 들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날로 슬픈 노래를 끊었다.
습관을 바꾸려면 그 습관을 행할 때 느끼는 이익보다 손해가 더 클 때 가능하다. 슬픈 음악을 끊게 된 것도 노래를 들었을 때의 이익보다 손해가 더 컸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금껏 손톱 뜯는 습관을 고치지 못하는 것도 이 습관을 바꿔야만 하는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습관이 그렇다. 도저히 담배를 끊지 못하겠다는흡연자도 폐암에 걸리면 열에 일고여덟은 끊는다. 야식과 과식을 좋아하고 음주가무를 즐기던 사람도 암에 걸리면 대부분 식습관을 고치게 된다.
최근 몇 달 전부터는 손톱을 덜 뜯고 있다. 이가 시리기 때문이다. 특히 앞니가 심하다. 손톱을 살짝 씹기만 해도 앞니가 너무 시려 도저히 손톱을 씹을 수 없는 지경이 됐다. 30년이나 손톱을 뜯어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손톱을 씹었을 때 느끼는 쾌감보다 이가 시린 괴로움이 더 커졌기에 오랜 이 습관도 이제 조금은 변화할 기미가 보이는 것이다.
사람들마다 바꾸고 싶은 생활습관 하나씩은 있다. 술 담배 끊기, 다이어트 하기, 폰 보는 시간 줄이기, 책 읽기, 아침 일찍 일어나기, 저녁 식사 후 산책하기 등등 다양한 목표가 있다. 바꾸려고 노력해도 쉽지 않다. 이유가 무엇일까? 살 만하기 때문이다. 습관을 바꾸지 않아도 살 만하기 때문에 똑같이 산다. 야식을 줄이고 싶지만 살 좀 쪄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그냥 먹는다. 운동하면 건강에 좋은 건 알지만 아직 불편한 데가 없으니 그냥 폰 보며 누워 있는다. 술, 담배를 계속 하면 큰 병에 걸릴 수 있다는 건 알지만 당장 큰 문제가 없으니 계속 피우고 마신다. 아침 일찍 일어나 여유롭게 출근 준비를 하고 싶지만 어찌됐든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회사에 시간 맞춰 도착하기 때문에 또 늦잠을 잔다. 다들 이렇게 살 만하기 때문에 그냥 사는 대로 사는 거다.
습관을 바꾸고 싶으면 바꾸면 된다. 바꿔야 할 이유를 글로 써보든, 지인들에게 공표를 하든, 체벌을 주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바꾸면 된다. 바꿔야겠다고 생각은 들지만 몸이 안 따라준다면? 안 바꾸면 된다. 생각대로 되면 좋겠지만 안 되는 걸 어쩌겠는가. 원래 습관이란 게 바꾸기 어려운 거다. 그냥 그렇게 살면 된다. 마음 먹은 대로 행하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는가. 노력해서 목표를 이루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적당히 불평하면서 그렇게 산다. 그게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도 모르게 손톱을 뜯고 있다. 이 시림이 심한 앞니를 피해 덜 마모된 송곳니로 손톱을 요리조리 씹어댄다. 하.. 잇몸이 전체적으로 많이 내려 앉아 앞으로 이 시림이 더 심해질 거라고 치과 의사가 말했는데, 치아 상태가 심각하다는 걸 깨닫고 이제 진짜 습관을 고쳐야겠다고 다짐했는데도 아직 뜯고 있다. 덜 아프다는 방증이다. 아마 성한 이가 없어질 때쯤 정신차리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