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두려 해봤어?
'대(大)퇴사의 시대'라고 한다. 하지만 기자의 퇴사는 의외로 쉽지 않다. 동종 업계로의 이직이 아닌 이상 이 직업을 포기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기자 대부분은 이 업(業)이 좋아 들어온 경우가 많다. 한번 포기하면 다시 발을 들이기도 어렵다. 전문직은 아니지만 한국 사회에선 다소 특별한 직업으로 대우받기도 한다(여전히 기자라서 누리는 특권들이 있다). 그래서 기자의 퇴사는 어렵다. 주변에 "그만두겠다"는 동료들은 많지만, 실제 그만두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래서 사양 산업인 이 업계에 들어올거면 정말 신중해야 한다)
이런 글을 쓰는 건 몇개월 전 퇴사를 고민하며 그 어려움을 겪어봤기 때문이다. "그만두고 싶다"고 답답함을 토로하는 것과 "그만두자"라며 아내와 상의하는 것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당장 내가 잃어버릴 것들부터 눈에 들어왔다. 먼저 들어온 건 '중앙일보 기자'라는 타이틀. 퇴사를 상의한 한 선배가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엔 찬성이다. 하지만 메이저 언론사란 타이틀이 가족에게 미칠 영향을 절대 무시할 순 없다"고 했다. 월급과 상관없이 이 타이틀이 가족에게 주는 자부심은 한국 사회에선 꽤 괜찮은 편이다. 기자란 직업은 장인, 장모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해도, 뵐 때마다 "고생이 많지"라는 말을 듣게 해주는 마력을 갖고 있다. 그만두겠다고 하니 엄마는 냉장고에서 막걸리를 꺼내와 원샷으로 들이키며 "뭔데, 왜 그러는데?"라며 내 주장의 근거들을 하나하나 박살내기도 했다.
또다른 문제는 '00일보 000기자'와 그냥 '000'간에 괴리다. 기자란 직업은 젊은 나이에 사회적 성공을 거둔 사람들과의 네트워크를 가능하게 해준다. 내 능력과 상관없이 기자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사람들이 전화를 받아주고, 밥과 술을 먹어준다. 거기서 얻는 정보와 배움은 물론 도움이 되는 인맥이 쌓이기도 한다. 또다른 선배는 "기자를 그만둬도 계속 만날 수 있는 취재원을 만들면 된다"고 했다. 나에겐 아직 그런 사람이 많지 않다. 한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릴까 두려웠다.
기자라는 직업 자체가 주는 보람과 자부심도 무시할 수 없었다. 매일 상당한 스트레스와 압박에 시달리지만, 사회적 변화를 만들 수 있는 공적 업무를 한다는 자부심은 다른 직업에선 대체되기 어렵다. 그렇게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그만두지 않는 것. 이런 고민을 전혀하지 않은 척, 일상을 버텨내고 있다.
아니, 이럴거면 왜 퇴사를 고민했냐고 묻는 분들도 있을 것 같다. 30대 중반에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은 마음, 성장하는 산업에서 내 노력에 걸맞는 대우를 받고 싶은 마음, 가끔 뉴스에 나오는 파격적 인센티브를 받고 싶은 마음, 기레기란 조롱과 신상털림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내가 쓰는 기사들이 갖는 어떤 무의미함에 대한 생각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퇴사를 말리는, 혹은 찬성하는 사람들로부터 '몇년 뒤 또 한번 기로에 놓일 것'이란 말을 많이 들었다. 그때 난 어떤 길을 택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