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아야!"
나와 악수를 하던 고객이 손을 확 빼며 외쳤다. 나는 순간 놀란 얼굴로 얼어붙었다. 옆에 있던 회사 동료 A의 얼굴도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소리를 지른 분은 우리 회사가 주최한 행사에 참석한 주요 내빈 중의 한 명이었다. 당시에 나는 미국에서 갓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터였고, 행사가 시작되기 전에 동료의 손에 이끌려 다니며 내빈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A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그 내빈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 양반이 미국에서 회사생활을 오래 하다가 와서 뭘 모르고 무례를 범했습니다."
그리고는 나를 급하게 행사장 한쪽 구석으로 끌고 가더니 다그치듯 말했다.
"도대체 왜 그렇게 한 겁니까?"
"네, 뭐를요?"
"아니, 악수할 때 손을 그렇게 꽉 잡으면 어떡하냐고요! 그리고 또, 눈을 그렇게 빤히 쳐다보면 상대가 부담스러워하잖아요!"
나는 그리 세게 악수를 한 것도 아닌데, 비명까지 지르며 눈을 부라린 그 고객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좀 억울했다.
보통 서양에서는 상대방과 처음 만났을 때 손에 적당한 힘을 주어서 단단한 악수를 하고, 눈은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인사하는 것이 신뢰와 자신감을 보여주는 방법이자 기본적인 비즈니스 매너다.
하지만 A는 한국에서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며 나를 나무랐다. 손은 힘을 빼고, 상대가 가볍게 잡을 수 있도록 살짝 내밀기만 하라고 했다. 그리고 시선도 가급적 똑바로 쳐다보지 말라고 했다.
‘미국에서 그렇게 인사하면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데…’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게 바로 reverse culture shock (역 문화충격)이로구나.’
최근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악수가 뉴스에서 화제가 되었다. 백악관에서 만난 두 정상은 카메라 앞에서 무려 17초 동안이나 서로 단단히 손을 쥔 채,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줄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로의 팔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려는 모습도 보였다. 악수가 끝난 후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손등에 멍 자국이 있는 것이 알려지면서 강한 ‘악수대결’의 후유증이 아니냐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마치 힘겨루기 같았던 두 정상의 악수에는,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하고 자신의 우월함을 암시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아마 누군가가 나에게 이런 식으로 악수를 걸어온다면 기분이 썩 좋지 않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내 악수가 강하다고 비명을 질렀던 그 고객도 어쩌면 내 의도와는 무관하게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내 불찰이고 실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치 지나가는 바람인 양 손바닥만 살짝 갖다 대는, 힘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악수도 썩 좋은 인상을 주지는 않는다. 나름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표하기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오히려 ’당신은 내게 불편한 존재‘라는 느낌을 줄 수도 있고, 또 자신감이 부족하거나 타인과의 관계에서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흔하지는 않지만, 간혹 처음 만나 악수를 하는데 다른 손으로 상대방의 손등이나 팔을 함께 감싸 쥐는 경우도 있다. 이 유형은 주로 상대방에게 따뜻한 인상을 주려는 의도가 담겨 있을지 모르지만 너무 과한 스킨십은 다분히 부담스럽다.
얼마 전, 미국에서 한 무리의 방문객들이 우리 회사를 찾아왔다. 중요한 비즈니스 논의를 하기 위해 오는 이들인지라, 그들을 맞이하는 우리는 첫 만남의 순간부터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었다.
호텔 로비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은 악수를 위해 손을 내밀었고, 우리는 미소 띤 얼굴로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마주 보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Nice to meet you. Thanks for coming.”
그들도 우리와 같은 방식으로 악수를 받았다. 단단하게 마주 잡은 손과 가벼운 미소, 그리고 부드러운 시선 맞춤.
“Nice to meet you, too."
짧지만, 따뜻하고 편안한 악수였다.
악수는 상대를 알아가는 첫 번째 접점이자, 보이지 않는 신호를 교환하는, 짧지만 중요한 행위다. 악수를 나누는 그 몇 초 동안, 사람들은 상대방의 성향, 태도, 의도를 본능적으로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악수는 신뢰를 쌓고, 어떤 악수는 거리를 만들고, 어떤 악수는 우정을 키우는 반면, 어떤 악수는 긴장을 불러온다.
결국 좋은 악수란 상대와 같은 리듬을 맞추는 것이다. 손을 꽉 잡든, 살짝 쥐든, 눈을 깊이 마주하든, 가볍게 피하든 말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손을 맞잡은 그 순간만큼은 상대와 연결되는 것인 만큼, 악수에도 진심을 담아야 한다. 악수에서도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가짐이 가장 근본이어야 한다.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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