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낮, 조카에게 전화가 왔다.
"이모, 오늘 저녁에 좀 들러도 될까요? 뭐 사갈까요?"
툭 던진 말투지만, 목소리엔 어딘가 설렘이 묻어난다.
“뭘 사와! 이모가 진수성찬 해줄게.”
입은 호기롭게 말했지만, 전화를 끊자마자 손은 이미 배달앱을 켜고 있었다.
조카가 좋아하던 건 뭐였더라—지난번에 혼자 거의 다 먹었던 연어초밥?
디저트도 하나쯤 곁들여야겠지. 타르트? 아니면 생크림 가득한 조각 케이크?
부엌에서는 엄마가 삼계탕을 준비 중이시다.
“대연이 온다며? 인삼 듬뿍 넣어야지. 마늘도 더 넣고.”
오랜만에 활기를 띤 손놀림에서 반가움이 묻어난다.
저녁 무렵, 조카가 커다란 수박을 들고 들어선다.
“방학이에요!”
밝게 웃으며 인사하는 조카를 보자, 아빠도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나신다.
“그래, 한 잔 해야겠구먼.”
묵혀둔 매실주 한 병을 꺼내시는 모습에, 은근히 기다리셨던 마음이 느껴진다.
조카는 언제나 그렇듯, 가장 먼저 할머니 할아버지를 꼭 안아준다.
팔순을 넘긴 두 분의 얼굴이 금세 환해진다.
그 품 안에서, 조카는 아직도 여전히 ‘우리 아가’다.
식사가 무르익자, 엄마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그래, 졸업은 언제쯤이니? 취업은 생각해 봤고?”
조카는 순간 젓가락을 멈추더니, 아주 능숙하게 화제를 틀어버린다.
“근데 할머니, 저 여자친구 생겼어요.”
식탁 위 공기가 순간 바뀐다.
“어머, 진짜?”
“착한 애냐? 뭐 하는 친구야?”
궁금증 폭탄이 쏟아진다. 조카는 쑥스러운 듯 웃으며 연어초밥을 또 집는다.
에어컨도 틀지 않았는데, 거실 공기는 시원하고 환하다.
수박도 달고, 웃음도 많고, 저녁은 풍성했다.
조카의 방문 하나로 온 가족이 여름밤의 더위를 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