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른 '드루킹'이 손을 내민다면

#1 취재일기

by 박태인

올해 1월, 안희정 당시 충남지사는 드루킹이 조직한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 회원들을 대상으로 서울 경희대에서 강연을 했다.


당시 안 지사는 민주당의 유력 당권 주자였다. 현장에 참석했던 경공모 회원들은 안 지사가 강연에서 회원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자 "이 조직을 미리 알았다면 제가 지난 대선 경선에서 승리했을 것"이라 말했다고 했다.


안 지사의 발언은 지지자를 만난 들뜬 정치인의 일상적 수사(修辭)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경공모는 실제 지난 대선에서 수천명의 회원들이 조직적으로 활동하며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 조직이다. 드루킹은 경공모의 외부 활동용으로 경인선(경제도 사람이 먼저다)이란 조직도 만들어 활동했다.


김정숙 여사는 대선 경선에서 자비를 들여 경선 현장에 참석했던 경인선 회원들을 찾아가 인사까지 나눴다. 경공모에 대한 안 지사의 수사에는 이재명에게 밀려 당내 대선 경선에서 3위를 한 잠룡의 '아쉬움'이 담겨있을 수도 있단 뜻이다.

김경수.jpg 지난 6일 특검에 처음 출석했던 김경수 지사의 모습


드루킹 특검이 '빈손 특검'으로 끝났다는 비판이 거세지만 뒷맛이 씁쓸하다. 무엇하나 명확히 밝혀진 것이 없다는 아쉬움이 하나. 두번째는 이번 사건을 드루킹이란 개인의 일탈로 바라보는 정치인들의 가벼운 시각 때문이다.


첫번째 아쉬움이야 재판정에서 결론이 나니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다. 하지만 후자는 조금 다르다. 이 문제를 주의깊게 보지 않으면 또다른 드루킹 사태는 언제든지 터질 수 있다. 이 사건은 개인의 일탈이 아닌 정치권의 구조적인 문제와 더 맞닿아 있다.


선거를 앞두고 자신을 혹은 자신이 보좌하는 후보를 지지하는 조직을 만난 정치인이, 이 조직의 구성원들과 어떠한 관계를 '관행적으로' 맺어왔는지가 드루킹 사태의 근본 원인일 수 있기 때문이다.


드루킹 사태에서 그 관행은 이렇게 드러났다. 드루킹과 경공모가 민주당 경선에서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도왔고, 그 대가를 김 지사에게 요구했으며 김 지사는 드루킹이 요구한 일본 지역 총영사 자리에 그의 측근을 청와대로 추천했다는 것.


특정 조직 혹은 개인이 선거를 도운 뒤 이뤄지는 이 논공행상과 낙하산 논란은 이제 과거보다 더 높은 도덕적 기준이 필요하다. 공직 인사는 절차에 맞게 능력에 따라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 적폐에 가까운 관행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드루킹 특검은 정말 '빈손 특검'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31억원을 들여 특검을 했지만 실제 유권자의 삶이 달라지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루킹 사건이 처음 터졌을 때 이 사건을 접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보인 반응은 "내 의원실에도 드루킹과 같은 사람이 매일 찾아온다"며 별것 아니란 것이었다.


조금 더 덧붙이자면 "대선에서 도움을 줬다며 자리를 요구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이라 불리는 김경수라면 얼나마 많았겠나"며 "언론이 정치권의 생리를 잘 모르거나 알면서도 모른 채 침소봉대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생각은 특검이 김 지사를 구속하지 못한 채로 끝나자 더욱 굳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당 출입기자를 하며 처음 의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에게 투표한 유권자 중 '대통령의 복심'이라 불린 김 지사나 다른 핵심 여당 의원들에게 인사 청탁을 요구할 수 있는 유권자가 얼마나 될지를 따져보면 이 문제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드루킹.jpg

김 지사는 드루킹의 측근에게 "일본 총영사 자리를 제안한 것이 아닌 추천했다"고 했다. 특검팀 관계자는 "김 지사 입장에선 법리상으로 제안과 추천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하지만 일반 국민에겐 말장난으로 느껴질 것"이라 했다.


당시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이던 김 지사(당시 초선 국회의원)가 총영사 후보를 청와대에 추천하는 것 자체가 그가 정권의 실세란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한 외교 소식통은 "외교부와 청와대에 그 누가 김경수의 추천을 단순한 추천이라 받아들였겠나"고 했다.


정치인들에게 자발적으로 다가오는 지지자들을 거부하란 뜻이 아니다. 다만 도움을 받고 당선된 뒤에 처신을 똑바로 하란 것이다. 또다른 '드루킹'이 자신의 직무를 벗어나는 무리한 인사 청탁을 당신에게 요구한다면 청와대에 추천을 하지 말고 과감히 거절해야 한다. 아니면 절차에 맞춰 지원을 하라 말하면 될 것이다. 적폐청산의 피로감이 크다지만 이런 적폐는 과감히 서둘러 청산해야 한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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