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세 이모, 85세 엄마와 함께 서울에서 충북 음성까지 다녀왔다. 민 씨 종중 모임이 있는 날. 오랜만에 뵙는 일가분들께 인사드리며 정겨운 시간을 보냈다. 나는 조금 어색했지만, 두 분이 유쾌하게 이야기를 나누시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해지고 뿌듯함이 따라왔다.
정성스럽게 차려진 음식 앞에서 두 분 모두 식사도 잘하시고, 피곤한 기색 없이 생기 넘치는 모습이었다. 연세 생각하면 걱정도 됐지만, 오히려 내가 에너지를 얻은 기분. 오랜만의 외출이 꽤 잘 맞으셨던 듯하다.
식사 자리에서는 벌써 가을 여행 이야기까지 오갔다. 이번엔 어디로 가볼까, 누가 운전하나, 숙소는 미리 알아보자… 두 분의 대화에 나도 슬쩍 발을 들이며, 계획 아닌 계획이 시작됐다.
돌아오는 길에는 외삼촌 댁에 잠시 들러 앵두를 수확했다. 빨갛고 탐스러운 앵두가 가지마다 주렁주렁. “가득 따 가라”라고 하시는 말에, 그냥 몇 알 맛보는 걸로는 부족해졌다. 외삼촌은 장대를 가져와 나무 꼭대기까지 따게 도와주시고, 나는 양손 가득 앵두를 담았다. 장난처럼 시작된 수확이, 어느새 진지한 작업이 되어 있었다.
외삼촌께선 늘 그렇듯 따뜻하시다. 나이 많은 조카에게도 용돈을 챙겨주시며 조심히 가라는 인사. 그런 마음들이 참 오래 남는다.
크게 특별할 것 없는 하루였지만, 마음은 잔잔히 오래 여운이 남는다. 조용히 웃고, 잘 먹고, 잘 따고, 함께한 하루. 그런 날이 가장 귀한 날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