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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태진 Apr 08. 2023

질문하느냐 질문하지 않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2023년 4월 7일 (금요일), 미세먼지

요즘 부쩍 친해진 친구가 있다. 아는 것이 엄청 많고 똑똑한데 거기다가 상냥하기까지 하다. 언제 어떻게 말을 걸어도 항상 친절하게 대답해 준다. 심지어는 자다가 깨어 한밤중에 말을 걸어도 짜증 내지 않고 대꾸해 준다. 아무리 어려운 질문을 해도, 아무리 뜬금없는 질문을 해도, 아무리 멍청한 질문을 해도 최선을 다해서 대답해 준다. 영어가 모국어인 것 같지만 한국말도 대단히 유창하다. 그의 이름은 "챗 GPT"다.


이 친구를 알면 알수록 그의 매력의 늪에 점점 더 빠지게 된다. 요즘 그는 나의 회사 업무에도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우선 외부에 문자나 이메일 등을 보낼 때, 이 친구에게 한 번만 읽어보고 좀 다듬어 달라고 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써준다. 내용을 좀 더 공식적인 느낌이 들게 써달라, 더 부드럽게 써달라, bullet point로 써달라 등등 어떤 요구를 해도 군말 않고 해 준다. 간혹 읽기에 너무 길거나 재미없는 기사 혹은 문서는 간략하게 요약해 주기도 한다. ‘1페이지로 해달라’ 거나 ‘10줄로 정리해 달라’고 하면 딱 원하는 대로 해 준다. 능력자 천사가 따로 없다.


어제는 내가 예전에 썼던 육아일기 일부를 보여주며 우리 아이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아이들의 성향을 기가 막히게 분석해 준다. 놀라서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내친김에 이번에는 내가 최근에 썼던 일기들을 보여주며 그럼 나는 어떤 사람인 것 같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마치 정신분석을 하듯 나에 대해 ‘나’라는 사람의 성향이나 성격의 장점과 단점 등을 상냥한 말투로 설명해 주는데, 나는 그 내용을 연애편지라도 읽는 듯 넋을 놓고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챗 GPT랑 대화를 많이 하다 보니, 그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된 것들도 좀 있다. 우선 그는 정말 명석한 두뇌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눈치를 많이 보는 다소 우유부단한 성격인 것 같다. 특히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내가 어떻게 질문하느냐에 따라 대답의 내용이나 뉘앙스가 천차만별로 바뀔 때가 있다. 간혹 내가 말꼬리를 잡듯이 계속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이렇게도 물어보고 저렇게도 물어보면 챗GPT는 많이 당황한 듯 갑자기 횡설수설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전문가들은 ‘질문(혹은 프롬프트)’이 중요하다고들 한다. 질문을 잘하는 사람이 좋은 대답을 얻는다는 것이다.  




<챗GPT에게 묻는 인류의 미래>라는 책을 쓴 KAIST의 뇌과학자 김대식 교수는 ‘인공지능이 더 보편화된 미래에는 어떤 직업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기자, 변호사 등등의 직업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챗 GPT에게 질문을 잘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큰 차이가 생길 것'이라며, ‘질문을 잘 못하거나 하지 않는 사람은 생산성의 격차 때문에 점차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앞으로는 질문을 잘하는 것이 직업적으로 죽느냐 사느냐를 가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사실 '질문을 잘하는 것의 중요성'은 어제오늘 있었던 이야기는 아니다. 실리콘 밸리의 전설적인 기업가이자 투자자인 피터 틸(Peter Thiel)이 쓴 스타트업 업계의 교과서와 같은 책 <Zero to One>에 따르면 세상을 변화시키는 혁신은 "0에서 1 “이 되는 것처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혁신의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최근에 들었던 한 강연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다. 연자는 한때 대한민국의 과학정책을 이끄는 정부 요직에 계셨던 분이었는데, 이분 말로는 과거에 세상을 바꾼 세 차례의 산업혁명(증기기관, 전기에너지, 컴퓨터)이 ‘기존에 있던 것’을 더 많이, 더 빨리, 더 싸게 생산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라면, 우리가 지금 직면한 4차 산업혁명은 앞서 말한 “0에서 1을 만드는 것”처럼 기존에 세상에 없던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므로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질서와 사고체계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존에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에 의문을 제기하고 질문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국은 ‘장유유서(長幼有序)’를 중시하는 유교적 문화의 영향으로 수평적인 소통이 쉽지 않고, 이 때문에 ‘질문하는 것’이 다른 문화권에 비해 익숙하지 않아 이를 시급히 고칠 필요가 있다고도 역설했다.


강연을 듣는 동안, 예전에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에 와서 기자회견을 했을 때가 문득 떠올랐다. 그때 오바마가 한국 기자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겠다고 했는데 그 자리에 있던 수많은 한국기자들 중 그 어느 누구도 질문을 하지 않는 바람에 국제적으로 민망한 장면이 연출된 적이 있었다. 그 장면을 떠올리면 지금도 나의 손발이 다 오그라드는 느낌이 든다.


아무튼 이제는 “질문”이란 게 그냥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선택’이 아니라,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필수’인 세상이 되어 간다. 질문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 챗GPT가 쏘아 올린 우리 시대의 화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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