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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정 Jun 25. 2022

퇴사자의 발걸음

퇴사의 날

 마지막 퇴근의 발걸음은 아주아주 가벼울 줄 알았다. 신이 나서 투스텝으로 달리거나 캉캉춤을 추며 회사 문을 나서게 될 줄 알았다. 마음 한편에 퇴사의 꿈을 갖게 된 후 n년 만에 맞이한 퇴사의 날은 상상만큼 신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슬펐다거나 아쉬웠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다만 좀 덜 신이 났을 뿐이다. 마지막 업무를 마치고 회사를 나오던 내 발걸음은 평소보다 조금 빨랐고 힘찼다. ‘힘차다’라니, 내게 썩 어울리는 표현은 아니다.


 퇴사의 날을 결정한 날은 퇴사의 날로부터 약 두 달 전이었다. 오랫동안 생각만 했던 일을 현실로 만들려니 영 실감이 나지 않았다. 대표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다가 혼자 손등을 꼬집어봤다. 사실 꿈을 꽤나 생생하게 꾸는 지라 손등을 꼬집는 것만으로 꿈과 현실을 구분하기는 어려운데, 꼬집힌 살에 아픔을 느끼면서 나는 이 상황이 자각몽일지라도 이미지 트레이닝은 제법 되겠구나 생각했다.


 두 달 중 한 달은 빠르게 지나갔다. 관성처럼 업무를 했고, 그 와중에 작용과 반작용처럼 퇴사 이후의 미래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같은 크기로 나타났다. 내게 주어질, 무한하게 느껴질(실제로는 아니지만) 시간에 대한 것이었다. 하루는 이것도 해봐야지, 저것도 해봐야지, 그것도 해봐야지, 기대에 부풀었다가, 또 하루는 뭘 해, 뭘 할 수 있을까, 뭘 해야 할까, 불안에 잠식됐다. 인간은 자유를 원하는 동시에 자유를 두려워한다더니. 딱이다. 그 불안정한 바이오리듬을 거치던 중에 어느 하루는 술에 거나히 취해 집에 들어와서는 꺼이꺼이 울었다. 어떤 서러움이 밀려왔다. 서러움의 이유를 하나하나 따지고 들 수야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머릿속에 과부하를 주고 싶지 않아서, 그날은 그저 ‘응. 지금 나는 서럽구나’하며 울다 잠을 잤다.


 마지막 한 달은 안정을 찾는 시간이었다. 끝내 해소되지 않을 기대와 불안에 휘청일 필요는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미래에 대한 기대와 불안은 물리 법칙처럼 늘 그대로 있을 것이었다. 다만 나는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에게 ‘내가 참 고생이 많았다’하며 치하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내게 ‘애썼다’, ‘수고했다’ 말할 수 있게 했다. 달리 할 수 있는 말도 없고 그저 으레 하는 말임을 알아도,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내심 뭉클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마지막 일주일은 시간이 정말 더디 갔다. 8년여 중 가장 일하기 싫은 일주일이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마침내 도래한 퇴사의 날은 다행히 조금은 하이텐션이었다. 모아둔 ‘퇴사 짤’을 하나하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풀면서 오랫동안 준비했던(?) 퇴사의 순간을 맞이했다. 회사가 지급한 노트북이 포맷되는 것을 기다렸다가, 동료들(이제는 전 동료가 된)과 다음 술자리를 기약하고, 상사들과 살짝 어색한 인사를 나눈 후, 회사 문을 나섰고, 회사 건물 화단에 자리 잡은 정든 고양이와 잠시 눈을 맞춘 뒤, 다시 걸었다. 그렇게 대책도 계획도 없이 회사를 나오며 조금 빠르고 힘찬 발걸음으로 집에 가는 버스를 타러 정류장으로 향했다. 상상만큼 대단한 순간은 아니었다. 머릿속에 든 생각은 ‘내일 뭐 할까?’ 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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