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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정 Jan 22. 2022

기록을 지우는 일


 기록에 집착하는 것은 일종의 자의식 과잉이다. 내 모든 경험이 시간이 지난 뒤에도 가치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선왕조 의궤만큼은 아니더라도 나의 삶과 생각이 물리적인 형체를 띈 채 후세에 남길 바라는 기대다.


 그러나 부지런함과 거리가  나는 매년 연간 다이어리를 반도 채우지 못하고 서랍 깊숙이 집어넣는다. 개발새발 흘려  글씨에 추상적이기 그지없는 문장일지라도. 어느 지역으로 출장을 갔는지, 어떤 영화를 봤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정도를 겨우 적어 넣었다. 나의 삶에 대한 최소한의 기록. 내가 어느  어느 날에 살았다는 최소한의 증거.


 매년 다이어리가 쌓여갈수록 기록을 남겼다는 뿌듯함보다는 다이어리 빈 부분의 부피만큼 수치심과 죄책감이 마음을 짓눌렀다. 가끔 짐 정리를 할 때마다 이리저리 옮겨 보관해보아도, 나의 기록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비루하고 무가치하게 느껴졌다.


 다이어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습성은 병에 가깝다. 영화표, 공연 티켓은 당연하고, 학창 시절 썼던 필기 노트, 친구와 주고받은 쪽지, 낙서, 여행이나 출장 중에 생긴 관광객용 팸플릿, 교통 티켓, 쿠폰, 심지어 영수증까지도 꾸역꾸역 신발 상자에 모아두는 것이다. '추억'이라는 미명을 붙여가며! 그런 종이 쪼가리들은 몇 년이 지나 잉크가 휘발된 빈 종이 상태로 발견되곤 한다.


 어릴 때는 그런 소소한 물건들의 집합이 귀엽기라도 했지, 나이가 들수록 쌓여가는 물건들은 어떤 날 보면 징그럽다. 여러 개의 신발 상자에 나름의 이름을 붙여 분류를 해보기도 했지만, 결국은 모두 짐이었다. 그게 뭐라고. 대단한 사료적 가치가 있는 것처럼 이고 지고 살았다. 정말이지 지독한 자의식 과잉이다.



 내가 살아있다는 외침. 기록은 삶에 대한 집착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데, 내가 남길 이름 옆에 내 생애주기별 취향과 자잘한 선택들이 함께 붙어있길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못할 언젠가 어딘가에서, 오히려 나를 기억하는 이보다 더 나를 이해해줄 누군가가 있길 바라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까?


 언제고 죽어 사라지면 그 허무함을 견딜 수 없어 죽어서 또 죽을지도 모른다. 나는 허무함을 견디는 연습을 하고 싶다. 오랫동안 연습해왔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한참 멀고도 멀었다. 우선은 기록에 대한 집착을 줄여나가는 것(바로는 못 끊겠다!)이 필요하다.


 새해를 맞아 십여 년간 모아둔 '추억'의 잡동사니들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연간 다이어리는 더 이상 쓰지 않을 것이다. 지난 다이어리들은 간직하고 싶은 부분만 찢어내 상자에 모으고, 나머지는 버렸다.


 ...라고 여기에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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