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이랑 놀면 마음이 편해. 한 번도 싸운 적이 없거든.
다정함이라는 빛을 따라가는 법
“엄마, 정은이는 참 다정한 아이야.”
7살 둘째 딸 아이가 밥을 먹다가 불쑥 말했다.
아이와의 대화란 늘 예고 없이 시작된다. 마치 어두운 밤하늘에 갑자기 떠오르는 별처럼, 그 말은 별안간 내 마음속에 작은 빛을 남겼다.
“왜? 무슨 일이 있었어? 정은이가 다정하다고 느낀 이유가 뭐야? “
“오늘 축구를 하다가 친구가 밀쳐서 넘어졌는데, 정은이가 와서 괜찮냐고 물어봤어.”
아이의 대답은 짧지만, 그 안에 담긴 울림은 길었다.
“그랬구나. 다치진 않았어? 아팠겠다. 정은이가 와서 물어봐줘서 기분이 좋았어?”
“응. 미래는 자기가 밀었는데도 축구 계속하더라.”
아이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그 말에서 섭섭함이 스쳤지만, 아이는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더 따스한 빛을 발견한 듯했다.
“근데 정은이는 멀리서 뛰어와서 나를 일으켜주고, 괜찮냐고 물어봤어. 정말 다정한 아이야.”
아이가 말을 마치고 숟가락을 다시 들었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그 말을 곱씹고 있었다. ‘다정한 아이.’ 그것은 아이의 눈에 비친 세상의 가장 맑은 모습이 아니었을까.
다정함이란 무엇인가
다정함은 강렬한 햇빛이 아니다.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는 번쩍이는 존재감이 아니다. 다정함은 어쩌면 은은한 등불 같은 것이다. 그 빛이 너무 작아 보일지라도, 어두운 순간에는 그 어떤 것보다 분명히 느껴진다. 정은이의 행동이 바로 그런 빛이었다. 축구공을 쫓던 순간을 멈추고 친구를 향해 다가가 손을 내미는 행동. 그 작은 몸에서 나온 다정함은 아이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아이는 예전에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있다.
“엄마, 엄마 필명이 ‘다정한 태쁘’인데, 사실은 ‘싸나운 태쁘’ 아니야?”
그 순간 웃음이 터졌지만, 동시에 생각했다. ‘다정함과 사나움’이라는 단어의 차이를 이렇게 정확히 알고 있다니.’
그 아이가 오늘 다시 “다정한 정은이”라는 말을 할 때, 나는 알 수 있었다. 이 아이는 다정함이란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다정한 친구란 어떤 존재일까
나는 물었다.
“정은이는 정말 다정한 친구구나. 그런 친구랑 노는 건 어때?”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정은이랑 놀면 마음이 편안해. 한 번도 싸운 적이 없거든.”
‘마음이 편안하다’는 말이 내게는 더없이 아름답게 들렸다. 마치 두 손으로 꼭 감싸 쥐고 싶은 꽃송이처럼.
그렇다. 다정한 친구란 그런 존재다. 함께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나의 날카로운 모서리마저도 부드러워지는 사람. 그들이 하는 작은 행동 하나가 지친 하루에 빛이 되고, 아픔을 덜어주는 손길이 되는 존재.
다정함은 선택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자주 말한다. 세상 모든 친구와 친해질 필요는 없다고.
“너를 반복적으로 힘들게 하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는 게 좋아. 사람 사이에도 맞고 안 맞음이 있어. 꼭 모두를 좋아해야 하는 것도, 모두에게 사랑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야. 중요한 건 네 마음이 편안한지 자주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거야.”
다정함은 세상을 보는 하나의 방식이기도 하다. 세상을 날카롭게 보며 살아갈 수도 있지만, 다정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더 많은 빛을 발견하게 된다. 다정함은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에서 시작되고, 그 마음이 행동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
다정함을 가르치는 방법
나는 다정함을 가르치려 애쓰기보다, 스스로 다정한 어른이 되려고 노력한다. 아이가 넘어졌을 때, “일어나. “가 아니라 “많이 아팠겠구나”라고 말해주는 것. 아이가 울 때, “그만 울어!”가 아니라 “엄마가 네 마음을 알아”라고 말해주는 것. 그런 작은 다정함이 쌓여 아이에게도 다정한 마음씨를 심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정은이는 넘어졌던 내 아이에게 말했다.
“괜찮아?”
그 한마디는 마치 노래와 같았다. 위로의 선율이 되고, 다정함의 화음이 되었다.
다정한 세상을 꿈꾸며
내가 바라는 건 단순하다.
내 아이들이 다정한 아이로 자라길. 그리고 아이들이 다정한 친구를 알아보는 눈을 가지길.
다정함은 지극히 작은 빛 같지만, 그 빛이 모일 때 세상은 더 따뜻해질 수 있다.
다정한 아이들은 그 빛을 따라 자신과 다른 사람의 세상을 더 환하게 만들 것이다.
그 빛을 따라 걸어가는 내 아이의 발걸음이 부디 늘 따뜻하길, 그리고 그 빛을 비춰주는 친구들이 곁에 함께하길 바란다.
다정함은 결국 우리를 가장 밝게 비춰주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