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의 메타인지
점심식사 중에 동료 한 명이 다른 이들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 대표님, 사실은 엄청 무서운 분인데 어쩌면 아직 본색을 숨기고 계시는 건지도 몰라요, 하하하."
나를 바로 앞에 앉혀두고 그런 얘기하는 걸 보면 아마 내가 딱히 무섭거나 불편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다행이다.
나를 비롯해서 우리 직원들 모두가 함께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다들 서로에 대해 아직 파악 중이다. 내가 얼마나 화를 잘 내는 혹은 안내는 사람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기본적으로 누구에게나 존중과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믿음은 마음속에 박혀 있지만, 나도 사람인데 어찌 화내거나 짜증 내는 일이 없겠는가.
사실 지난 주말에는 어머니를 집에 며칠 모시고 있다가 아내로부터 "왜 이렇게 화가 많아?"라는 핀잔을 들었었다. 날더러 한때 좋아했던 핸드폰 게임의 캐릭터인 “앵그리버드(Angry Bird)" 같다고도 했다. 좋은 곳도 구경시켜 드리고 맛있는 것도 사드리겠다며 모처럼 집으로 며칠 동안 모셨건만, 정작 계신 동안에 여러 번 씩씩거리며 얼굴을 붉혔기 때문이다.
예컨대 일을 좀 정리한 다음 바깥 산책을 시켜드리겠다고 했는데 그새를 못 참고 혼자 몰래 집 밖으로 나가시는 바람에 실종신고라도 해야 하는 줄 알고 심장이 내려앉을 뻔했을 때도 그랬고, 허리와 무릎이 안 좋으셔서 한 번에 열 걸음도 제대로 못 걸으시기에 휠체어와 보행기를 준비해 두었는데, 외출할 때 본인은 지팡이 하나만 짚으면 '날아다닌다'며 억지를 부리시는 바람에 한바탕 신경전을 벌일 때도 그랬다.
하지만 '화 좀 내지 말라'는 아내의 말에 곰곰이 생각해 보면서 깨달았다. 나는 사실 화가 났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느꼈던 감정은 '화'가 아니라 어머니가 예전과 달리 총명함을 잃어가시는 것에 대한 '슬픔'이었고, 건강상태가 급격히 나빠지시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그러니 내가 취해야 했던 올바른 태도는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를 오히려 더 세심하게 잘 보살펴드리고 어머니를 더 잘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었어야 했다.
정신과 전문의 김혜남 선생님은 <생각이 너무 많은 어른들을 위한 심리학>이라는 책에서 '한국어에서 흔히 쓰이는 감정 단어는 400여 개인데, 그중 부정적인 감정 단어가 무려 72%에 달한다'며, '그 감정을 모두 뭉뚱그려서 ‘짜증 난다’라고 말해버리면 나를 이해하는 것도, 다른 사람과 소통을 하는 것도 불가능해진다'라고 했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면 그런 감정을 느끼는 원인을 제대로 알 수 없고, 그러면 올바른 답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근에 9년 만에 개봉해서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픽사의 명작 애니메이션 '인사이드아웃 (Inside Out) 2'도 스스로의 감정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서로 다른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의 유용성을 생각해보게 한다. 우리가 느끼는 복잡 미묘한 감정들은 단순히 ‘화가 난다’ 혹은 ‘짜증 난다’와 같이 1차원적인 것으로 뭉뚱그려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기 다른 이름을 가진 여러 가지 감정들의 복잡한 상호작용이라는 점을 말이다.
그래서 직장에서건 가정에서건 감정이 마구 소용돌이칠 때면 즉각적으로 반응하거나 행동하기보다는 잠시 멈추는 것이 좋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다 보면 자칫 감정에 휘말려서 나중에 후회할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을 막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원인을 좀 더 정확하게 알게 될 때 그에 맞는 올바른 대처방안 혹은 해결책을 떠올릴 수 있게 된다.
예컨대, '일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서 당황했구나.' '다른 사람이 내 의도를 오해해서 서운하구나', '어이없는 실수 때문에 실망했구나'라고 감정에 각기 정확한 이름을 붙여주면 그저 화를 내는 대신에 대책을 새롭게 강구하거나, 자신의 의도를 정확하게 다시 전달하거나 혹은 실수에 대해 정확한 피드백을 주는 식으로 보다 구체적이고도 건설적인 방향으로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어떤 상태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함으로써 내 감정에 스스로 매몰되지 않고 원인에 알맞은 적절한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은 소위 ’메타인지‘의 한 형태다. 메타인지력이 높은 사람이 삶에서 성숙하고 직장에서도 일 잘하는 사람 아닐까.
(2024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