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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권작가 Jul 03. 2024

생일을 함께 축하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나의 37번째 생일

생일하면 생각나는 상황과 감정이 있다. 스무 살 때였다. 토요일 저녁에 길을 걷다가 한 친구와 마주쳤다. 그녀의 양손에 뭔가가 한가득 들려있었다. 꽃다발과 케이크였다. 한두 개가 아니었다. 꽃다발은 2개였고 케이크는 무려 3상자나 있었다. 그날이 자기 생일이라고 했다. 친구들과 술집에서 생일파티를 한 후 2차로 다른 술집으로 이동중이라 했다. 발이 넓은 친구였다. 인맥이 넓은 만큼 생일을 축하해주는 사람도 선물을 주는 사람도 많았던 것 같다. 양손 무겁게 꽃과 케이크를 든 채 해맑게 웃고 있는 그녀가 부러웠다. 그녀의 생일을 챙겨주는 사람이 많다는 게 그렇게 부러웠다. 나는 생일날 제대로 된 생일파티를 해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제대로 된 생일파티'란 그 여사친처럼 친구들과 함께 번화가에 있는 술집에서 함께 술도 마시고 케이크도 썰고 하는 것을 말한다. 누군가에게는 연인이나 가족과 함께 생일을 보내는 것이 최고겠지만 20대 때의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생일파티는 그랬다.



생애 첫 생일파티

내가 생각하는 첫 생일파티는 초등학생 3학년 때인 걸로 기억한다. 엄마가 나보고 친구들과 뷔페 가서 맛있는 거 먹으라고 용돈을 쥐어줬다. 뷔페에서 친구들 열댓 명을 만났다.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었다. 친구들이 생일 선물을 건넸다. 포장지를 하나 하나 뜯을 때마다 기쁘고 설렜다. 술집이 아닌 뷔페였고 술이 아닌 음료였고 케이크가 아닌 다양한 음식들이었지만 그때가 내가 기억하는, 처음으로 제대로 한 생일파티였다.


이후로는 생일 때마다 엄마가 맛있는 음식을 차려줄 뿐 친구들과 함께한 파티는 한동안 없었다. 성인이 돼서야 술을 곁들인 생일파티를 처음 했지만 내가 주인공이 된 게 너무 어색해서 마음껏 즐기지 못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축제에서 마술로 무대에 오르고 학급 반장을 한 적도 있는 걸 보면 남 앞에서 뽐내는 걸 좋아하고 나서는 것도 좋아하는 성격임에 틀림없지만 그럼에도 생일만 되면 그렇게 쑥쓰러울 수 없었다.


그런 성격 탓에 생일이 돼도 사람들에게 알리지 못했다. 생일이니 다같이 밥 먹자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생일 선물 달라는 말도 하지 못했다. 말은 못하고 혼자 서운해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래서 생일 때마다 왠지 좀 슬퍼졌다.  



매번 그렇게 생일을 가볍게 넘겨서였을까. 오랜만에 맞이한 25살 때의 생일파티가 유독 감동적이었다. 내 생일인 걸 알고 직장 동생 4명이 술 마시러 가자고 했다. 술집에 가서 동생들이 케이크에 초를 꽂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줬다. 노래를 불러주니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한 번 더 불러달라고 했다. 두 번을 부른 다음에야 함박웃음을 지으며 초를 후 하고 불었다. 술을 마음껏 마시고 안주도 맛있게 먹으며 웃고 놀았다. 처음으로 내 생일을 마음껏 만끽한 날이었다.


30대가 된 이후부터는 생일이 되어도 크게 감흥이 없었다. 축하 파티 없이 넘어가는 게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매년 있는 생일 특별하게 보낼 게 뭐 있냐고 생각할 뿐이었다.



나의 37번째 생일

지난 토요일은 6월 29일은 나의 37번째 생일이었다. 지금껏 특별할 것 없는 생일을 보내왔지만 이번 생일만큼은 달랐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 보냈기 때문이다. 생일이라고 그녀가 집에서 손수 생일상을 차려줬다. 작은 카스테라도 준비했다. 초에 불을 붙여 빵에 꽂아줬다. 후~ 하고 불고 박수를 쳤다. 내가 단것을 좋아하지 않는 걸 생각해 케이크 대신 빵은 준비한 거라 했다. 취향저격이다. 형식도 좋지만 역시 실속이 최고다. 함께 식사를 했다. 미역국도 맛있었고 푹 잘 삶은 수육도 꿀맛이었다. 카스테라도 맛있게 먹었다.

배를 든든히 채운 후 예매해 둔 음악 공연을 보러 갔다. '청춘, 썸머페스티벌'이라는 이름의 무료공연이었다. 인디밴드 3팀의 공연을 감상했다. 무료공연치고 퀄리티가 높았다. 눈과 귀가 호강한 시간이었다.


공연 관람 후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콩국집이었다. 콩국과 토스트, 잔치국수를 주문했다. 생일식사치고는 소박한 메뉴다. 친누나는 내게 용돈을 보내주며 생일이니 스테이크라도 썰어라고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음식이 너무 맛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어떤 음식을 먹어도 콩국, 토스트, 잔치국수보다 맛있을 순 없을 것 같았다. 먹을 때마다 감동 그 자체였다.


오랜만에 풍성한 생일을 보냈다. 혼자였다면 그 어떤 맛있는 음식을 먹고 그 어떤 즐거운 공연을 봐도 즐겁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 덕분이다. 종일 비가 왔음에도 그녀가 있어 우울하지 않았다. 느 때보다도 비바람이 시원했다.




스무살 때 생일이라며 꽃과 케이크를 한가득 들고 있던 그 친구를 본 이후 생일 때마다 그 친구가 생각났다.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부러워하는 내 모습도 떠올랐다. 그때마다 마음이 미어졌다.


이제는 괜찮다. 케이크보다 더 맛있는 음식을 차려주고 꽃보다 더 멋진 선물해주는 사람이 옆에 있으니까. 축하해주는 사람 없다고 서운해하고 제대로 된 파티를 하지 못해 섭섭해 했던 스무살의 나에게 위로를 건넨다.


많이 속상했지? 이제 괜찮아.


과거의 내가 뒤돌아서서 지금의 나를 쳐다본다. 배시시 웃는다. 다행이다. 괜찮아 보여 다행인데 이상하게 지금의 내가 울컥한다. 너무 행복하면서도 가슴 저린 생일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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