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더 무비
브래드 피트는 한때 나의 영웅이었다. 어린 시절 영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속 브래드 피트를 보고 어떻게 이렇게 멋진 배우가 있을까 싶었다. 나도 그와 같이 멋진 어른이 되길 바랐다. 그랬던 그가 이제는 어느새 중년이 되어버렸다. 영화 속 주름진 그의 모습을 보며 더 이상 늙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 그의 라이벌로 나오는 루키 루벤 세르반테스의 모습이 좋게 보일리 없다. 젊음이란, 저토록 무뢰한 것일까? 애송이를 눌러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소니 헤이스 역의 브래드 피트를 응원했지만 나의 이런 마음을 알턱 없는 노장은 신예 선수를 돕는 조력자로 나선다. 나의 주인공은 여전히 당신인데 말이다.
영화는 흥미진진했고 박진감이 넘쳤다.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F1 경기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릴 것 같았다. 관심도 가져본 적 없는 F1이 얼마나 치열하고 섬세한 경기인지 짐작할 수 있었고 실제로 경기장을 찾아보면 얼마나 큰 충격과 자극을 받게 될지 기대되었다. 트랙에서는 분명 상상이상의 굉음이 들릴 것이고 달리는 차들은 눈으로 좇을 수 없을 만큼 빠를 것이 분명할 테니까.
300km가 넘는 속도로 달린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70km 속도를 유지하며 단속 카메라에 찍혔을까 봐 쩔쩔매는 현실의 나로서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속도다. 100km만 넘어도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걸 느낄 수 있는데 300km가 넘는 속도를 그것도 다른 차들과 경쟁하며 달려야 한다니, 이건 대체 얼마나 강심장이어야 할 수 있는 일인지 모르겠다.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암벽등반을 하는 ‘프리솔로’라는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는 스포츠가 있던데 거의 비슷한 수준의 압도감이 아닐 수 없다. 말 그대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화면의 연속이었다.
주인공 소니 헤이스는 한때 유망주로 불렸지만 불의의 사고로 좌절하고 선수로서의 활동을 접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운전을 시작하고 지금은 프리랜서 드라이버로 활동하며 자신의 ‘못 이룬 꿈’, 언저리에서 사는 중이다. 그러다 다시금 절호의 기회가 찾아오고 F1드라이버로 복귀한다.
소니 헤이스는 말 그대로 자유로운 영혼이다. 프리랜서 드라이버로 어느 곳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간다. 더구나 실력까지 좋아서 가는 곳마다 성공을 거두고, 사람들의 환대와 사랑을 받는다. 그뿐인가, 꼭 필요한 인재이니 남아 달라는 요청에도 미련 없이 떠나버린다. 심지어 우승 트로피도 짐짝 취급하며. 찌질하지 않은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중이지만 그의 모습에 비하면 나는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고, 별 것 아닌 성취에 지나치게 취해있었던 건 아닌지 말이다.
소니는 자유로운 성격으로 창의적이고 저돌적인 레이싱을 펼친다. 그야말로 우리가 꿈꾸는 모든 것을 보여준다. 돌아온 영웅이 펼치는 극한의 스포츠. 여기에 심장을 요동치게 만드는 속도로 달리는 모습과 금기를 깨는 저돌성, 그리고 극적인 성장 서사와 우승까지. 영화는 그야말로 쾌감을 불러일으킬만한 모든 요소를 담고 있다. 동시에 세상에 저런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구나 싶은 경외감을 갖게 한다.
소니 헤이스처럼 자유로운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막 아무렇게나 일을 그만두고 훌쩍 떠나버리는 모두가 꿈꾸는 삶. 하지만 그는 그럴만한 능력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결국 자유롭기 위해서는 엄청난 실력과 노력이 뒤따른다는 당연하지만 슬픈 현실을 깨닫는다. 이런 냉정한 세상 같으니라고.
또 소니와 같은 기발하고 창의적인 전략과 전술이 없으면 어쩌나 싶은 마음도 든다. 늘 하던 방식에서 벗어나야 지금보다 더 발전한 미래를 그릴 수 있을 텐데, 뭔가 새로운 방법이 떠오르지 않으니 영화를 보고 난 현실의 나는 어쩌나 싶다. 하지만 난 한없이 긍정적인가 또 막연히 좋은 일이 있을 거라 믿는다.
토끼와 거북이가 그랬다. 그저 꾸준히 걸어간 거북이가 재빨랐던 토끼를 이겼다. 때로는 꾸준함이 이기는 일이 벌어진다는 아주 희박한, 희망에 기대어 산다. 하지만 현실의 경쟁자들은 실력도 좋고 부지런하며 토끼와 같이 오만하지도 않다는 것이 문제다. 이런 말이 떠오른다.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잘해야 한다는 뼈 때리는 말. 기발한 아이디어도, 실력도 없고 가진 것이 꾸준함 뿐이라면 아무래도 안된다. 쓸데없이 긍정적이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거다. 소니 헤이스의 자유로움에 자극받아, 기발한 전략과 꾸준함을 더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하지만, 내일이면 다시 회사에 나가야 한다. 왠지 모를 좌절감을 느끼며, 내일 출근길은 속도를 좀 내볼 생각이다. 70km 도로에서 80km로 달리면 극적이려나? 마음만큼은 늘 f1을 달린다. 현실은 80km일지라도, 마음속 나는 언제나 300km다. 아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한 180km 정도로 하자. 그것도 충분히 무섭다.