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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권작가 Jun 18. 2024

주문 1시간 만에 나온 음식, 사장에게 말했다

식당에 갔다. 양식집이었다. 다섯 테이블 중 한 자리가 남아 있었다. 자리를 잡은 후 목살스테이크와 파스타를 주문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먼저 온 4팀 모두 음식이 나오지 않아 우리가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꽤나 걸릴 듯했다.


그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느긋하게 기다렸다. 20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났다. 우리 바로 앞에 왔던 옆 테이블 손님 음식도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릴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40분을 기다려도 음식이 나오지 않았다. 장에게 물었다.


"얼마나 더 걸려요?"

"한 10분 정도 걸릴 것 같아요."


물어본다고 해서 음식이 갑자기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답답한 마음에 물었다. 약속한 10분이 지나도 음식은 나오지 않았다. 10분 걸린다고 하면 15~20분은 걸리겠구나 하고 미리 생각은 했지만 너무 늦어지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50분쯤 지났을 때부턴 나도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바로 음식이 나온다고 해도 기분이 풀릴 거 같지 않았다. 돈은 돈대로 쓰고 기분은 기분대로 상할 것 같았다. 그녀에게 물었다.


"다른 데 가는 건 어떤데? 좀 그렇나?"

"음식 만드는 중일 텐데 나가는 건 좀 그렇지 않아? 그냥 먹는 게 나을 거 같은데."


다른 식당을 간다고 해도 찾아가서 주문하고 음식이 나오기까지 족히 30분은 걸릴 것 같았다. 그냥 여기서 조금만 더 기다리기로 했다. 나는 별말 없이 기다렸다. 사장님에게 우리가 이렇게 짜증난 상태로 계속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어 일부러 뾰로퉁한 표정을 지은 채 앉아있었다.


기다린 1시간이 돼서야 음식이 나왔다. 사장님은 "음식 나왔습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말했다. 그 말이 더 기분 나빴다. 기계적인 말투 때문이었다. 1시간이면 결코 적게 기다린 게 아니다. 누구나 화날 만한 시간이다. 이럴 경우 진심으로 미안해야함이 마땅하다. 그렇다면 정말 미안한 말투와 표정으로 사과해야 할 거 아닌가. 그때라도 진심으로 사과하고 양해를 구했으면 기분이 조금이나마 풀렸을 거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아이고 손님 많이 기다렸죠? 오늘따라 주문이 너무 많이 밀려서 음식이 많이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너무 많이 기다리셔서 제가 음료는 서비스로 드릴게요^^"


음식 주문한 지 30분 정도 지났을 때쯤 간단한 씹을거리라도 내어주면서 사정을 이야기해줬으면 더 나았을 것 같다. 나라면 그렇게 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내가 아니니 어쩔 수 없지 뭐.


청년으로 보이는 사장님이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사회 경험이 적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센스가 부족한 건지 모르겠지만 사장님의 대처에 굉장히 기분이 언짢았다. 식사가 맛있을 리 없었다. 이왕 먹는 거 맛있게 먹자고 생각은 했지만 이미 기분은 상할 대로 상했다.


사장님에게 이 부분에 대해 얘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됐다. 말한다고 상황이 달라질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 하자니 기분이 나쁘고. 어떻게 할지 그녀와 의논다. 결국 우리의 생각을 말하기로 했다. 내 모습이 살짝 긴장돼 보였는지 그녀는 "내가 말할까?" 하고 내게 물었다. 내 생각을 정중하게 전달하는 연습이 필요할 것 같아 내가 하겠다고 말했다. 어떤 식으로 말할지 속으로 서너 번 연습했다.


식사를 끝내고 카운터로 가서 신용카드를 건넸다. 사장은 내게 "식사 맛있게 하셨습니까?" 하고 모든 손님에게 다 하는 듯한 형식적으로 말투로 물었다. 평소 같으면 예 하고 만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1시간 기다려 밥 먹은 사람한테 식사를 맛있게 했냐니? 더 어이가 없었다. 카드와 영수증을 건네받으며 내가 말했다.


"저희가 1시간 가까이 기다렸는데요. 20~30분 정도는 이해를 하겠는데 이렇게 많이 기다려 하는 거였으면 미리 얘기를 좀 해줬으면 좋았을 거 같네요."


최대한 정중하게 얘기했다. 화내면서 말하면 안 된다. 화내면 미안할 것도 안 미안해진다. 싸움이 엉뚱한 데로 흘러갈 수도 있다. 차분하게 말하는 내게 사장은 드릴 말씀이 없다고 정말 죄송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실 핑계를 좀 대자면 오늘 어쩌구 저쩌구~~" 하며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죄송하다고 하면 그만이지, 뭔 핑계람. 다 듣고 나서 "어쨌든 기분이 좀 그러네요." 하고 말했다. 사장은 유구무언이었다. 머뭇머뭇하더니 내게 뭔가를 건넸다. 식당 할인 쿠폰이었다. 


"다음에 또 오실지 모르겠지만 할인 쿠폰 드릴 테니 근처에 오실 일 있으시면 방문해 주세요."


무뚝뚝한 표정으로 쿠폰을 받아 들고 가게를 나왔다. 사장은 문 앞까지 따라 나오더니 죄송합니다 하며 고개 숙여 인사를, 그것도 90도 폴더인사를 했다. 순간 조금 미안해졌다. 저렇게까진 하지 않아도 되는데. 내가 화를 억누르며 차분하게 말한 게 더 미안하거나 무서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때가 벚꽃이 만개한 시기였다. 벚꽃 가득한 길목을 걸으며 녀와 식당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음식 나오기 전에 식당을 나왔으어떻게 됐을까. 우리는 새로운 식당 찾아 나서는 시간만 조금 소모하면 되지만 사장은 달랐을 것이다. 이제 겨우 음식 만들었는데 손님은 나가버리고, 만든 음식은 수도 버릴 수도 없고. 종일 기분이 좋았겠지. 이렇게 오래 걸릴 같으면 미리 얘기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내가 말은 했지만 사장 1시간나 걸릴 줄 몰랐을 거다. 예상했다 하더라도 1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하면 손님이 식사 하고 뻔하니 그렇게  못하고, 장사는 해야 하니 손님은 일단 받아야겠고. 중간에 씹을거리라도 내어주며 양해를 구했으면 나았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지만 사장은 너무 바쁜 나머지 양해를 구할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을지도 모른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고, 사장도 나름의 상황이 있었을 거다. 결론적으로는 우리가 기분 나쁠 상황은 맞지만 사장 또한 어쩔 수 없는 부분 있었지. 우린 그렇게 이해하기로 했다.


마저 벚꽃구경을 즐겼다. 벚꽃이 바람을 타고 흩날렸다. 예쁜 연분홍의 벚꽃잎이 길거리에도 내 어깨 위에도 앉았다. 벚꽃을 보며 생각했다.


'그래, 저 벚꽃이 피고 지는 데도 다 이유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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