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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권작가 Jun 17. 2024

나도 글 좀 잘 썼으면 소원이 없겠네

퇴근 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씻고 밥을 먹었다. 빨래를 돌려놓고 밖으로 나와 카페로 향했다. 글을 쓰기 위해서였다. 어느 때보다도 글을 써야겠다는 의지가 충만한 상태였다. 어느 한 작가 님의 책 출간 소식을 들은 영향이었다. 블로그를 보다가 작가 H가 이번에 신간을 출간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H를 처음 만난 건 2019년 책쓰기 수업에서였다. 나는 첫 책 출간을 위해 참석했을 때 그녀는 3번째 책을 준비하기 위해 참석한 수업이었다. 출간작가라는 이야기에 내가 말 한두 마디 걸어본 게 다였던 터라 친분은 없었지만 나는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다.


책쓰기 수업을 듣고 나는 2019년에 나의 첫 개인 저서를 출간했다. 작가 H 역시 비슷한 시기에 책을 출간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 책이 자신의 3번째 저서였다. 이후로 그녀의 소식을 알지 못했다.


그러다 2년 뒤쯤 서점에 들렀는데 신간도서에 찍혀있는 낯선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확인해보니 작가 H의였다. 그 신간은 그녀의 4번째 출간도서였다. 부러웠다. 나는 첫 책을 출간한 이후로 글쓰기에 예전만큼의 열정이 생기지 않아 글을 거의 쓰지 않고 있었다. 이런 나와 달리 작가 H는 꾸준히 글을 써왔던 것이다. 그랬던 그녀가 이번에는 5번째 책을 출간하기에 이르렀고 그런 그녀를 보며 정말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녀의 신간 소식에 힘입어 나도 이제부터 다시 부지런히 글을 써보자 마음 먹고 그렇게 서둘러 노트북을 가지고 카페에 갔던 것이다.

 

카페에 도착하자마자 음료 주문 후 곧바로 노트북을 켰다. 키보드에 손가락을 올렸다. 글을 쓰려고 했다. 써지지 않았다. 쓰고 싶은 글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글을 쓰고자 하는 열정이 없었다. 15분 동안 하는 것 없이 앉아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화장실에 갔다. 다시 자리로 돌아와 자판에 손을 올렸다. 뭘 쓸지 고민하다가 결국 30분 동안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갑자기 짜증이 확 났다. 매일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은 하는데 왜 이렇게 몸이 따라주지 않는 걸까. 왜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사라진 걸까. 나도 글을 쓰고 싶다. 잘 쓰는 것까진 안 바란다. 뭐든 쓰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작가 H는 일도 하고 아이도 키우면서도 5권의 책을 낼 정도로 부지런히 글을 잘 쓰는데 나는 바쁜 것 하나 없으면서 왜 이렇게 글이 안 써지는 건지 모르겠다. 나도 글을 꾸준히 쓰고 싶고 책도 출간하고 싶다. 책 출간해서 인세도 벌고 싶다.


어떻게 하면 꾸준히 글을 쓸 수 있는지 다른 작가들의 비결이 궁금했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물어본다고 해도 대답이 뻔하기 때문이다. 자신도 글 쓰는 게 힘들다 하겠지. 그럼에도 이겨내고 쓰는 거라 하겠지. 글 쓰는 게 힘들지 않은 작가는 거의 없을 거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쓸 수 있는 건 글쓰기에 대한 열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 힘들지 않는 건 없다. 힘들지만 그래도 기꺼이 도전하고 이겨내는 건 그 일에 대한 열정과 의지가 있기에 가능다. 쓰기도 그렇다.


나도 글쓰기에 열정 넘치는 때가 있었다. 책 출간 이후 글쓰기의 재미를 알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매일 카페에 가서 글을 썼다. 앞으로 평생 카페에서 이렇게 글쓰며 살아도 문제 없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글쓰기는 내 인생의 낙이었다. 


물론 좋아서 쓴 것만은 아니었다. 힘들 때도 많았다. 그럼에도 썼다. 내 마음 속에 있는 이야기를 글로 풀어냈을 때의 후련함과 글 한 편을 완성했을 때의 그 뿌듯함으로 계속 썼다.


그렇게 2년 정도 바짝 쓰고 나니 슬슬 글쓰기에 권태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 속에 응어리진 마음을 글로 풀어내고 나니 더 이상 풀고 내고 싶은 게 없어져버린 거다. 글을 쓸 때의 후련함과 뿌듯함보다 귀찮음이 더 커져버리고 말았다.


처음엔 정체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기간도 벌써 3, 4년이나 됐다. 회복 가능한 상황이 아니다. 그래서 부러운 거다. 글쓰기에 대한 작가 H의 그 열정이.


집에 돌아오는 길에 글쓰기란 무엇인가 생각했다. 글쓰기의 여러 기능이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내 감정을 글로 표현함으로써 감정을 추스르고 생각을 정리하고 것일 게다. 좋은 글, 멋진 글이 아닌 가장 본질적인 글쓰기를 해보기로 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세탁기에서 돌려놨던 빨랫감을 꺼내 베란다에 널었다. 태블릿과 블루투스 키보드를 꺼냈다. 켰다. 내 감정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그 글이 바로 지금 이 글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감동을 줄 만한 멋진 글도, 피식 웃게 되는 재미난 글도 아니지만 어쨌든 뭐라고 쓰긴 쓴 것 같다.


이토록 귀찮은 글쓰기인데 안 하면 그만인 것을 그러지도 못한다. 내가 할 줄 아는 것 중에서 글쓰기가 가장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떤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하다. 생각이 많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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