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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권작가 Jul 09. 2024

축구는 못하지만 패스는 받고 싶었어

직장동료가 지인들과의 축구경기가 있다며 같이 하자고 했다. 안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인 뭉쳐야찬다를 보면서 축구가 하고 싶던 참이었다. 신발장에 오랫동안 묵혀둔 축구화를 꺼냈다. 축구장으로 갔다.  


스무여 명의 사람들이 벤치에서 모여 얘기를 나누며 신발을 갈아신고 있었다. 직장 동료 외엔 아는 사람이 없어 어색했다. 축구장 안에서 혼자 몸을 풀었다. 곧 경기가 시작됐다. 나는 오른쪽 미드필더 자리에 섰다. 열심히 공을 쫓아다녔다. 공 한 번 건들기가 쉽지 않았다. 나에게 공이 왔다. '좋아. 한번 보여주자' 내 다짐과는 달리 공을 엉뚱한 데로 차고 말았다. 다시 또 뛰었다. 우리 팀이 내게 공을 패스했다. 발로 공을 잡으려는데 발 밑으로 공이 빠져나가고 말았다. 이후로도 공을 가지고 돌파하다가 뺏기고 헛발질 하다가 공을 놓치기를 반복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팀이 내게 공을 주지 않았다. 나한테 공을 주기 편한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패스 받기 어려운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공을 돌렸다. 그들은 알았던 것 같다. 나한테 공을 주면 놓치거나 뺏길 게 뻔하다는 걸. 내가 공을 받기 위해 공을 잡고 있는 우리팀 앞에 가까이 다가가면 우리팀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고는 곧바로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 사람들의 표정을 볼 때마다 나는 축구를 못하는 내가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나만 소외된 것 같아 속상했다. 우리팀이 상대편 진영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나도 힘을 보태기 위해 숨을 헐떡거리며 뛰어가도 그들끼리만 공을 돌렸다. 다시 우리 진영으로 돌아올 때 나는 또 소외감을 느꼈다.


공을 아예 안 준 건 아니다. 나에게도 종종 패스하기도 했지만 나를 외면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공을 들고 있는 우리팀 사람과 그 앞에 서 있는 내가 눈을 마주쳤을 때 그 사람의 눈빛이 얼마나 싸늘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경기가 끝난 후 그녀에게 전화했다. 나에게 축구 재밌었냐고 물었다.


"어, 재밌긴 했는데 내가 제일 못해가지고 나 좀 창피했어.'


이렇게 말하고 나니 갑자기 속상함이 몰려와 울컥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학창시절 때 겪었던 똑같은 일이 떠올랐기 때문인 것 같다.

축구를 해본 적이 거의 없다가 고등학교 때 처음 축구를 해봤다. 당연히 실력은 없었다. 고등학생 때 반 친구들과 축구를 자주 했다. 한 번은 우리팀 공격수 3명이 상대편 진영에서 패스를 주고 받고 있었다. 나도 골을 넣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뛰어갔다. A에게 공을 달라고 해도, B에게 공을 달라고 해도 그리고 C에게 공을 달라고 해도 3명 다 나에게 공을 주지 않았다. 아예 쳐다 보지도 않았다. 나에게 공을 줬다간 이 중요한 기회를 놓칠 게 뻔하다고 생각한 게 내 눈에 보였다. 그때 그 상황에서 나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내가 축구를 못하니까 패스를 못 받았던, 별 것 아닌 일이지만 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어릴 때 나는 자존감도 낮았고 피해의식도 많았던 터라 공을 받지 못할 때 소외감을 크게 느꼈다. 이 경기에서 나는 타인에게 귀찮은 존재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초등학생 때 했던 축구 테스트

초등학생 때 학교 내 축구부 선수를 뽑는 테스트 경기에 참가한 적 있었다. 축구를 해본 적 없지만 그냥 해보고 싶어 테스트에 자원했다. 공만 열심히 쫓아다녔던 것 같다. 경기 후 경기를 치른 20~30명의 아이들이 축구부 선생님 앞에 모였다. 선생님이 경기를 하면서 눈여겨 본 아이들을 한 명씩 선발했다. 혹시나 나를 부르진 않을까 긴장된 마음으로 기다렸다. 내 이름은 없었다. 속상했다. 나는 축구 하나 제대로 할 줄 모른다는 생각에 자책하며 괴로워했다.


이런 성격 때문에 초등학생 때의 일도 고등학생 때의 일도 다 내게 상처로 남아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직장 동료들과 경기한 후 그녀에게 전화해 내가 오늘 축구를 못해서 창피했다고 말하는 그 순간에 내 마음 속에 숨어있던 어릴 때의 내가 나타나 울컥하는 마음이 올라왔던 것 같다. 나도 축구를 잘하고 싶었다. 잘해서 친구들에게 칭찬 받고 싶었다. 축구장 안에서 필요한 존재로 인정받고 싶었다.



내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누구나 잘하는 게 있고 못하는 게 있다. 못하는 게 있으면 연습해서 잘하는 걸로 만들면 된다. 잘하는 걸 더 잘하도록 연습해서 못하는 걸 상쇄시키는 방법도 있다. 내게 축구란 후자의 방법이 더 맞는 것 같다. 고등학생 때 축구도 많이 해봤고 20대 때 친구들과 풋살도 종종 해봤고 혼자 공을 사서 연습도 해봤지만 아무래도 내겐 축구하는 재능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내게 그나마 재능이 있는 일에 몰두할 생각이다. 바로 글쓰기다.


나는 글 쓰는 사람이다. 책도 출간한 작가이다. 우리나라에서 책 쓴 사람이 1%밖에 안 된다고 하니 나는 대한민국 1%다. 축구로는 99%에 들겠지만 글쓰기로 말하면 나는 1%에 해당되는 사람이다. 스스로 칭찬할 만한 타이틀이다. 축구를 잘하는 능력보다 글을 꾸준히 쓰는 능력이 내 인생에선 다 가치있는 일이다.


오랜만에 공 차는 재미를 즐기기 위해 축구 하러 갔다가 기대와 달리 어릴 때 느꼈던 그 소외감초라함을 또 겪고 왔지만 그래도 잘 뛰고 왔다. 달리기가 건강에 그렇게 좋다고 하는데 이날 원없이 뛰었다.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마음도 불편해 중간에 집에 갈까도 싶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뛴 것만으로도 잘한 거다. 축구는 잘하기보단 그냥 즐기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축구가 끝난 날 밤 오랜만에 너무 많이 뛰었는지 앓다시피하며 잠들었다. 다음날 푹 자고 일어났다. 평소처럼 카페에 갔다. 노트북을 꺼냈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래, 나에겐 글쓰기가 있지. 다행이다. 글 쓰는 사람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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