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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인 May 14. 2023

무주택자는 급매를 잡을 수 없다

#내집을찾고있습니다

역전세난이란 리스크  MBC캡처

ep.4) 급매 거래의 순간 #2

(이전 화 참고 →'누가 진짜 급매를 잡을 수 있나')


부동산 가격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몇몇 단지에서 최고점 대비 30~40% 급락한 급매가 거래됐다고 합니다. 내가 그 거래를 하지 않는 이상, 모두 무의미한 뉴스입니다.


급매는 잡아야 급매입니다. 특히 전세를 살고 있는 무주택자라면 급매를 잡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①역전세난으로 전세자금을 돌려받는 것도 불투명하고 ②새로운 세입자를 비슷한 전세 가격에 구하는 것은 더욱 어렵고 ③운좋게 새 세입자를 구했다 해도, 전세가가 하락해 집주인이 '차액'을 마련해줘야 합니다. ④돈이 말라 의외로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⑤훌륭한 집주인이 아니라면 소송전을 각오해야 합니다. 급매는 1시간 이내에 거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다섯 단계의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하는 무주택 전세 세입자는 그 속도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설령 갭을 끼고 사더라도 서울 10억 아파트 기준 4~5억원은 손에 쥐고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그런 금수저는 아니지 않습니까.


무엇보다도 지금 전세를 살고 있는, 현금이 없는 매수자에게 중개업소에선 급매를 잘 소개하지도 않습니다. '진지한 손님'으로 생각하지 않아 공을 들이지 않습니다. 한 사장님은 "전세 자금 빼면 연락하세요"라 말하시더군요. 올해 초부터 아주 짧은 기간 부동산 임장을 다니며 뼈저리게 느낀 현실입니다. 맞습니다. 제가 그 무주택 전세 세입자입니다.


한 강남 아파트의 전세 변화. 25평 기준 2년 전 14억 3500만원에 거래, 현재 평균 가격은 9억 5600만원. 호갱노노 캡처.


답답했습니다. 부동산 뉴스가 쏟아지는 데 막상 할 수 있는 건 없었습니다. '바닥을 찍고 다시 가격이 올라가는 것 아닌가'란 불안감도 스며들어왔습니다. 대출도 그리 많지 않으니 전세가 솔직히 편했습니다. '굳이 왜 빚을 내 집을 사야할까'라는 근본적 질문(추후 에피소드서 다룰 예정)과도 마주했습니다. 하지만 18년도에 기회를 놓친 후회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고, 결국 아내를 설득해 월세 전환을 결정했습니다.  


제 손에 갭으로라도 집을 살 수 있는 실탄을 마련하려면 보증금을 최소화 한 월세 전환 밖에 답이 없었습니다. 세입자가 나가는 시점에 맞춰 주택담보대출을 일으키더라도, 우선 뭐라도 잡아야 하니까요.


계산을 시작했습니다. 지금 전세 대출로 나가는 대출 이자와 보증금을 받아 은행에서 받을 예금 이자를 비교했고, 저와 아내의 월급으로 월세를 충당할 수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현재 금리를 기준으로 월세 전환시 매달 60~70만원 정도가 더 들었습니다. 거기에 이사비용 230만원(3년 전 165만원에 계약한 업체와 재계약 했는데 엄청 올랐더군요.), 부동산 중개업소 비용 100만원, 각종 설치 및 이동비용 30만원 정도가 들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감당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1~2억 더 싸게 집을 잡으면 아무것도 아니다"는 희망회로가 작동했습니다. 이왕 월세로 살거면, 저희가 매수하고 싶은 지역 아파트를 골라보자고 했습니다. 경험해보고, 동네 부동산과 친분을 쌓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 판단했습니다.


그렇게 결정하고, 집주인에게 상의를 드렸습니다. (저는 갱신청구권을 쓴 터라, 법적으로 3개월 이내에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약 3년간 살며 그 어떠한 갈등도 없었던, 배려의 끝판왕과 같은 분이시라 참으로 송구했습니다. 집을 매수해야할 시점이라는 사정을 말씀드리고, 우선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월세 전환 가능성을 여쭤봤습니다. (부대비용을 아낄 수 있어, 지금 집의 월세 전환이 우선 순위였습니다.) 고민을 하신 뒤에 "그건 어려울 것 같다"고 하셨고, 결국 새 세입자를 구하기로 했습니다.


주변에서 갱신청구권이 보장한 3개월 통보를 권리라 생각해, 집주인과 갈등을 겪은 세입자를 여럿 봐왔습니다. 3달 이내에 당연히 돈을 돌려받을 줄 알고 새로운 계약을 체결한 분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집주인이 돌려주지 못하면 못하는 것입니다. 법적으로 이자를 받으면 된다고 하지만, 법조 기자를 하며 느낀 점은 법은 여전히 현실의 해결책이 되긴 어렵다는 것입니다. 소송을 통한 실제 비용과 감정적 소모가 훨씬 더 큰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집주인 분에게 무리를 하지 않겠다고 했고 (사실상 통보에 가까워 송구했습니다만), 집이 깨끗하다 보니 다행히 새 세입자가 빨리 구해져(저희 계약 때보다 전세가액이 1억원 이상 낮았고, 집주인께서 차액을 마련해주시기로 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도 7월쯤에 나갈 수 있게 됐습니다. 그래서 매수 하고 싶은 지역의 아파트를 찾아 월세로 계약했고, 이젠 이사를 준비 중입니다. 급매를 잡기 위한 최소한의 실탄은 마련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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